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PD들 '역사저널' 낙하산·폐지 논란에 "배후 끝까지 밝힌다"

노지민 기자 2024. 5. 1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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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차 시사교양 PD "외압 많이 겪었지만 이번 사례 무리수 많아…대체 누구 부탁 받고 이러나"
"섭외 요청 받은 적 없다"는 조수빈씨 측 입장 반박, 프로그램 담당 팀장 카카오톡 메시지 공개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2024년 5월14일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에서 KBS PD협회가 '역사저널 그날' MC 낙하산 논란 및 무기한 보류 사태에 대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KBS PD협회가 '역사저널 그날'의 낙하산 MC 논란 및 폐지 위기를 두고 “이 결정이 이제원 본부장 개인 의견인지, 아니면 박민 사장, 혹은 더 윗선의 결정인지” 물으며 배후를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번 사태에 따른 '역사저널' 중단은 배임 혐의로 이어질 수 있다며 즉각 해당 프로그램 제작을 재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KBS PD협회는 14일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 앞에서 '역사저널' 무기한 보류 결정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PD, 작가진을 포함한 많은 스태프, 자문 관련 학자, 기타 패널로 섭외된 출연자 등 새 시즌을 준비해 온 3개월간의 많은 노고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계약취소, 기집행된 비용 등 관련 비용은 억 단위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고 했다. “이 정도면 배임 행위 아닌가”라는 지적이다. 제작진은 유명 배우를 MC로 섭외해 2억 원가량의 협찬을 진행했다고 밝혔는데, 본지 취재 결과 새 MC는 한가인씨로 확인됐다.

PD협회에 따르면 제작진은 5월19일 첫 방송을 목표로 준비해왔다. 4월4일 새 MC를 섭외하고 이튿날 이를 이제원 제작1본부장에게 보고했지만, 25일 조수빈 전 아나운서를 MC로 기용하라는 본부장 지시가 이뤄졌다고 했다. 이들은 제작진이 29일 긴급 TV편성위원회를 요구했지만 묵살됐고, 30일로 예정됐던 첫 녹화는 무산됐다고 밝혔다. 이후 제작진이 박민 사장에게 이메일로 호소문을 보낸 가운데, 이달 8일 조수빈씨 측에서 프로그램 참여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했다. 이어 10일 이 본부장이 프로그램 무기한 보류와 제작진 해산, 지출된 비용 보상에 대한 통보를 했다는 것이다.

김세원 PD협회장은 “사측에서 제작 중단, 제작진 해산 등을 결정했다. KBS 역사와 함께했던 '역사저널 그날'을 당분간 볼 수 없게 되었다”며 “당장 기존에 제작진이 준비한 과정 그대로 방송 제작이 재개되기를 강력하게 요구한다. 이것이 이번주 내에 실현되지 않는다면 제작본부장, 사장을 비롯해 모든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사교양 PD인 기훈석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시사교양 중앙위원은 “사측이 제작진에게 항명이다, 명령 불복종이다, 협박과 위협을 하는 상황이어서 불가피하게 제작진을 대신해 현 상황을 설명드리기 위해 나왔다”고 전한 뒤 “제작진은 3주 넘게 어떻게든 프로그램을 살려보기 위해 조용히 해결하려 노력해왔다”며 “내부 구호가 '논란 제로'였다고 한다”고 전했다.

기훈석 위원은 “KBS에서 생활한 지 22년 차다. 각종 외압부터 MC 교체, 아이템 변경 사례를 많이 겪었다. 하지만 이번 사례는 여러 무리수가 많다”며 “프로그램 MC를 교체시키려면 최소한 한 달 전에는 말하고 싸운다. 3일 전이면 안 되는 건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도대체 누구의 부탁이나 명령을 받고 이러는지 계속 의문스럽다. 저희는 일차적으로 KBS 대표 프로그램인 '역사저널 그날'을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세월호 다큐 불방에 이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배후가 누군지 끝까지 밝혀내겠다”고 경고했다.

역시 시사교양 PD인 조애진 KBS본부 수석부위원장은 “제작 과정에서의 불합리한 지시와 탄압을 막는 데 에너지를 나눠 써야 한다는 사실이 통탄스럽다”며 “정말 화가 나는 건 이런 짓을 저희가 6~7년마다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KBS는 국민의 방송'이라고 우리가 시간마다 시보로 노래로 알려드리고 있지 않나. 도대체 국민의 방송에 숟가락 얹으려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할 말 있으면 제작 과정에서 치열하게 논쟁하고 제작 논리로 이야기하라. 바로 그 민주적 제작 방식 자체가 공영방송 존재 이유”라며 “'나한테 출연자 최종 결재권, 위임 권한이 있으니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다' 말할 거면 유튜브로 가라”고 했다.

▲2024년 5월14일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에서 KBS PD협회가 '역사저널 그날' MC 낙하산 논란 및 무기한 보류 사태에 대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이날 기자회견에선 조수빈씨 측이 불참 의사를 전했다는 '역사저널 그날' 팀장의 카카오톡 메시지도 공개됐다. “방금 부장에게 조수빈 매니저가 전화가 왔는데 본인들 스케줄상 녹화가 불가하다고 했다. 역사저널 그날을 안하겠다는 소리냐고 물었더니 스케줄상 할 수 없다고 했다 한다”며 “부장이 국장, 본부장, 사장실에 이 이야기를 전하고 최종결정에 참고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는 내용이다. 전날 조씨 소속사인 이미지나인컴즈 측은 “진행자 섭외를 요청받은 사실이 없다”며 “'낙하산' 표현으로 편향성과 연결지어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제작 재개 시 기존에 섭외된 출연진이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에 대해 대해 기 위원은 “제작진과 시간 단위로 (소통)하지 않아서 모르는데 같은 PD 입장에서 '재개되면 하겠나, 안 하겠나' 묻는 게 송구스럽다”며 “기약 없이 2주간 녹화를 못했다. 연예인 분들이나 교수님들이 불가피하게 가만히 계셨는데도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죄스러운 심정으로 최대한 예의를 차리면서 송구한 마음을 가지고 대응하고 있는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들은 제작진으로부터 이번 사태를 전달 받은 박민 사장이 진상조사를 명령했지만 공식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기 위원은 “제작본부장은 경영진이 결정한 것이기에 내 손을 떠났다, 너희가 사장 설득하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KBS PD협회는 세월호 10주기 '다큐인사이트' 불방에 이어진 이번 사태를 두고 이제원 제작본부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PD협회는 앞서 4월30일~5월3일 언론노조 KBS본부 시사교양구역의 긴급설문조사(투표권자 138명 대상, 투표율 87.7%) 결과 응답자 99.2%가 이 본부장이 '당장 사퇴'해야 한다 답했다고 강조했다.

KBS 사측은 이날께 PD협회 주장 등에 대한 입장을 추가로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사측은 “프로그램이 폐지된 건 아니고 2월 중순 이후로 재정비 중에 있다. '역사저널 그날' 다음 시즌 재개를 위해 프로그램을 리뉴얼하는 과정에서 프로그램 형식, 내용, MC, 패널 출연자 캐스팅 등 관련해서 의견 차이가 있었다”며 “향후 제작을 재개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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