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100시간 일하고 월급 400만원, 전공의 죽어가"…서울의대 교수 '울먹'

정심교 기자 2024. 5. 1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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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한국정책지식센터가 '의사 정원, 어떻게 해야 하나?'를 주제로 개최한 포럼에서 정진행(왼쪽) 분당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가 "정부는 병원에 돌아오지 않은 전공의의 면허를 정지하지도, 사직서를 수리하지도 않아 전공의들이 알바도 못하고 직업적 자존감이 말살됐다"고 토로하고 있다. /사진=정심교 기자

"사직 전공의들은 지금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인생에서 이전에 겪지 못한 험난한 경험을 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인간으로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정진행 분당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

14일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의사 정원, 어떻게 해야 하나?'를 한국정책지식센터가 개최한 '제1097회 정책 & 지식 포럼'에서 정진행 분당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가 이같이 언급하며 눈물을 훔쳤다. 정진행 교수는 서울대 의대 및 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 1기 위원장을 맡으며 의정 갈등에서 의대 교수를 대표해 정부에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는 이날 '전공의 사직 사태의 본질과 한국 의료의 민낯'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난 구조적 문제를 짚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정 교수는 "지난 1970년대에도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가 전공의들을 찾아와 처우를 개선해주기로 약속했지만 50년이 지난 사안인데도 전공의의 처우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고 씁쓸해했다.

그 이유로 정 교수는 전공의들이 낮은 임금에 노동 시간이 주 100시간을 넘기는 환경, 전공의들이 병원 진료 업무의 70%를 담당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전공의들은 월평균 400만원, 연평균 5000만원 정도를 급여로 받는다. 그는 "전공의들이 이번에 500명 사직한 빅5 병원 중 한 곳의 경우 1년에 250억원이 적자여야 하는데, 병원은 올해 5000억원 가까이 적자가 예상된다고 한다"며 "결국 그동안 전공의 1년 치 급여로 지급하는 250억원으로 5000억원을 벌어들였다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올해 전공의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4600억원가량 적자를 볼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대병원은 전공의가 740명으로, 연평균 급여(5000만원)로 나가는 총액이 370억원이지만, 전공의들이 떠난 대학병원에선 한 달에 500억원가량 적자를 보고 있다.

2019년 서울대병원 전공의 월평균 보수. /사진=정진행 교수 발표 자료.

그는 병원이 그간 버텨온 이유가 '박리다매'의 저수가여서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수가가 원가 이하로 책정돼 있어, (의료)행위를 많이 하게 된다"고 했다. 그가 말한 '박리다매'는 그간 전공의가 저임금으로 일하면서 초과 노동에 대해선 사실상 수당을 못 받아온 점, 전국 환자들이 빅5 병원에 몰려 전공의와 빅5 교수의 체력적 한계가 극에 치달았다는 점 등이 저변에 깔려있기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났으니 박리다매에서 '다매'가 불가능해진 셈"이라고 꼬집었다.

정 교수는 사직 전공의들과 직·간접적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사직 전공의들은 여행하면서 그동안 못 본 것들을 보고, 일부러 육체노동을 하면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들은 쪽방촌 진료 봉사에 참여하거나,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소홀했던 공부를 하고, 도서관에서 그간 읽지 못한 인문학 서적을 읽고 공부한다고. 그는 "사직 전공의 가운데 정말로 생활이 어려운 경도 있다"며 "사직 금지 처분이 내려져 그나마 아르바이트마저도 할 수 없게 돼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 교수는 과거 병원에서 잦은 당직과 과로로 사망한 전공의 사례를 들며 울먹였다. 그 예로 2019년 가천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2년 차 전공의가 당직 근무 중 당직실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2022년엔 의정부성모병원에서 근무하던 30대 전공의(영상의학과 2년 차)가 퇴근 후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그는 "병원 당직실에서 숨져간 수많은 전공의의 사연을 접하며 말로 다 못 할 미안함을 느낀다. 명복을 빈다"며 "이 혼란이 현명하게 수습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또 정 교수는 "50대 후반인 내가 인턴·레지던트로 근무했을 땐 사회적으로 전공의뿐 아니라 어느 직종이든 다 과로하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의 전공의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에서 태어났다"며 "21세기 선진국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이 공부를 잘해 엘리트로 대접받으며 어깨에 힘 들어갔다가 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한 후 천대받으면서 어깨가 축 늘어진다"고 토로했다.

이어 "현재의 전공의들은 노동자 법적 보호조치는커녕 80년대 수준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고, 많이 죽어가고 있다"며 "억지로라도 포승줄에 묶어서라도 전공의와 교수들을 의료현장에 데려다 놓았을 때 과연 그들이 최선을 다하는 의료행위를 할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의대 증원책의 전면 백지화, 원점 재검토를 정부에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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