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하라, 권력이 모르게"...'42세 차이' 전위예술가 성능경·뮤지션 이랑의 '생존법'

이혜미 2024. 5. 1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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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 '2024 아워세트:성능경x이랑'
7일 한국 1세대 전위예술가 성능경(왼쪽)과 인디 뮤지션 이랑이 '2024 아워세트 : 성능경X이랑' 전시가 열리고 있는 경기 수원시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수원=임은재 인턴기자

1944년생 한국 1세대 전위예술가 성능경과 1986년생 가수 겸 아티스트 이랑. 시각 미술과 대중음악이라는 전혀 다른 예술 분야에 몸담은 것 외에도 세대적으로도 접점이 없을 것만 같다. 그런데 두 사람이 함께 예술을 하려고 만났다. 경기 수원시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에서 열리는 전시 '2024 아워세트:성능경X이랑'을 통해서다. '아워세트'는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가 서로 다른 매체를 다루는 작가들의 이질적인 창작이 빚는 공통의 시대 감각에 주목하는 전시다.

올해 전시엔 성능경의 사진·설치 작품과 이랑의 영상·사운드 작품 등 33점을 선보인다. 예컨대 남북정상회담 개최로 한반도에 평화 무드가 깃든 2018년 성능경이 매일 마시던 2리터짜리 '백두산' 생수 공병을 모아 만든 '백두산(2018)' 옆에서 조국 분단의 아픔을 노래한 이랑의 '임진강(2017)' 뮤직비디오가 상영되는 식이다. 둘의 창작물은 '따로 또 같이' 호흡한다.

일상 사물에서 남북 분단의 과거와 현재를 포착한 성능경의 설치작품 '백두산(2018)'. 작품 뒤편으로는 이랑의 뮤직비디오 '임진강(2017)'이 상영되며 세대, 성별, 장르의 차이를 떠나 공감할 수 있는 한반도의 영토성을 이야기한다.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 제공

살아온 시대는 달라도... 권력에 '저항'하는 예술가

벽면을 가득 메운 신문과 사진들은 성능경이 1970년대부터 실험한 개념미술 작품들이다. '신문읽기' '현장' '8면의 신문' 등 신문을 소재로 사회 억압을 비판한 전시실에는 현대 사회의 양극화와 부조리를 우화적인 가사로 풍자하는 이랑의 노래 '늑대가 나타났다'가 흘러 나온다.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 제공

'저항'은 두 작가 사이에 교집합을 만들어내는 열쇳말이다. 1970년대 유신독재 시절 신문 검열을 비판하는 성능경의 대표 퍼포먼스 작업인 '신문 읽기'가 전시된 공간에 폭력과 가난의 부조리를 외치는 이랑의 노래 '늑대가 나타났다'가 울려 퍼진다.

성능경은 1970년대 신문을 읽은 뒤 읽은 부분을 반복적으로 오려내는 '신문 읽기'라는 행위예술로 시대에 저항했다. 침묵을 강요한 군부를 향한 불만을 표시한 퍼포먼스였지만 난해한 개념 때문에 정치적 검열을 피할 수 있었다. 이랑은 2022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자신의 노래 '늑대가 나타났다'를 부르려 했지만 행정안전부가 가사를 문제 삼아 출연이 무산됐다. 이랑은 이를 윤석열 정부의 검열로 규정하고 법적 투쟁 중이다.


선배 예술가가 전수하는 '저항 잘하는 법'

7일 경기 수원시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에서 '2024 아워세트: 성능경 × 이랑' 전시 참여 작가인 전위예술가 성능경이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수원=임은재 인턴기자

"(권력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라."

최근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에서 진행된 인터뷰 도중 성능경이 이랑에게 전수한, 저항하는 예술가로 살아남는 '팁'이다. 그는 권력을 풍자하고 반기를 드는 실험 미술을 하면서도 무사할 수 있었던 비결로 "남들이 눈치채지 못할 고차방정식 같은 예술로 표현하는 것"을 강조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성능경은 지난해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신문읽기'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등 50년 동안 저항하는 예술을 고집할 수 있었다.

이랑은 '저항의 방식'과 '창작의 재료'에서 성능경과 공통점을 찾았다. 거창하거나 독특한 매체나 재료로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일상 속 평범한 순간에서 주제를 찾아 창작을 하는 데에서 "연결감을 느꼈다"고 했다. "(성능경) 선생님 세대에 태어났으면 저도 더 돌려서 눈치채지 못하게 말하는 방식으로 고민을 했겠죠. (세대와 시대의 차이가 있지만) 모든 것이 사회·정치·역사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것을 체감하며 이를 작업으로 표현해내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고 생각해요."

7일 경기 수원시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에서 '2024 아워세트: 성능경 × 이랑' 전시 참여 작가인 인디 뮤지션 이랑이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수원=박시몬 기자

"이제는 자본과 신자유주의에 예술이 '저항'해야 할 때"

"시상식 트로피를 즉석에서 경매에 부친 것은 굉장한 퍼포먼스입니다. 제가 질투심이 조금 나고 그렇네요." 50년 이상 행위예술을 통해 예술적 표현을 한 성능경(오른쪽) 작가는 이랑이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아티스트의 가난과 자본에 잠식된 음악 산업을 비판하며 벌인 퍼포먼스를 "대단하다"고 치켜세웠다. 수원=박시몬 기자

두 사람이 요즘 '저항'하는 대상은 무얼까. 이들은 자본과 신자유주의를 꼽았다.

평생 '비주류 미술가'를 자처한 성능경은 최근 세계 무대에서 한국 실험 미술이 재조명받으면서 국제적으로 잘나가는 작가가 됐다. 지난해 네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세계적인 상업 화랑 리먼 머핀과 전속 계약을 맺었다. 그의 예술에 있어 자본은 항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다.

"자본 시스템에 미술을 팔아먹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요. 자본의 힘이 행사하는 권력에 대해서도 저항하고 도전해야죠. 약한 사람과 싸우는 건 재미가 없어요. 강한 권력과 싸워야 스릴 있죠."

'밑 그림'은 성능경이 2020년부터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고 닦아낸 화장지를 휴대폰으로 찍고 이미지로 변환한 작품이다. 작가는 이를 '생리미술'로 명명하며, 자신의 몸과 행위로 자본과 예술을 유희적으로 표현한다.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 제공

전시에는 성능경이 2020년부터 아침마다 배변을 닦아낸 휴지를 촬영해 색깔을 입힌 연작 '밑 그림'도 소개된다. 과거 뮤즈(그리스 신화 속 미술·음악·문학의 여신으로 박물관을 뜻하는 영단어 '뮤지엄'은 뮤즈를 모시는 신전에서 유래했다)의 공간에 바쳤던 꽃다발 대신 "똥다발을 바침으로써 자본의 시스템에 저항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랑은 음악 산업에서 소수에게 자본이 쏠리고, 자본의 수혜를 입지 못하는 장르나 창작자는 소멸 직전에 이르는 양극화에 큰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수익구조와 아티스트들이 짊어지는 가난에 대해 비판하며 수상 트로피를 경매에 부친 건 유명한 일화다. "돈이 가장 우선시되는 가치가 되고 거대 기업이 내뱉는 말만 들리는 이 사회 안에서 나는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얘기가 과연 들릴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24 아워세트 : 성능경X이랑' 전시 포스터.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 제공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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