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심 품은 학생의 '정보공개청구 폭탄'에 … 골병 드는 교사들

서정원 기자(jungwon.seo@mk.co.kr) 2024. 5. 1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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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징계 불만 고교 중퇴생
9년째 보복성 정보공개청구
전국 초교 6000곳 대상으로
"임원선거 정보 달라" 청구도
국민알권리 위해 마련한 제도
오히려 악성민원 무기로 활용
교총 "교육부가 강력 대응을"

수도권의 한 시도교육청은 9년째 한 민원인의 '정보공개청구 폭탄'에 몸살을 앓고 있다. 2015년 학교를 중퇴한 고교생 A씨가 징계에 앙심을 품고 학교와 교육청에 보복성 정보공개요청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A씨는 당시 생활기록부 작성 지침, 학생 징벌 가이드라인 등을 요청하고 있다. 해당 정보가 없어 부존재 답변을 해도 법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왜 주지 않느냐"며 폭언까지 했다고 한다. A씨의 정보공개청구는 작년에 약 30건이 들어왔고, 올해 상반기에만 벌써 10여 건이다. 국민신문고 민원까지 합치면 정보공개 요청 건수는 누적 100건이 넘는다.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시작된 정보공개청구 제도가 학교와 교육청을 괴롭히는 악성 민원인의 '무기'로 악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백 개 기관에 무차별 청구를 하거나 비공개·부존재 등 법령에 따른 답변을 제공받았는데도 지속해서 정보공개청구를 해 교육 현장의 업무 부담을 가중하고 있는 것이다. 교권 침해와 업무 방해로 간주하고 교육당국이 엄정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보공개청구는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기타 공공기관 등이 보유한 정보를 국민이 청구하면 공개하는 제도다. 공공기관은 청구를 받은 날부터 10일 이내에 공개 여부를 결정해야 하며 부득이한 경우 10일 범위 내에서 연장할 수 있다. 또 공개한다면 공개를 결정한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공개해야 한다. 촉박한 시한과 무분별한 청구로 실무자들은 부담을 상당히 느끼고 있다.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대변인은 "학교폭력 또는 생활지도와 관련해 학부모의 과도한 정보공개청구가 늘고 있다"며 "현장에선 이를 처리하느라 교육에 전념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고 전했다.

지난 1일엔 서울에 거주하는 80대 B씨가 전국 6000여 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전교 임원선거 관련 정보공개청구를 제기했다. 교육계에 따르면 B씨는 지난해 말 서울시교육청이 무고와 공무집행방해죄로 고발한 학부모 C씨의 모친으로 알려졌다. 앞서 C씨의 자녀는 지난해 2월 초등학교 전교 부회장 선거에서 당선됐지만 규정 위반으로 취소 처분을 받았다. 이에 C씨는 29회에 걸쳐 학교와 교육지원청을 대상으로 300여 건의 정보공개청구를 했고 학교 측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진행한 바 있다.

일부 지역만의 문제도 아니다. 지난해 4월엔 울산 고교생 D씨가 울산 지역 20여 개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정보공개를 무분별하게 청구해 물의를 빚었다. 그는 연수 교사 명단과 내용, 시험 감독 교사 명단, 수행평가 내용, 교직원 일체의 정보, 업무분장표 등을 달라고 했다. 지역지 인터뷰에서 D씨는 "선생님들을 괴롭히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고 했다.

교권 보호 조치 강화로 악성 민원인들 운신의 폭이 좁아지면서 이들 사이에선 정보공개청구가 합법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앙갚음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비슷한 민원 제도인 국민신문고 대비 정보공개청구는 민원인의 권리를 더 폭넓게 보장한다. 국민신문고는 한 번에 한 곳에만 민원을 넣을 수 있지만, 정보공개청구는 수천 개 기관에 한꺼번에 제기할 수 있다. 반복 민원에 대해 자체 종결 처리할 수 있는 기준 또한 국민신문고보다 정보공개청구가 더 엄격하다. 직원 보호도 정보공개청구 쪽이 취약하다. 일부 기관에선 정보공개청구를 민원으로 분류하지 않고 '별도 업무'로 처리한다. 이 경우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행정안전부도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정보공개법 개정을 통한 입법 보완을 추진 중이다.

교육계는 정보공개청구 요건과 범위를 정비하고 교사와 학교에 대한 보호 방안, 과도한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처벌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과도한 민원은 교권 침해로 간주하고 교육부와 교육청이 나서서 적극 고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영춘 교총 교권강화국장은 "개인의 무차별적인 정보공개청구에 얼마나 많은 학교가 불필요한 업무 가중을 겪고, 학생 교육에 얼마나 큰 차질이 빚어질지 우려스럽다"며 "교육부와 교육청이 강력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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