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기 희생자 ‘부역 낙인’ 속…다른 과거사 조사도 줄줄이 파행

고경태 기자 2024. 5. 1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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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단체들 “의문사는 언제 제대로 조사”
진실화해위, 한국 전쟁기 학살 조사 인력 부족에
의문사 등 조사 2국 인력 6명으로 돌려막아
14일 오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입주한 서울 중구 퇴계로 남산스퀘어빌딩 앞에서 의문사 유가족 대책위, 서울대 강제징집 프락치 강요공작 피해자 모임 등 소속 20여명이 ‘의문사 진실규명을 위한 진실화해위 규탄 집회’를 열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고경태 기자

“의문사 유가족들은 속이 탄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서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한 ‘부역자 낙인찍기’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 여파로 한국전쟁을 제외한 인권침해 사건 또한 조사관 부족과 잦은 변경으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진화위는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을 다루는 조사1국의 파행으로 조사관 이탈 등이 발생하자, 오는 6월까지 의문사나 삼청교육대 등 한국전쟁기 이외의 사건을 다루는 조사 2국 직원 6명을 옮겨 공백을 메울 방침이다.

의문사 유가족 대책위, 서울대 강제징집 프락치 강요공작 피해자 모임 등 소속 20여명은 14일 오후 1시 진실화해위가 입주한 서울 중구 퇴계로 남산스퀘어빌딩 앞에서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진실화해위 규탄 집회’를 열고 “의문사 담당 조사관을 수시로 바꾸고 타 조사국으로 조사 인력을 보내는 등 ‘선택과 집중’의 조사방식으로 인해 의문사는 언제 제대로 조사가 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다. 올해 1월 연장된 조사 기간 1년이 의문사 진상규명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추모연대) 20여명은 3월19일 오전 경기 과천시 추사로 54 국군방첩사령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군 의문사 자료 공개”를 요구했다. 고경태 기자

현재 진실화해위에서 한국전쟁기 사건은 조사1국, 한국전쟁을 제외한 군 의문사, 삼청교육대 등 인권침해 사건은 조사2국이 맡고 있다. 문제는 조사1국 조사관 일부가 업무를 정지 당하고 사직하며 업무 공백이 생긴 데다 조사2국보다 사건 이 많다는 이유로, 추가 증원 없이 조사1국의 빈자리를 조사2국 조사관들로 메우고 있다는 점이다. 조사1국 인력난엔 지난해 12월 ‘직원 찍어내기’ 논란 속에 9명 징계로 마무리된 검·경에서 파견 받은 인력으로 진행한 특별감사 결과가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게 중론이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지난 3월까지 조사2국의 신규 별정직 조사관 2명과 파견직 1명 등 3명이 조사1국으로 이동했고, 6월 초순까지 별정직 조사관 3명이 추가로 이동할 예정이다. 올해 들어서만 6명이 소속국을 바꾸는 셈이다. 이러한 국간 이동을 반영할 경우 조사1국의 조사관 총원은 82명, 2국은 73명(서울 62명, 창원 소재 3·15과 11명)이 된다.

조사2국 인력이 축소되면서 사건별 조사관들의 업무 부담도 늘었다. 가령 해외입양과 강제징집 담당 조사관 수는 각각 4명에서 3명으로, 삼청교육대 관련 조사관 수는 3명에서 2명으로 줄었다. 조사2국의 한 조사관은 14일 한겨레에 “2국 신청사건도 직권으로 처리할 게 많은데 1국만 조사관을 늘리는 건 해법이 아니다. 지금 상황에선 1·2국 전체 인력을 늘리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4월16일 기준 조사2국의 미처리 사건은 1526건(41.3%)이라고 한다. 2국에 남은 굵직한 사건으로는 군 의문사, 국회 프락치, 장기수 전향공작, 한민통, 조선정판사, 해외입양 등이 있다. 조사2국의 한 관계자는 “조사2국의 미처리 사건 수가 조사1국(8256건)보다 적지만, 일괄조사로 진행하는 집단희생 사건 위주인 1국에 비해 개인별로 조사를 해야 하는 사건이 훨씬 많다. 건수를 단순비교할 문제는 아니”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16일에도 직권조사를 요구하는 형제복지원 사건 미신청인들과 면담이 잡혀 있는데 ‘조사관이 없어서 힘들다’고 하면 ‘1국에 보낼 조사관은 있으면서 무슨 소리냐’고 항의한다”고 말했다.

과거사 단체들은 인력 파행 운영과 별도로 “의문사 조사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진실화해위에 날을 세우고 있다. 이형숙 추모연대 진상규명 특위 부위원장은 “자료 수집에만 의존하지 말고, 관련 참고인을 불러 조사하고, 청문회를 통해 조사할 것을 지속해서 요구했으나 의문사 조사 관련 출석요구서나 동행명령장 발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특히 몇 달 전 각하된 의문사 희생자 김성수 사건을 예로 들면서 “신청인이 추가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조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서울 신림동 자췻집에서 전화 받고 나간 지 3일 만에 부산 앞바다에서 시멘트 덩이를 매단 채 발견된 서울대 학생 김성수의 죽음을 밝힐 수 있는 추가 자료를 유가족이 어떻게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의문사를 밝히라고 진실화해위가 출범한 것 아니냐”고 했다. 이에 대해 조사2국의 한 관계자는 “비난을 달게 받겠다”면서도 “의문사 사건 하나 하나가 품이 엄청 들다 보니 조금 더 처리가 용이한 사건을 먼저 할 수밖에 없고, 불확실한 사건에 대한 조사관 투입을 뒤로 미루게 된다”고 했다.

현재 의문사 사건은 조사2국의 조사5·6·8과가 나눠서 하고 있다. 하지만 전담 조사관이 전체 1명 뿐이고 나머지는 다른 사건 조사를 겸하다 보니 최근과 같은 인력축소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조사2국 관계자는 “6명 외에도 더 인력을 빼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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