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 알려준다면서 시작부터 0%?

이미연 2024. 5. 1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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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퍼센트 % : 통계로 읽는 한국 사회, 숫자가 담지 못하는 삶
세대·주거·젠더·노동 등 한국사회 골머리 이슈 세심하게 다뤄

당당히 '통계'를 주제로 내세운 이 책은 자신있게 '0%'로 시작한다. 탈고 전 '0%에 가까운 수치'로 살짝 수정되긴 했지만, '통계의 본질은 0% 아닐까'라는 밑도끝도 없는 상념에 잠식되게 만든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첫 주인공은 2020년의 방송인 사유리 씨다. 그가 '푸른 눈의 아이'를 출산했는데 한국에서 '여성 단독 출산', '비혼 출산' 첫 사례였던터라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실제 당시까지 '한국에서 결혼 없이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사례'는 보고되지 않기도 했다.

'최저 출산율' 수치를 매년 새롭게 쓰고 있는 한국에서 이런 사례는 앞으로도 불가능할까. 함께 놀라셔도 된다. 아니다. 한국에서는 이를 법으로 막고 있지 않다.

비혼출산의 실질적인 벽은 대한산부인과학회의 윤리 지침에 있다. 여성 단독 출산에 필요한 정자 공여를 '사실혼을 포함한 부부에 한해서'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 국가인권위원회가 2022년 5월 "법률상 금지 규정이 없는데 배우자 없는 여성의 출산을 제한하는 건 차별"이라고 권고하기도 했지만, 학회는 여전히 "사회적 합의가 우선"이라면서 이를 거부하고 있다.

사유리 씨의 출산 후 여성 단독 출산에 대한 요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 2021년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비혼 여성 응답자의 26%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을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책에서는 2023년 말에 한국에서 동성 부부가 출산한 사례도 소개했다. 그래서 이 주제의 퍼센트는 애초 '0%'였다가 출간을 앞두고 '≒0%'로 최종 수정됐다.

한국의 '출산율 문제'와 관련한 또다른 통계로 집값과 소득도 살펴봤다. 2021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주택 가격 20% 상승시 합계 출산율은 36% 하락했다는 연구가 있었다. 이듬해 한국경제연구원은 소득 하위층(1분위)의 출산율이 소득 상위층(3분위)의 39.1%밖에 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했다.

같은 해 통계청은 18세 미만 자녀와 함께 사는 기혼 여성(15~54세, 453만 6000명) 가운데 25.3%로, 네 명 가운데 한 명꼴이라는 조사결과를 공개해 한국의 여성들이 '경력 단절' 현실을 숫자로 보여줬다. '출산과 육아가 집중되는 30대 중반 들어 여성의 고용률은 57.5%까지 뚝 떨어진다'는 기획재정부(2021년)의 발표 역시 한국 사회의 어떤 민낯을 보여주는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렇듯 이 책의 저자가 심사숙고해 고르고 고른 비혼 출산, 경력 단절 여성, 주택가격 통계들은 '한국의 출산율'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연결된다. 최근 '이동권 투쟁'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는 장애인과 Z세대, 성소수자, 반지하 거주민, 베트남전쟁 피해자, 운전기사와 자립 준비 청년들도 품는다.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현장들을 쫓아다닌 JTBC 현장고발 코너 <밀착카메라>를 비롯해 여론조사의 행간을 분석하는 <여론 읽어주는 기자>, 통계로 보는 뉴스 <퍼센트>를 기획·취재하며 정치부와 사회부에서 대한민국을 샅샅이 목격한 저자는 이 책에 숫자가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 이들의 삶을 경청한 부분들까지 세심하게 기록했다. '결식카드'로는 편의점밖에 갈 수 없는 아이들, 학대로 고통받지만 부모의 처벌이 아닌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들, 제대로된 준비없이 '자립'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도 사회로 내던져지는 자립준비청년들까지 '통계 이면에 숨쉬는 사람'에 한국사회가 주목해야한다고 날카롭지만 매섭게 지적한다.

"좋은 일의 퍼센트는 점점 내려가고, 좋지 않은 일의 퍼센트는 계속 올라가는구나. 읽는 내내 그 이유에 대해 고민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있다. 각각의 퍼센트 진행이 거꾸로 되길 바라는 마음, 나는 안지현 기자가 그래서 이 책을 썼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추천한 언론인 손석희 씨의 말이다.

이미연기자 enero2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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