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ELS 분조위 30~65% 배상책임 인정…자율배상 빨라지나

노현웅 기자 2024. 5. 1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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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서울 중구 한 은행 앞에서 ‘대국민 금융 사기 규탄 집회’에 참석한 홍콩ELS 투자자의 모습. 연합뉴스

70대 투자자 ㄱ씨는 주택청약저축을 해지한 돈으로 2021년 초에 홍콩에이치(H)지수 주가연계증권(홍콩ELS)에 5천만원을 투자했다. ㄱ씨는 농협은행에서 상품에 가입했는데, 당시 은행 쪽은 ㄱ씨의 투자성향을 부실하게 파악해 ‘공격적 투자자’로 분류했고, 손실 위험도 왜곡해서 설명했다고 한다. 또 ㄱ씨가 가입한 통장 겉면에는 확정금리로 오인될 수 있는 숫자(2.8%)가 적혀 있었다.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 결과 ㄱ씨 사례에 대한 은행 쪽 기본배상비율은 40%로 인정됐다. 적합성 원칙 위반, 설명의무 위반, 부당권유 금지 위반이 적용된 수치다. 여기에 은행 쪽은 사전확인 결재를 올린 뒤 5시간30분이 지난 뒤에야 관리책임자가 결재하는 등 고령자의 위험투자에 대한 사전확인 의무를 철저히 하지 않았고, 가입자의 본인 확인을 위한 서명란에 실제 본인 서명 대신에 ‘서명하세요’라고 적힌 음영 표기를 그대로 따라 적은 사실도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기본배상비율 40%에 대면가입(10%포인트), 65살 이상 고령자(5%포인트), 모니터링콜 부실(5%포인트), 고령자 보호기준 미준수(5%포인트), 서명 누락(5%포인트) 등이 가산됐다. 다만 ㄱ씨가 과거 다른 주가연계증권 투자 때 지연 상환을 경험한 점(-5%포인트)은 배상비율 차감 요인이 됐다. 결과적으로 ㄱ씨의 손해배상비율은 65%로 결정됐다. ㄱ씨와 은행 쪽이 모두 이 조정안을 받아들이면 ㄱ씨는 원금손실액 2600만원 가운데 1690만원을 배상받게 된다.

금융감독원은 14일 국민·신한·농협·하나·에스시(SC)제일 등 5개 은행과 고객들 사이의 홍콩ELS펀드 분쟁 사안에 대한 분조위 결과를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사례들(총 5건)는 5개 은행별로 고객들 사이의 분쟁 사안에서 각각 대표적인 사례들로, 분조위 결과 투자손실 배상비율은 30~65% 범위 사이에서 결정됐다. ㄱ씨 사례에서 은행 쪽 책임비율이 가장 높게 인정됐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3월 홍콩ELS 분쟁조정기준을 공표한 바 있다. 적합성 원칙·설명의무·부당권유 금지 등 판매원칙 3항목의 위반 여부에 따라 기본배상비율을 정한 뒤 금융취약계층·주가연계증권 투자경험·금융상품 이해능력·예적금 가입 목적·내방 여부 등 개별 가산·감산 항목을 따져 원금손실액에 대한 배상비율을 결정하는 기준이다.

분조위는 2021년 1월1일~3월24일에 판매된 ELS 상품에 대해서는 모든 은행이 설명의무만 위반했다고 보고 은행별 기본배상비율을 20%로 정했다. 농협만 법인 고객에 대해 적합성 원칙을 추가로 위반한 것으로 인정돼 기본배상비율이 30%로 책정됐다. 2021년 3월25일 이후 판매된 상품의 경우, 신한·하나은행은 그대로 20%로 산정됐지만, 국민·농협·에스시제일은행은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를 함께 위반해 기본배상비율이 30%로 높아졌다.

2021년 2월 암 보험 진단금을 정기예금에 예치하러 국민은행에 갔다가 홍콩ELS에 가입한 ㄴ씨는 60% 배상비율을 인정받았다. 이 사례에서 은행 쪽은 투자목적, 투자경험 등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 적합성 원칙을 어겼고, 대면가입(10%포인트), 예·적금 가입목적 인정(10%포인트), 금융취약계층(5%포인트), ELS 최초투자(5%포인트) 등 가산요인이 인정됐다.

한편 신한은행 쪽은 70대인 ㄷ씨에게 직원이 답변을 미리 알려주어 투자성향을 분석하고 통장 겉면에 확정금리로 오인할 수 있는 내용을 기재해 최종 배상비율이 55%로 인정됐다.

분쟁조정은 신청인과 판매사가 20일 이내에 조정안을 받아들이면 성립한다. 분쟁조정이 성립되면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차후 소송을 제기하는 등 추가적인 배상요구가 금지된다.

이날 구체적인 분쟁조정 사례가 공개되면서 향후 은행마다 진행중인 자율배상 절차에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앞서 각 은행들은 금감원 분쟁조정기준에 따라 자율배상에 착수했지만, 지난달 말까지 전체 시중은행의 자율배상 건수가 50건에 그치는 등 지지부진한 모습이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분조위 결정에 따라 은행 쪽은 기본배상비율을 보다 명확히 인식할 수 있고 금융소비자들도 은행 쪽 배상안이 분쟁조정기준에 부합하는지 판단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향후 은행권의 자율조정이 보다 원활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쪽은 “이번 분조위 결정 발표는 당국에서 제시한 분쟁조정기준에 따라 대표사례 5건에 대해서 구체적인 결과를 제시한 것”이라며 “기존 계획대로 기준안을 준수해 배상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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