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 내리치며 “답 좀 해 보시라고”…감사원 ‘인격권 침해’ 법원이 인정

문예슬 2024. 5. 14.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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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키보드를 주먹으로 내리치거나 반말을 사용하는 등 인격권을 침해하고, 사건과 관련 없는 피감사자의 사생활 관련 정보가 수집된 걸로 드러나 법원이 국가의 손해 배상을 인정했습니다.

그동안 감사원의 감사 과정에서 강압 조사와 인권침해가 있다는 의혹이 종종 제기됐지만, 법원에서 이를 인정하고 손해배상을 판결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9일 한국조폐공사에서 소속 A 모 씨가 법무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를 판결하고 위자료 3백만 원을 인정했습니다.

■ 감사원 수사 의뢰했지만 경찰 "혐의 없어"

앞서 감사원은 2020년 11월부터 조폐공사에 대한 감사를 벌였습니다. 감사 내용엔 A 씨가 2018년부터 담당한 차세대 전자여권 사업도 포함됐습니다.

감사원은 차세대 전자여권 사업 입찰 과정에서 참가 자격이 없는 업체와 구매 계약이 체결됐다고 결론 내고, A 씨에게 정직 징계처분을 요구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의 결론은 달랐습니다. 1년간의 수사 끝에 선정된 업체는 무자격 업체가 아니었다고 정반대 결론을 내고 사건을 검찰로 넘기지 않고 종결했습니다.

경찰 수사로 혐의는 벗었지만 A 씨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감사 과정에서 본인 동의 없이 포렌식이 이뤄졌고, 변호사 입회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문답 조사 과정에서 강요와 압박이 있었다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결국 A 씨는 법원에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습니다.

1년 반 동안의 법정 다툼 끝에 법원은 원고의 주장 대부분을 인정했습니다.

■ "사건과 무관한 사생활 자료까지 포렌식"

우선 법원은 포렌식 과정에 강압이 있었다고 인정하기엔 부족하다 판단하면서도, 감사 대상은 직무 수행과 관련한 자료여야 하는데 감사관이 이를 벗어났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감사관들은 규정을 위반해 구매계약과 관련 없는 자료까지 업무용 PC에 보유했고, 여기에는 A 씨의 사진 등 사생활이 담긴 자료가 상당수 존재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법원은 감사관들의 위법한 자료수집으로 A 씨의 사생활의 자유가 침해됐다고 보고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A 씨의 변호사 조력권도 침해됐다고 봤습니다.

감사원의 일반적인 감사에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곧바로 인정된다고 볼 수는 없어도, 이번 사건의 경우 형법상 범죄인 '업무상 배임'이 혐의에 포함돼 있고 감사 과정에서의 문답서가 형사재판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있는 등 형사 절차에 준하는 방어권이 보장돼야 했다는 점을 따져야 한다는 겁니다.

■ 키보드 주먹으로 치고 언성 높이고…"답 좀 해 보시라고"

이번 판결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감사 과정에서의 '인격권 침해'를 인정했다는 부분입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감사관들은 A 씨에 대한 문답조사 과정에서는 주먹으로 키보드를 내리치거나 큰 소리로 답변을 추궁하고 반말을 사용하는 등 부적절한 언행이 있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문답조사 과정에서 감사관의 발언은 아래와 같습니다.

[2021년 4월 23일 문답조사]
A 씨 : 저는 분명히 그런 역할을 했고요.
감사관 : 아니, 그러니깐. 아유,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 하-. 저랑 싸우자는 겁니까? 뭡니까, 지금? (언성을 높이며) 아니, 그러니까 제안서를, 차장님. 제안서를 2월 11일날 받았다매?
A 씨 : 예, 예.

[2021년 4월 27일 문답조사]
A 씨 : 그렇게 말씀하실 거면요, 그냥 답을 쓰세요, 그러면. 제가 계속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금요일도. 왜 문답을 바꾸십니까?
감사관 : 지금 얘 소리 지르기 시작해.
A 씨 : 뭐, 0000처하고 이 사항에 대해서 설명을 따로.
감사관 : 팀장님. 아, 나 진짜. (들어 올렸던 손에 힘을 풀어 떨어뜨리듯 키보드를 주먹으로 침) 말하기 싫으세요? 차장님. (중략) 아-, 진짜 미치겠네. (000에게) 답 좀 해 주세요. 예? 팀장님. 이거 때문에 오셨을 거 아니에요. 답 좀 해 보시라고. 팀장님.

재판부는 "범행을 추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 통념상 허용되는 범위를 넘어 피의자에게 모욕감을 주거나 수치심을 불러 일으켰다면 인격권을 침해한 위법행위로 평가돼야 한다"며, "(이는) 공무원의 직무감찰에 임하는 감사관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감사원 측은 A 씨의 사회적 평가가 저해되지 않은 이상 인격권이 침해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주장했지만, 법원은 "침해된 원고의 권리는 개인의 인격에 본질적인 생명, 신체, 건강, 성명, 명예, 초상 및 생활 등에 관한 권리의 총체로서의 인격권"이라며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감사원의 한 직원이 공기업 감사 과정에서 서류를 조작해 멀쩡한 제품을 성능 미달로 둔갑시킨 사실도 내부 감찰로 적발된 바 있습니다.
([연관 기사] 멀쩡한 장비를 ‘성능 미달’로…감사 조작한 ‘간 큰 공무원’ 2024. 4. 22. KBS 뉴스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45935)

당시 서류 조작과 은폐는 피해를 입은 업체에서 6년에 걸친 이의제기와 정보공개청구 소송 끝에 드러나게 됐고, 해당 감사관은 감찰 과정에서 다른 피감기관에 대한 고압적 행태도 문제가 됐던 것으로 확인된 바 있습니다. 감사원의 권한이 작지 않은 만큼 이런 사건이 반복되면 기관의 신뢰가 깎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A 씨 측 김영희 변호사는 "그동안 감사원이 원하는 감사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강압조사를 한다는 문제 제기가 많았다"며 "감사원의 강압조사,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침해, 불법 디지털포렌식에 대하여 법원이 최초로 불법행위라는 것을 인정하고 손해배상책임을 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감사원은 별도의 입장 없이 법무부와 협의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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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슬 기자 (moonst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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