"옥정에 인구 다 뺏겼다"…삼천의 '눈물'

김다빈 2024. 5. 14.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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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 가속화' 경기북부 가보니…
"옥정에 인구 다 뺏겼다"
동두천·포천·연천 떠난 주민들
전입신고 1위 지역은 양주시
'경제 허리' 30~40대 이동 많아


14일 오후 2시께 방문한 경기 동두천시 중앙시장. 200m 남짓한 거리의 점포 중 절반가량은 문이 굳게 닫혀 있거나 폐업한 상태였다. 가게 문을 연 상인들은 휴대폰으로 드라마를 보거나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25년째 이곳에서 만두집을 하는 이모씨는 “젊은 사람들은 다 양주로 이사 가고 노인들만 남았다”며 “이게 유령 도시가 아니면 뭐냐”고 한탄했다.

‘수도권 2기 신도시’인 경기 양주 옥정신도시가 주변 연천군과 포천·동두천시의 인구를 빨아들이면서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인구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가평·양평군은 남양주 다산·별내신도시로 인구가 빠져나가 지역 상권 침체가 가속화하고 있다. 이들은 경기도의 31개 시·군 중에서도 ‘인구 소멸 위험지역’에 들어가는 5개 지자체다. 수도권 및 군사지역 규제로 이미 낙후한 지역에서의 인구 이탈이 소멸 위기를 한층 키우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기 신도시가 낙후지역 ‘인구 블랙홀’

이날 통계청의 국내 인구이동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경기 북부의 동두천시·포천시·연천군에서 빠져나간 인구가 가장 많이 전입한 지역은 경기 양주시로 나타났다. 2023년 동두천시 전출자 8023명 중 38.9%(3120명)가 양주시에 전입 신고를 했다. 포천시에서 빠져나간 1만2339명 중에선 21.5%(2653명)가, 연천군은 3670명 중 15.5%(572명)가 양주를 새 터전으로 삼았다.

옥정신도시는 서울 북부의 주택난에 대응하기 위해 조성된 2기 신도시다. 2018년부터 입주가 본격화하면서 인근 시·군인 포천, 동두천, 연천의 인구 유출 속도도 가팔라졌다. 옥정신도시는 지난달 말 기준 계획인구 11만 명 중 대부분인 10만 명이 입주했다.

양주 인구는 옥정신도시 첫 입주가 시작된 2014년 20만 명에서 지난해 26만 명으로 증가했다. 반대로 연천·포천·동두천 인구는 이 기간 각각 10%가량 감소했다.

특히 신도시가 지역경제를 지탱할 3040세대를 빨아들이면서 유출 지역의 경제 활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포천에서 양주로 이동한 사람 중에선 30대가 22.8%로 가장 많았고 40대 16.3%, 20대 16.2% 순이었다. 동두천에서 옥정신도시로 내년에 이사할 계획인 윤모씨(36)는 “노인만 있는 도시에서 아이를 키울 순 없다”며 “이사하면 교육과 주거 환경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구리·가평·양평…남양주로 ‘빨대효과‘

경기 동부에서도 비슷한 ‘인구 블랙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입주가 마무리된 남양주시 다산·별내신도시가 주변 구리시와 가평군, 양평군 인구를 흡수하고 있다. 지난해 구리·가평·양평의 전출자가 가장 많이 전입한 도시는 서울이었으며, 2위는 남양주였다. 경기도 관계자는 “다산·별내신도시는 신규 입주가 마무리되면서 생활·교육·교통 인프라가 완성 단계에 이르렀고 주변 지역 주민들이 신도시로 옮겨가고 있다”고 전했다.

주민들이 빠져나간 지역의 고령화 속도 역시 한층 빨라지고 있다. 서울의 베드타운으로 건설된 구리시는 노인 비율이 지난해 16.6%를 기록하며 고령사회(노인 비율 15% 이상) 기준을 넘어섰다. 도내 다섯 곳의 인구 소멸 지역 모두 고령화 수준이 높아졌고, 공무원조차 해당 지역에 주거지를 두지 않아 단체장이 불이익을 주겠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양주의 회천신도시와 남양주 왕숙신도시 입주가 시작되면 ‘인구 엑소더스’가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희정 서울시립대 교수는 “신도시가 주변 인구를 빨아들이는 건 불가피한 문제”라며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 수도권 전철 7호선 등의 교통 개발도 구도시의 인구 이탈 속도를 높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소멸 위기에 직면한 지자체들은 수도권정비계획법 성장관리권역 규제라도 풀어달라고 아우성친다.

포천시 관계자는 “애초에 접경 지역 규제를 받는 경기 북부는 남부에 비해 일자리도 부족하고 낙후됐다”며 “대규모 산업 개발을 추진하려고 해도 수도권 규제에 가로막혀 동력을 잃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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