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시’ 웃지 않는 허성태, ‘살벌’ 대신 ‘귀염 허당’ 호소인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4. 5. 1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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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ENA 월화드라마 ‘크래시’(오수진 극본, 박준우 연출)가 눈길을 끄는 요인 중 하나가 만년 악역일 줄 알았던 허성태와 이호철이 ‘좋은 편’이란 점이다.

특히 13일 방영된 1화에선 남강경찰서 교통범죄수사팀(TCI) 정채만 팀장역을 맡은 허성태가 눈길을 끈다. 기획안은 허성태가 맡은 정채만을 ‘숨어있는 원석을 골라 TCI를 만든 주인공. TCI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늘 한 발짝 물러서 팀의 중심을 잡아주고, 팀원들이 자기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소개한다. 뭔가 능력있고 중량감 있는 보스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등장 첫 장면부터 기획안이 애써 조성해놓은 이미지는 여지없이 박살난다.

차량사기단 조석태(이도군)파 검거 작전에 민소희(곽선영 분), 우동기(이호철 분), 어현경(문희 분) 등 팀원들을 이끌고 등장한 정채만은 뜻밖에 성마른 성격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일당 중 하나가 TCI를 ‘짭새’라 표현한 순간 반사적으로 “칵~씨”하며 위협적인 액션을 선보이는가 하면, 두목 체포 소식을 듣고 추가로 몰려든 폭력배들을 향해선 서슴없이 권총을 꺼내 공포탄을 발사한다. 그리곤 제가 쏜 총소리에 고막이 나가는 바람에 성량을 몇 번씩이나 조절해가며 “꼼짝 마!”를 반복한다. 창피함은 팀원들 몫.

현장에서 이렇게 분노조절장애를 연상시키는 정채만의 다혈질은 소속 남강경찰서에만 들어가면 ‘분노조절잘해’로 표변한다.

차량사기단 서른 명 일망타진의 개가를 자축하기 위해 ‘맛있는 것’ 먹으러 간 돼지불백집. 한참 식사 중 들이닥친 형사과 식구들이 시비를 건다. 특히 과장인 소병길(오대석 분)은 “교통경찰이 무슨 수사야. 분수를 알아야지”란 평소지론처럼 분수타령하며 민소희를 자극한다. 그리고 싸움닭처럼 민소희가 부딪히는 순간 정채만은 조용히 밥그릇 챙겨 자리를 옮긴다.

“그 상황에서 자리는 왜 옮겨요. 가오 죽게~” 항의하는 민소희에겐 “우리가 뭐 고기 먹으러 왔지, 가오 잡으러 왔냐?”며 입을 막는다. 형사과에서는 무슨 수사냐고 무시나 당하고, 교통과에서는 인력 빼간다고 갈구는 TCI 현실에 대한 팀원들의 하소연을 귓등으로 듣고는 “뺑반이나 하지 TCI 왜 만들었냐?”는 민소희의 질문엔 “대붕의 깊은 뜻을 잡새가 어찌 알리오” 따위 뜬구름 잡는 소리나 대꾸라고 뱉는다.

그러던 차 민소희는 뜻밖의 부고를 받는다. 알고 지내던 폐지할머니 김봉순의 죽음. 그리고 유일한 조문객 차연호(이민기 분)를 다시 만난다.

차연호는 조석태파 검거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이유로 휩쓸려 잡혀온 보험조사원. 그 자리서 차연호는 무언가를 제보했었지만 검거 뒤처리에 정신없던 민소희는 자료만 받아두었던 상태다. 빈소 재회 후 다시 떠들어 본 차연호의 자료는 김봉순의 죽음이 보험금을 노린 정호규(배유람 분)의 차량 이용 연쇄살인임을 의심케 한다.

이에 수사를 지시하는 정채만. “자 우선 피해자 가족들부터 만나보자”며 업무할당을 하려는 순간 민소희가 치고 들어온다. “현경이는 사고 차량 확보해서 살펴보고, 동기는 사고 현장 주변 CCTV·블랙박스 영상 다 체크해!” 머릿속으로 참새 날아가는 소리만 들리는 정채만이다.

차연호가 제공한 보험사 녹취록을 통해 정호규가 사망보상에만 관심있으며 폐차 직전의 차량을 마침 검거한 조석태로부터 구입했음을 알게 된 민소희가 조석태를 이용한 불법수사를 제의했을 땐 팀장답게 꾸짖기도 한다.

“위치추적, 도청, 불법인 거 알지? 적법한 절차 아니면 증거능력 부정되는데 희박한 가능성 가지고 불법수사 하자고? 우리 경찰야!”

이쯤 꾸짖으면 알아들어야 할 민소희가 항명한다. “할머니가 또 죽을 거예요. 정호규는 사냥하듯이 약한 상대만 골라서 사고를 냈어요. 그 억울함은 누가 풀어줘요?” 그래서 말해줬다. “동백꽃보다 먼저 오는 봄은 없다”고. 못 알아 먹어 부연도 해줬다. “정도를 벗어나서 되는 일 없다 이 말이야.” 했더니 뭐? “팀장님은 모른 척 하세요. 제가 다 책임질테니까.” 선을 세게 넘어버린다. “니가 뭔데 책임을 져! 팀장은 난데.”

결국 조석태를 이용하기로 했다. 의지를 다진 정채만이 벌떡 일어나며 “긴장들 하자. 정호규 곧 움직일테니까.” 하는 순간 또 민소희의 입이 열린다. “동기, 너는 오늘부터 정호규 전담마크해. 현경이는 할머니쪽 맡고.” 더 할 말 있냐는 팀원들의 시선이 그를 향했을 때 정채만은 뻘쭘해진 채 “그, 그렇게 하자.”하고 맥없이 앉으면 팀원들은 기세 좋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정채만도 엉거주춤 다시 엉덩이를 뗄 수 밖에.

이쯤되면 정채만을 설명한 기획안엔 많은 것이 생략된 느낌이다. 보다 의문을 품고 행간을 읽어야 한다던가.

가령 숨어있는 원석들을 골라낸 건 그렇다 치고 든든한 버팀목? 계급은 경정으로 한 단계 위지만 동생 소병길에게도 밀려 후배들 밥자리조차 양보하는데? 수틀리면 방아쇠 당기는 성마른 성격인데? 두고 볼 일이다.

또 ‘한발짝 물러서 팀의 중심을 잡는다?’ 정채만이 물러선 게 아니라 민소희가 한발짝 앞선 것 아닌가? 불법수사 불가방침 철회는 팀 중심이 민소희란 얘기 아닌가? 아울러 ‘팀원들이 자기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문장의 술어 역시 ‘돕는다’ 보다 ‘냅둔다’가 정확하지 않을까?

아무튼 정채만을 연기한 드라마 속 허성태는 여전히 웃지 않는다. 하지만 그 표정에 담겼던 살벌함은 오간 데 없고 귀엽기까지 한 허당미가 보는 이들을 웃게 만든다.

‘칼 대신 운전대를 쥔 도로 위 빌런들을 소탕하는 교통범죄수사팀의 노브레이크 직진 수사극’을 표방한 ‘크래시’의 코믹 담당은 아무래도 허성태인 모양이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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