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탈도 많았던 선방위, ‘논란의 심의 고리’를 살펴보다

박채연 기자 2024. 5. 1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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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 선거방송심의위원회 결산
백선기 선거방송심의회 위원장이 지난달 18일 서울 양천구 방송회관 방심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15차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난 10일 제22대 총선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가 활동을 마쳤다. 백선기 선방위원장은 마지막 회의에서 “이번 선방위는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전문적 지식과 학문적 양심, 식견을 반영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선방위는 역대 최다 법정 제재와 위원들의 편파 발언 등으로 활동 내내 논란이 됐다. 전문가들은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선방위가 과도한 권한을 행사하는 만큼 선방위원 구성의 절차적 정당성 확보, 사회적 견제가 강화돼야 한다고 했다.

‘논란의 심의 고리’···과정마다 삐거덕댄 선방위

14일 선방위에 따르면 이번 선방위는 총 30건의 법정제재와 최고 수위인 관계자 징계 14건을 의결해 역대 최다 법정제재를 기록했다. 선방위의 법정제재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제재와 마찬가지로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평가에 반영된다. 백 위원장은 20대 총선 선방위에 대해 “우리와 비슷하게 중징계를 많이 내렸다”고 했지만, 과거 가장 많은 법정제재를 내린 18대 대선과 20대 총선 선방위는 각각 19건의 법정제재를 의결했다. 관계자 징계는 각각 0건과 1건에 그쳤다.

이번 선방위가 문제가 된 것은 제재 건수가 늘어난 것 뿐 아니라, 제기된 민원이 대부분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방송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14일부터 지난 3월20일까지 지상파 방송 부문에 접수된 민원 304건 중 정당 민원 146건은 모두 국민의힘이, 단체 민원 32건은 모두 공정언론국민연대(공언련)이 제기했다. 공언련은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6월 설립된 보수 성향의 언론시민단체다.

민원이 제기된 방송은 해당 방송이 선거방송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사무처의 판단을 거치지 않고 선방위 안건으로 상정됐다. 선방위원들은 대부분 안건에 대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심의했다. 류희림 방심위원장은 선방위 안건을 상정하는 역할임에도 선방위는 방심위와 독립적인 기구라며 손을 뗐다. 선방위 운영 규칙엔 ‘방심위원장은 회의소집전 안건을 선방위원에게 미리 통보해야 한다’고 돼 있다. 류 위원장은 “통보만 할 뿐 어떻게 하라고 말할 권한도,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로 인해 선거방송이라는 민원인의 취지만으로 선거방송에 해당하지 않는 방송분까지 선방위가 심의할 수 있게 됐다. 김유진 방심위원은 “방심위가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나. 이걸 다 민원인 책임으로 넘기면 심의 권한 중 상당 부분을 민원인이 가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정제재를 받은 30개 방송에 가장 많이 적용된 조항은 ‘공정성’ 조항으로 26개에 적용됐다. 위원들은 “형식적·기계적인 공정성은 실질적인 형평성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라고 봤다. 그러나 공정성에 대한 선방위의 판단 기준이 지나치게 경직돼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례로 위원들은 방송을 분과 초 단위로 계산해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내용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거나, 보수·진보와 여당·야당 친화적 패널들을 임의로 구분해 패널의 수가 균형적이었는지 판단했다. 김 위원은 MBC <스트레이트> 최근 15회 방송분 중 정부·여당 주제의 방송은 10회, 야당 주제는 0회이기에 편파적이라고 했다.

심의 과정에서 위원들은 민원인의 관점을 우선으로 두고 판단하는 모습도 보였다. 권재홍 위원은 “민원인이 뉴스가 상당히 편파됐다는 느낌을 받고 민원을 제기했기 때문에 민원인이 왜 그렇게 느꼈을까 하는 관점에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부 위원들의 발언은 편파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철호 위원은 김건희 여사 디올백 논란을 두고 “가정주부가 청탁 선물을 받았다고 온 국민에게 떠드는 꼴”이라고 표현했다. 김문환 위원은 여·야의 공천관련 보도를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는 팩트니까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윤희숙 전 의원은 ‘사천’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성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22대 총선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원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의견진술 자리에서도 방송사 관계자와 선방위원들의 공방이 이어졌다. 방송 관계자가 심의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반발하는 것을 두고 위원들은 “반성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손형기 위원은 CBS에 대해 “선방위 심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등 의견진술자의 답변 태도나 내용을 볼 때 문제가 많다. 방송의 기본이 안 돼 있는 이런 분들이 방송하니까 선방위에 올라오는 것”이라고 했다.

법정제재를 받은 30개 방송 중 29개가 재심을 신청했다. 29개 중 1개만 인용돼 법정제재의 수위가 ‘경고’에서 ‘주의’로 조정됐고 나머지는 모두 기각됐다. 제재를 의결한 선방위원들이 또다시 재심의 인용·기각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재심이 인용되기 어려운 구조다. 최 위원은 “새로운 팩트가 있으면 재심에서 반영해야겠지만 대동소이하다. 인용하면 앞선 결정에 대한 스스로의 부정”이라고 했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심의 의결 흐름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선방위 논란은 방심위에서 출발했다

이번 선방위의 과잉심의 논란에서 방심위도 자유롭지 못하다. 방심위에서 선방위원 추천 단체를 결정하는데, 류희림 방심위원장은 추천 단체의 관행을 깨고 개별 방송사인 TV조선에 추천 몫을 줬다. 시민단체 추천 몫 역시 신생 보수단체인 공언련이 가져갔다. 당시 야권 추천 방심위원들은 특정 방송사나 대표성이 떨어지는 신생 단체에 선방위원 추천 몫을 준 것에 대해 비판했다.

이해충돌 논란도 일었다. 최 위원은 국민의힘 추천 몫으로 선발됐지만 지난해 10월까지 공언련 대표를 맡았다. 언론노조 방심위지부는 지난 2월 공언련 이사장인 권 위원과 최 위원이 공언련에서 민원을 제기한 사실을 알고도 그 민원을 심의했다며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으로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선방위원 구성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상임위원회가 야권 추천 위원 몫 1자리는 공석인 채 류 위원장과 황성욱 위원 두 여권 추천 위원으로만 구성된 상태에서 추천 단체를 의결했기 때문이다. 전체회의에서 야권 추천 위원들이 이에 반발해 퇴장했지만 남은 여권 추천 위원들끼리 안건을 통과시켰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월30일 서울 양천구 방심위에서 MBC 바이든-날리면 보도 심의 등을 위한 제3차 방송심의소위원회 임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5개월 임시기구가 막강한 권한 행사 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선방위에 대해 현 선거방송 심의제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이번 선방위는 제도적, 인적, 운영의 문제를 다 드러냈다”며 “특히 5개월 활동하는 임시기구가 막강한 규제권을 행사하고 사라지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제도를 잘 마련해 놓더라도. 결과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선방위가 보여줬다”고 했다.

심 교수는 “상설 기구인 방심위가 선거방송 심의 업무를 맡아야 한다. 업무 과중 문제는 방심위 내 선거방송 심의 지원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만드는 등 보완책도 생각해볼 수 있다”며 “이번 선방위를 계기로 공정성 조항이나 의견진술 과정 등 방송 심의 전반의 문제를 논의해봐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결국 누가 그 자리에 들어오는지가 중요하다. 언론인, 교수 등 여야 불문하고 정치적 역할을 한 사람들이 방송심의를 할 수 없도록 사회적인 견제가 강화돼야 한다”고 했다.

윤창현 민주노총 언론노조 위원장 등 4명은 지난달 29일 백선기 위원장·권재홍·김문환·손형기·최철호 위원에 대해 “피고발인들의 과잉 징계 및 월권 심의는 선방위라는 사회적·정치적 지위와 권세에 의한 압박으로서 방송사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하다고 평가될 정도의 세력”이라며 업무방해죄로 고발했다.

선방위는 선거방송 심의를 위해 방심위에 선거 기간 동안 임시로 설치된다. 방심위로 들어오는 민원을 사무처가 접수해 안건을 만들면 선방위원들은 선거방송 심의 규정에 기초해 심의를 진행한다. ‘문제없음’ ‘행정지도’ ‘법정제재’ 중 법정제재 결정 전에는 방송사업자의 소명을 듣는 의견진술 절차를 거쳐야 하며 심의 결과에 불복할 경우 선방위에 재심을 신청할 수 있다.

박채연 기자 applau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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