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노동법 회피’ 크라우드웍스, 동료 작업자들 전부 내보냈다

신다은 기자 2024. 5. 1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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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서울지노위서 데이터 라벨러 부당해고 인정되자…해당 프로젝트 계약 일괄 종료
크라우드웍스에서 데이터 라벨러와 검수자로 일한 최아무개씨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를 인정 받았다. 김진수 선임기자

소속 작업자 1명이 최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로부터 프리랜서가 아닌 법적 노동자로 인정받은 크라우드웍스가 해당 프로젝트를 갑자기 종료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30여명의 노동자들을 일제히 내친 것으로 확인됐다. 크라우드웍스는 작업자 풀이 60만 명에 이르는 ‘데이터 라벨링’(인공지능 학습 개선에 투입되는 노동) 업계 1위 기업이다.

<한겨레21> 취재를 종합하면, 2024년 5월13일 크라우드웍스는 네이버의 메신저 앱 라인(LINE)의 쇼핑 상품 페이지( 일명 ‘Z카탈로그’)를 만드는 작업자들에게 “이 프로젝트는 5월14일자로 종료될 예정이다. 작업비는 월말 정산 후 지급하겠다”는 공지를 보냈다. 2021년 8월부터 2년 9개월 동안 이어져 온 프로젝트가 하루 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Z카탈로그 사업은 인공지능이 생성한 쇼핑 페이지를 사람이 검수하고 오류를 바로잡는 프로젝트로, 최근 노동법 위반 논란이 일었다. 2024년 4월19일 Z카탈로그 작업자인 최아무개씨가 크라우드웍스를 상대로 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내어 노동자(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관련 기사 : 제1513호 표지이야기 “틈날 때 부업, 수익 1000만원” 홍보의 진실) 지노위는 최씨가 형식적으로는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지만 실제로는 사용자(크라우드웍스)에 종속된 노동자라고 봤다. 회사의 출퇴근 시간과 급여를 미리 정했고, 근태 시트를 기록하게 했으며, 메신저로 업무 지시를 촘촘하게 내렸다는 것이다. 계약 기간도 수개월짜리 단기 용역 계약을 여러 차례 갱신했다. 기업이 저성과자를 발라내거나 일감 비수기에 사람을 줄이기 용이한 방식이다. 최씨도 12번씩 계약을 갱신하며 2년5개월 동안 일하다 13번째 갱신을 놓쳐 일자리를 잃었다.

최씨 사례가 노동법 위반 지적을 받자 크라우드웍스는 ‘노동자 흔적 지우기’에 착수했다. 2024년 4월15일 크라우드웍스는 최씨가 일한 프로젝트의 직원들에게 새로운 계약서를 공지했다. 기존과 달리 출퇴근시간을 ‘자율’로 기재하고 작업 달성 여부도 일일 할당량이 아닌 최저 할당량만 채운다는 내용이다. 직접적 지휘·감독 증거도 없앴다. 기존엔 업무 효율성을 위해 크라우드웍스 작업자가 네이버 직원에게 직접 문의하도록 했지만, 4월 이후부턴 온라인 문서에 의견을 남기도록 했다. 네이버 쪽에서 수시로 요청하던 긴급 오류 수정 지시도 사라졌다.

무더기 계약 종료는 다음 수순이었다. 크라우드웍스는 새로 만든 계약서의 적용 기간을 4월15일부터 5월14일까지로 적었다. 한 달짜리 초단기 용역 계약이었지만, 작업자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일자리를 잃을 줄은 몰랐다고 한다. 크라우드웍스가 관행적으로 수개월짜리 계약을 반복 갱신해 왔던 탓이다. 작업자 ㅅ씨는 “라인 경영권 분쟁 때문에 불안하긴 했다. 그래도 2년 넘게 갱신했으니까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했다”며 “이렇게 하루 전날 통보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현재 이 프로젝트에 소속된 작업자는 30여명이다. 상당수가 고정된 근무시간에 일했고 촘촘한 업무지시를 받았다. 이들이 최씨처럼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인 노동자로 확인되면 퇴직금과 연장근로수당 등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총 2년 이상 일한 노동자들은 기간제법에 따라 정규직으로도 간주된다.

그러더라도 한계는 있다. 노동자임을 입증한 소수에 한해 개별적으로 구제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판단 기준도 과거 공장 노동에 맞춰져 있어 입증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거나 건당 단가로 시급을 받는다면 노동자 자격에서 ‘탈락’될 수 있다. 미국과 독일은 새로운 노동 형태에 맞서 노동법 보호 대상을 확장하는 논의를 시작했지만, 한국은 논의가 더디다(관련 기사 : 제1513호 표지이야기건당 20원, 월급은 포인트…데이터 라벨링 가혹노동 실태). 플랫폼 노동자를 통째로 프리랜서로 간주하는 기업 꼼수가 손쉽게 자리잡은 이유다.

“최씨처럼 노동자임이 명확한 이들까지 프리랜서로 위장하는 것은 노동자에게 보장된 법적 권리를 기업이 마음대로 강탈하는 것이다. 이런 행위가 더 이상 시장에 통용되게 두어선 안 된다. 프리랜서를 다수 사용하는 기업이 회계 감사처럼 노동 감사를 주기적으로 받게 해야 한다. 기존 노동법의 보호 범위를 넓혀 새로운 노동을 담는 제도적 논의도 함께 가야 할 것이다.” 사건을 담당한 노무법인 로앤의 문영섭 노무사가 말했다.

크라우드웍스 쪽은 지노위 판정과 프로젝트 종료가 서로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크라우드웍스는 <한겨레21>의 문의에 “(계약 종료는) 프로젝트 계약 일정에 따른 것으로, 과제가 마무리돼 계약도 종료됐다”고 밝혔다. 최씨와 유사하게 일한 다른 노동자에 대해 근로관계 여부를 검토할지도 문의했으나 크라우드웍스 쪽은 답하지 않았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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