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1천억달러 증발’ 한국계 빌 황, 증권사기 혐의 재판 시작

정의길 기자 2024. 5. 14.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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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검찰 “조작과 거짓, 카드로 만든 집”
변호인 “오래된 투자 스타일” 무죄 주장
증권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된 아키고스 펀드의 설립자 빌 황이 13일(현지시각) 뉴욕 연방법원 맨해튼지법에 변호인과 함께 출석하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2021년 3월 월가 은행들에 100억달러(약 13조6950억원) 이상의 손실을 안긴 마진콜 사태로 기소된 한국계 투자가 빌 황(60·한국명 황성국)의 증권사기 혐의 등에 대한 재판이 13일(현지시각) 뉴욕 연방법원 맨해튼 지법에서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갔다.

아키고스 캐피탈 매니지먼트의 설립자인 빌 황은 은행에 차입한 자금으로 특정 주식과 관련 파생상품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다가 관련 주식들의 급작스러운 하락에 이은 마진콜로 그 가치가 1천억달러나 증발하며, 돈을 꿔준 은행들에게 100억달러의 손실을 발생시켰다. 미국 연방검찰은 그와 아키고스의 전 최고재무책임자 패트릭 핼리건을 증권사기 및 협박모의로 기소했다. 마진콜은 선물계약의 예치증거금이나 펀드 투자원금 손실을 보전하라고 고객에게 요구하는 일을 말한다.

이날 심리에서 검찰은 빌 황이 자신의 펀드 회사가 파산되는 과정에서 시장을 조작하고 은행을 속였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빌 황은 억만장자였으나,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거의 모든 위험을 무릅썼다”며 빌 황이 운영하던 아키고스는 “조작과 거짓에 기초한 카드로 만든 집이었다”고 질타했다.

빌 황이 운영하던 아키고스는 2020년 3월부터 차입 자금과 파생상품을 이용해 소수의 기술주 및 미디어주에 과도하게 투자해 거래하며 1년 사이에 시장에서 투자 규모를 100억달러에서 1600억달러까지 부풀렸다. 하지만 집중 투자했던 바이어컴시비에스(현재 파라마운트 글로벌) 등의 주식 가치가 갑자기 하락하며 마진콜 사태가 발생해, 며칠 사이에 시장에서 1천억달러가 증발하는 주식 매도 사태가 벌어졌다. 아키고스가 투자한 종목의 주가가 하락하자 증거금을 추가로 납부해야 하는 마진콜이 발생했고, 골드만삭스 등이 담보주식을 블록딜로 내다 팔면서 손실이 확산된 것이다.

이 사태로 55억달러의 손실을 본 크레디스위스(CS)는 결국 자국 경쟁사인 유비에스(UBS)에 인수됐다. 유비에스는 크레디스위스가 아키고스와 한 위험한 거래로 4억달러의 벌금을 책임져야 했다.

아키고스는 스왑을 이용해 300억달러 이상을 한 회사에 투자했고, 이 종목의 매도를 막으려고 하루에 10억달러를 매입하기도 했다고 검찰 쪽은 밝혔다. 검찰은 빌 황의 동기가 탐욕과 이기주의라며 그가 자신을 워런 버핏과 제프 베이조스에 비교하며 재산을 500억달러 이상 모으려 했다고 밝혔다.

빌 황과 핼리건은 검찰이 기소한 혐의에 무죄를 주장하고 있으나, 아키고스의 전직 임원 2명은 유죄를 인정하고 검찰에 협조하고 있다.

빌 황의 변호인은 이날 아키고스의 거래 관행과 스왑 사용은 적법하고 조작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소수의 주식에 집중 투자하는 것은 그의 오래된 투자 스타일이라고 했다. 변호인은 또 아키고스가 빌 황의 개인 자산을 운용했고, 빌 황 스스로가 아키고스가 끼친 손실의 대부분을 책임졌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은 빌 황이 직원들에게 아키고스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대한 구성과 위험성에 대한 정보를 숨기게 한 뒤 은행에서 더 많은 돈을 빌리도록 지시했다고 반박했다. 증인으로 나온 유비에스의 전 임원은 아키고스가 2021년 3월에 대출한도를 120억달러로 높여달라고 요구하는 등 반복해서 대출한도 증액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아키고스 쪽은 자본금의 75%를 한 종목에 투자하기도 했는데, 이를 35%로 호도했다고 검찰은 주장했다. 증인인 유비에스의 전 임원은 아키고스의 그런 포트폴리오를 알았다면 “우리는 아마 패닉 버튼(주의 경보)을 눌렀을 것”이라고 말했다.

목사인 부모를 따라서 소년 시절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빌 황은 대학 졸업 뒤 유명한 헤지펀드인 타이거 매니지먼트의 창립자 줄리언 로버트슨 밑에서 일하다가 실력을 인정받아 그의 도움으로 ‘타이거 아시아 매니지먼트’를 만들었다. 그의 펀드는 월가에서 아시아 전문 최대 펀드로 성장했으나, 2012년 홍콩 투자와 관련해 내부자 거래혐의로 4400만달러 벌금을 냈다. 그는 그 이후 자신의 돈으로 운용되는 아키고스를 설립해 투자해왔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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