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형제, 모친과 ‘상속세 동맹’ 깨졌다…700억 세금폭탄 앞두고 치킨게임

김명지 기자 2024. 5. 1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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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 회장직 해임으로 갈등 재점화
한미약품그룹 고(故) 임성기 회장 창업주 일가 경영권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 조선DB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가 14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모친인 송영숙 회장을 공동대표에서 해임한 것을 두고 제약업계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열린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서 송영숙·임종훈 모자(母子) 공동대표 체제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한미 창업주 가족의 갈등이 봉합되는 것으로 비춰졌는데, 불과 한 달여 만에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앞서 한미사이언스는 지난 3월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고(故) 임성기 회장의 장·차남인 형제 측이 승리하며 경영권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후 지난달 4일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서 송 회장이 임종훈 대표와 공동대표를 맡기로 했고, 업계에서는 형제가 갈등 봉합에 나섰다고 해석했다. 그런데 한 달만에 모친을 공동대표에서 해임한 것이다.

업계는 한미그룹 인사 개편과 상속세 해결을 두고 형제와 모친 간 이견이 컸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난달 15일 한미사이언스는 임주현 부회장과 신성재 전무이사를 한미약품으로 이동하는 인사발령을 냈다가 열흘 만에 철회했다. 이 인사는 임종훈 대표가 주도한 것인데, 인사 발표 직후 송 회장이 ‘따르지 말라’고 회사에 공지문을 돌려 무산됐다. 공동대표는 회사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합의를 해야 한다.

모든 갈등의 시작은 거액의 상속세였다. 임 회장 타계 이후 창업주 가족에게는 약 5400억원의 상속세가 부과됐다. 현재 남아있는 상속세는 약 2644억 원 정도인데, 700억원 규모의 3차 납부 기한이 지난 3월이었다. 오너 가족은 국세청과 합의해서 이달까지 납부를 미룬 상태다. 송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 모녀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제약과 무관한 태양광 업체인 OCI와 합병을 시도했으나 형제의 반대로 무산됐다.

임종윤·종훈 형제는 글로벌 펀드에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매각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는 그림을 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투자 속성이다. 한미사이언스의 지분은 임종윤·종훈 형제와 특수 관계자가 28.42%,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16.77%를 갖고 있다. 둘의 지분을 합하면 45%가 넘지만 과반은 되지 않는다.

그래픽=정서희

임종윤·종훈 사장은 경영권을 유지하려고 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경영권 분쟁 중인 회사의 지분 45%를 매입하는 것은 모험이다. 반대로 신 회장 입장에서는 한미 일가족이 합심하면 자신의 주식은 상품 가치가 떨어져 달갑지 않을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송 회장이 공동대표를 유지하길래, 글로벌 펀드로 일가족 지분을 매각하는 것으로 정리된 줄 알았다”고 말했다.

업계는 이번 해임 건을 두고 송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이 형제와 손잡기를 끝까지 거부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이사회가 열리기까지 장·차남 사이 갈등도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훈 대표가 임시 이사회를 소집했지만 장남 임종윤 이사는 경영권 분쟁이 드러나면 투자 유치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모친 해임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합의가 어렵다는 얘기는 달라진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국세청에 납부기한 연장을 요청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상속세 납부 기한은 올해 말까지 최장 6개월 연장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납부기한을 연장하려면 일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다. 갈등이 폭발하는 상황에서 ‘동의’를 얻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니 한미 일가가 모녀와 형제로 나뉘어 상속세 치킨게임(상대가 백기를 들 때까지 버티는 생존 경쟁)에 나섰다는 해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오너 가족이 합의를 해야 일가족 지분을 글로벌 투자자에게 매각할 수 있다”며 “하지만 양측이 서로에게 상속세 납부 책임을 미루면서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은 지금까지 상속세 1120억원을 납부했으며, 임종윤·종훈·주현 남매는 각각 520억원, 510억원, 570억원을 냈다. 재원은 은행·증권사 주식담보대출을 최대한으로 끌어서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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