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주년 앞두고 5·18묘지 참배… "80년 광주 알게 됐어요"

김성후 기자 2024. 5. 1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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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 안내문을 보면 '5월 영령의 원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비석을 짓밟고 가달라'고 적혀 있어요." 10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옛 5·18묘역(민족민주열사묘역) 입구 바닥에 박힌 '전두환 비석' 주위로 기자들이 모였다.

1982년 3월 전두환씨 부부가 담양군 고서면 한 마을에서 숙박한 것을 기념해 세운 이 비석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5월단체들이 부숴버렸고, 당시 전남일보 사진기자 신종천씨가 망월묘역으로 옮겨와 파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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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기협 5·18 역사기행

“비석 안내문을 보면 ‘5월 영령의 원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비석을 짓밟고 가달라’고 적혀 있어요….” 10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옛 5·18묘역(민족민주열사묘역) 입구 바닥에 박힌 ‘전두환 비석’ 주위로 기자들이 모였다.

1982년 3월 전두환씨 부부가 담양군 고서면 한 마을에서 숙박한 것을 기념해 세운 이 비석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5월단체들이 부숴버렸고, 당시 전남일보 사진기자 신종천씨가 망월묘역으로 옮겨와 파묻었다. 전두환 비석에 얽힌 사연을 듣고 비석을 밟고 지나가는 기자도 있었다.

광주전남기자협회가 주관한 ‘5·18 역사기행’에 참가한 기자들이 10일 오후 옛 5·18묘역 입구 바닥에 있는 ‘전두환 비석’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김성후 기자

박종현 한국기자협회장을 비롯해 전국에서 온 기자 30여명은 이날 오후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헌화 분향한 뒤 고 송건호 선생과 고 리영희 선생, 5·18 당시 신군부 보도검열에 맞서 제작거부를 주도했던 고 김태홍 한국기자협회장 묘소 등을 참배했다. 이어 민족민주열사묘역으로 이동해 광주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 추모 기념비를 둘러보고 이한열 열사 묘소 등도 찾았다.

광주전남기자협회가 주관한 ‘5·18 역사기행’에 참가한 기자들이 10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헌화 분향한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김성후 기자

이번 5·18묘지 참배는 광주전남기자협회가 5·18민주화운동 44주년을 앞두고 전국 기자들을 초청해 진행한 ‘5·18 역사기행’ 일환으로 이뤄졌다. 기자들은 9~11일 2박 3일 일정으로 광주를 방문해 5·18 민주화운동기록관과 전일빌딩245, 옛 전남도청, 전남대 정문 등 사적지를 답사했다. 원소정 제주의소리 기자는 “제주 4·3항쟁과 닮은 5·18을 배우고 싶어 참여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들었다”며 “민주열사 묘지에서 해설사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도 조금 흘렸다. 5·18을 잊지 않고 제주로 안고 가서 4·3항쟁 진상규명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병훈 기호일보 기자는 “5·18에 대해 공부하고 현장을 다니면서 저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1980년 5월에 희생된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류성호 광주전남기자협회장은 “‘또 5·18이야?’, ‘이제 다 끝난 거 아닌가?’ 많은 이들이 이렇게 얘기한다. 5·18을 꽤나 이해한다는 기자들도 마찬가지”라며 “44년 전 언론은 5·18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2024년에는 몰라서 5·18을 외면하는 상황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5·18 역사기행이 5·18을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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