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줄리엣·백인 춘향…왜 안 되나요?

임석규 기자 2024. 5. 1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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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9일까지 서울 강서구 엘지(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무용극 '로미오와 줄리엣'엔 흑인 무용수 모니크 조나스가 줄리엣으로 출연한다.

흑인의 줄리엣 연기는 새삼스럽거나 특별히 주목할 만한 일이 아니다.

이미 영국과 미국의 여러 연극과 뮤지컬에서 흑인 배우가 로미오 또는 줄리엣을 연기했다.

오는 23일 영국 런던에서 개막하는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흑인 배우 프란체스카 아메우다-리버스가 줄리엣 배역에 캐스팅되자 인종차별적 인신공격이 난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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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무관 캐스팅 대세, 인종 분장은 금지
흑인 배우 모니크 조나스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을 연기한다. 엘지(LG)아트센터 누리집

오는 19일까지 서울 강서구 엘지(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무용극 ‘로미오와 줄리엣’엔 흑인 무용수 모니크 조나스가 줄리엣으로 출연한다. 영국 안무가 매튜 본이 파격적으로 해석한 이 작품에서 조나스의 생기 넘치는 춤 사위와 풍부한 표정 연기가 일품이다.

흑인의 줄리엣 연기는 새삼스럽거나 특별히 주목할 만한 일이 아니다. 20세기 후반 이후 피부 색깔이나 인종에 얽매이지 않고 배역을 맡기는 ‘컬러 블라인드 캐스팅’이 일반화됐다. 이미 영국과 미국의 여러 연극과 뮤지컬에서 흑인 배우가 로미오 또는 줄리엣을 연기했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다양한 인종의 배우들이 다양한 장르의 공연예술에서 피부색과 무관하게 배역을 소화한다. 한국 성악가들이 유럽과 미국의 주요 오페라 극장에서 주역을 맡게 된 것도 이런 흐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흑인이 줄리엣 배역을 맡았다고 인신공격을 퍼붓는 등 시대 흐름을 거스르는 움직임도 여전하다. 오는 23일 영국 런던에서 개막하는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흑인 배우 프란체스카 아메우다-리버스가 줄리엣 배역에 캐스팅되자 인종차별적 인신공격이 난무했다. 마블 영화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유명한 배우 톰 홀랜드가 로미오 역을 맡아 더욱 화제를 모은 연극이다. 에스엔에스(SNS) 등에서 아메우다-리버스에 대한 공격이 끊이지 않자 배우 800여명이 아메우다-리버스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지난 1월 독일인 배우 윤안나가 춘향을 연기한 연극 ‘안나전’ 포스터.

국내에서도 한국인 배역을 외국인 배우가 연기하는 등 피부색과 무관한 캐스팅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독일인 배우 윤안나(안나 알리자베트 릴만)는 지난 1월 판소리 춘향전을 각색한 연극 ‘안나전: Hallo 춘향’을 연출하고 춘향 역을 맡았다. 윤안나는 15일 전북 남원시에서 열리는 춘향제 행사에도 특별손님으로 초대받았다. ‘외국인이 춘향전을 연기한다면?’이란 부제가 달린 이 연극에서 방자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출연해 낯익은 인도 배우 아누팜 트리파티였다. 지난해엔 튀르키예 태생 배우 베튤이 연극 ‘신파의 세기’에서 이순신 장군을 연기했다.

러시아 성악가 안나 네트렙코가 오페라 ‘아이다’ 배역을 연기하며 얼굴을 검게 칠했다. 안나 네트렙코 인스타그램

배우 캐스팅과 별개로, 배우나 무용수들이 흑인을 연기하면서 얼굴을 검게 칠하는 등의 인종 분장은 여전히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원작 주인공이 흑인인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나 ‘오텔로’에 출연하는 백인 성악가들이 얼굴을 검게 치장하는 ‘블랙페이스’를 둘러싼 논란이 잦다. ‘세계 최정상 소프라노’로 불리는 러시아 성악가 안나 네트렙코가 2022년 이탈리아 베로나의 아레나 극장에서 아이다 배역을 맡으면서 흑인으로 분장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네트렙코가 자신의 검게 분장한 사진을 에스엔에스에 올리자 미국의 흑인 소프라노로 앤젤 블루는 항의의 표시로 이 극장에서 공연 예정이던 베르디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출연 계획을 취소했다. 블루는 당시 “흑인에 대한 모욕적이고 굴욕적이며, 명백한 인종차별”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의 민권운동은 ‘블랙페이스’가 흑인들을 모독하고 조롱하며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행위라고 지적해 왔다.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2015년 인종분장 금지를 공표했다. 게티 이미지

백인이 아시아인처럼 보이게 분장하는 ‘옐로우페이스’도 논란이 된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이나 뮤지컬 ‘미스 사이공’에서 주역을 맡은 백인 배우가 피부색을 황색으로 분장하거나 눈이 찢어지게 보이도록 보조물을 사용해 비판받기도 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이런 시비를 종식하기 위해 2015년 모든 공연에서 인종 분장을 금지하겠다고 공표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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