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꽃의 영화뜰] '범죄도시4'와 '파묘', 그 많던 상영관은 누가 다 먹었을까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2024. 5. 1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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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 작품성과 스크린 독점 논란에도 '범죄도시' 시리즈가 '트리플 천만'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범죄도시 4'는 전날 12만4천여명의 관객을 모아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켰다. 누적 관객 수는 884만3천여명이다. 사진은 5월9일 서울의 한 영화관. ⓒ 연합뉴스

1000만 관객을 눈앞에 둔 '범죄도시4'에 '스크린 독점'에 대한 비판이 속속 제기된다. 통상 어떤 작품에 상영관 독점 문제가 제기되면 '그 영화보다 더 재밌게 만들어서 경쟁력을 갖추면 된다'는 류의 반론이 나오기 때문에 논의가 적절하게 진척되기 어려운 경향이 있다. 그러나 '범죄도시4'는 '파묘'라는 좋은 비교군이 있다. 지난 2월 개봉한 '파묘' 역시 100억대 중반 제작비로 완성돼 무려 1189만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에 성공한 한국영화인 만큼, 체급과 성적 면에서 공통점을 지닌 두 작품의 상영 데이터를 비교하면 같은 기간 영화관에서 어느 영화가 얼마만큼 더 독점적인 지위를 누렸는지 비교할 수 있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파묘'는 2월22일 개봉 당시 1944개 스크린에서 상영했다. 스크린 점유율은 CGV 29.2%, 롯데시네마 31.3%, 메가박스 32.1%로 평균 약 31%였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모든 영화관 스크린 중 약 3/10 정도를 확보했다는 의미다. '범죄도시4' 경우는 어떨까. 4월24일 개봉 당시 2930개 스크린에서 상영했다. 스크린 점유율은 CGV 60.3%, 롯데시네마 57.5%, 메가박스 54.4%로 평균 57.4%에 달했다. 전체 상영관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수치는 사태의 심각성을 아직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다. 스크린 점유율로는 특정 영화의 상영관 독점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 스크린에서 10시에 A영화, 13시에 B영화, 16시에 B영화, 19시에 B영화와 같은 식으로 회차를 배치하면 A영화 역시 해당일에 스크린을 확보한 것으로 집계된다. 실제로는 B영화가 훨씬 많은 상영 기회를 차지했지만 수치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때문에 최근 영화계는 스크린 점유율 대신 '실제로 상영된 횟수'인 '상영 점유율'을 더 중요한 독점 판단 기준으로 본다.

이 기준으로 '파묘'와 '범죄도시4'를 다시 비교해보면 두 작품간 차이는 더 커진다. '파묘'는 개봉 첫날 7355회 상영된 반면, '범죄도시4'는 개봉 첫날 1만5674회 상영됐다. '파묘'의 상영 점유율은 3사 평균 47.6%였고, '범죄도시4'의 상영 점유율은 무려 82.6%였다. 우리나라 영화관에서 하루에 물리적으로 상영할 수 있는 최대 횟수 중 '파묘'는 과반에 다소 못 미치는 지분 정도만 허락받은 반면 '범죄도시4'는 무려 8/10을 넘어서는 규모를 점유했다는 얘기다.

8부 능선을 넘어선 '범죄도시4'의 상영 점유율은 배우 겸 기획자인 마동석에 대한 신뢰와 보증된 장르적 쾌감 등의 강점을 전부 고려한다고 해도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수치다. 이건 마블 시리즈의 팬 충성도와 대중적 인지도가 정점을 찍었을 당시인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년, 1만2544회 상영) 개봉 당시보다도 많아서, 어떤 극장에 가도 '그 영화 밖에는 안 보이는' 상황이다.

▲ 사진은 2월28일 서울 한 영화관의 영화 홍보물. ⓒ 연합뉴스

이쯤에서 질문할 수 있다. 꼭 상영관을 '범죄도시4'만큼 독점해야만 흥행에 성공할까? 답은 '그렇지 않다'에 가깝다. '파묘'는 과반 이하 상영관에서 레이스를 시작하고도 입소문 끝에 1200만 관객에 가까운 흥행 대기록을 쓰는 데 성공했다. '범죄도시4'가 결론적으로 '파묘'와 유사한 정도의 관객몰이에 성공할 수 있다고 가정할 때, 과연 두 작품 사이에 스크린 개수와 상영관 규모가 이렇게나 큰 차이를 보여야 할 만한 설득력 있는 이유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은 같은 시기 다른 작품을 상영할 수 있는 물리적 여지를 극도로 좁힌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만약 '범죄도시4'가 '파묘' 정도의 규모로 개봉·상영했다면 개봉 첫날 다른 영화들은 그만큼(986개 관, 8139회 상영)에 해당하는 상영 기회를 나눠 가질 수 있었다. 건축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4월17일 개봉)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챌린저스'(4월24일 개봉)처럼 장르도 색채도 전혀 다른 다양한 작품이 당연히 상영 기회를 조금 더 얻었을 것이다.

시장에서의 모든 독점은 결국 소비자의 피해로 돌아온다. 무뎌진 예술적 감흥이나 새로운 사회적 경험을 일깨우는 다양한 영화를 관람할 관객의 권리가 박탈되기 때문이다. 취향이 확고한 일부 관객이야 어떻게든 원하는 영화를 찾아보겠지만, 대중예술공간으로서의 영화관을 찾는 평범한 우리들의 사정은 다르다. 내 집 앞 극장에 갔을 때 '우연히' 상영 현황판에서 다양한 작품에 노출될 기회를 얻는 것 역시 우리의 문화적 권리다. 특정 영화의 상영관 독점을 용인하는 현실은 새로운 예술세계에 관심을 가진 모든 관객의 섬세한 욕구를 꺾고 있다. 그 점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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