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시각] 마피아 영화 같은 태광그룹의 막장 경영

박성우 기자 2024. 5. 1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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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서 김치·와인 강매가 무슨 말인가요. 오너와 2인자가 이렇게 싸우는 기업을 본 적 있나요. 태광그룹 경영에는 리스크(위험 요인)만 있고 리더십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게 회사 맞습니까?”

최근 만난 태광의 한 임원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의 본질을 오너와 2인자의 싸움이 아니라 리더십 부재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오너 리스크’, 2인자인 김기유 전 경영협의회 의장과의 갈등, 세 번의 경찰 압수수색에 따른 피해를 회사와 직원, 주주들이 보고 있다는 것이다.

횡령·배임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는 이 전 회장은 또다시 구속 기로에 놓였다. 범죄 혐의도 대기업 오너의 죄목으로 흔히 볼 수 없는 강요, 협박, 법인카드 유용, 공사비 대납, 김치·와인·골프 회원권 강매 등 자극적인 내용뿐이다. 2018년 재계 순위 36위까지 올랐던 태광은 수많은 논란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52위로 추락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지난 7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혐의로 이 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에서 영장이 발부되면 이 전 회장은 지난해 8월 광복절 특사로 사면된 지 9개월 만에 다시 구속된다.

2004년 취임한 이 전 회장은 과거 ‘M&A의 명수’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추진력이 강했다. 20여개 지역케이블TV 사업자를 인수해 티브로드를 탄생시켰다. 2005년 쌍용화재(현 흥국화재), 피데스증권중개(현 흥국증권), 예가람저축은행 등을 연이어 인수했다. 그 결과 섬유가 주력이었던 태광그룹은 미디어와 금융 부분으로 영역을 넓혀 계열사 50개를 보유한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수백억원대 회삿돈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2011년 구속기소 되면서 이 전 회장에게는 횡령, 비자금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여기에 구속기소 된 직후 간암 등 건강 악화를 이유로 보석 석방돼 약 8년의 재판 기간 대부분을 풀려난 상태에서 보낸 이른바 ‘황제보석’ 논란도 있었다. 당시 간암 환자인 이 전 회장이 담배를 피우고 호프집과 떡볶이집에 가는 모습이 방송에 노출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의 이미지는 곧 기업의 이미지가 될 수 있다. 이 전 회장의 복귀가 쉽지 않았던 것도 이런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경찰은 제보를 받고 비자금 조성, 골프연습장 공사비 대납, 법인카드 사적 사용 등의 혐의로 이 전 회장을 수사 중이다. 태광그룹 내에선 이번 압수수색의 단초를 제공한 제보자가 김기유 전 경영협의회 의장과 측근들로 확신하고 있다.

태광 측은 “이 전 회장이 받는 혐의는 대부분 그룹 경영을 총괄했던 김 전 의장이 저지른 일들”이라며 “김 전 의장이 검찰 수사에서 범법행위가 드러나고 사법 처리될 위기에 처하자 이 전 회장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태광그룹은 최근 내부 감사를 통해 김 전 의장이 부외자금(장부 없이 이뤄지는 거래로 조성한 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확인했고 지난 9일 서울서부지검에 배임 등 혐의로 고발 조치했다.

김 전 의장은 ‘그룹 실세’, ‘2인자’로 불리며 이 전 회장의 총애를 받던 인물이다. 이 전 회장이 2011년 회사자금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뒤 실형을 선고받자 옥바라지를 자처하며 회장의 신임을 얻었고 회사 경영을 도맡았다. 하지만 지난해 8월부터 내부 특별감사가 시작되면서 둘 사이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한 특별감사에는 특수통 고위 검사 출신으로 구성된 법무법인까지 동원됐다. 태광그룹은 내부 감사에서 수백억원에 이르는 배임 등 혐의가 적발되자 김 전 의장을 해임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태광그룹의 경영 활동을 보면 마치 마피아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조직의 보스에게 충성했던 측근을 내치자 측근이 보스에게 복수하는 모습이다. 부실한 경영 구조 속에서 직원들은 불안해한다. 12조원 투자와 7000명 신규 채용을 약속했던 태광그룹의 시계는 이미 10년 전에 멈췄다. 알짜 사업이었던 티브로드는 2019년 SK텔레콤에 매각됐다.

이 전 회장의 구속영장 신청 소식에 태광의 주가가 4.3% 상승한 것만 봐도 이 전 회장에 대한 대중과 투자자의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태광그룹의 경영 방식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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