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창작하는 여성의 佛心… 한중일 불교 미술을 밝히다

박동미 기자 2024. 5. 1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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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암미술관 ‘진흙에…’ 展
성불할 수 없다고 규정된 여성
예술사에 남긴 흔적·자취 조망
이건희 기증한 ‘부모은중경’
인목왕후 ‘불설아미타경’ 등
새로 들여온 유물 12점 교체
최근 신규로 출품된 고 이건희 회장의 기증 유물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의 일부분. 호암미술관 제공

불교 교리에서 여성은 성불(成佛)할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로 규정됐으나, 문화적으로 보면 오히려 찬란한 불교미술을 꽃피운 주역이기도 하다.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는 이를 확인하는 자리다. 조선 왕실 여성들의 기념비적 불사(佛事) 등 동아시아 불교문화 안팎에 새겨진 여성들의 흔적과 자취를 따라가 볼 수 있다.

불교미술 걸작품 9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아 ‘역대급’ 규모로 주목받은 전시는, 최근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신규 유물 12점을 교체하는 등 새 단장 후 관람객을 맞고 있다. 고 이건희 회장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을 비롯해 인목왕후(1584∼1632)가 직접 필사한 사경 ‘백지금자 불설아미타경’, 일본 비구니들이 포교 때 사용한 ‘구마노관심십계만다라’ 등 희귀한 유물들이 대거 출품돼 눈길을 끈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은 잉태와 출산, 양육 등 자식을 염려하고 사랑하는 어머니의 10가지 은혜를 판화로 묘사한 그림으로, 1378년 광주군부인 김씨와 상당군부인 한씨 등의 시주로 간행됐다. 불교미술에서는 드물게 여성이 주인공으로 표현된 사례. 이 회장의 또 다른 기증품인 ‘백지금자 불설아미타경’은 1621년 조선 선조의 계비이자 영창대군의 어머니인 인목왕후가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 아들의 명복을 빌며 직접 필사한 사경이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복권된 인목왕후는 수종사 불사로 20점의 소형 ‘금동불상군’도 조성했는데, 이번 전시에서 이 불상군과 필사 사경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게 됐다. 출중한 서예가이자 창작자, 무엇보다 유교 사회에서도 강력하게 불교미술을 후원한 인목왕후의 면모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백제 금동관음보살 입상. 호암미술관 제공

인목왕후의 사례처럼 이번 전시는 조선 왕실 여성들이 발원한 불상과 불화 등 불교도이자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헤아린 유물들이 주요 관람 포인트이기도 하다. 특히, 문정왕후(1501∼1565)는 불화 400폭을 조성하는 등 조선시대의 불화 양식을 선도한 독보적인 후원자였다. 일반에 첫 공개 된 ‘영산회도’(1560)를 비롯해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석가여래삼존도’(1565), 국립중앙박물관의 ‘약사여래삼존도’(1565) 등 그가 발원한 불화 세 점을 한꺼번에 관람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문정왕후 여래도 불사 불화는 현재 6점만 전해지고 있다.

신규 유물 중 한국에 처음 온 일본 문화재의 면면도 흥미롭다. 17∼18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구마노관심십계만다라’(일본민예관 소장)는 일본 구마노 지역에서 활동한 비구니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포교할 때 사용했던 그림이다. 상단에는 인간의 일생과 불보살이 강림하는 장면이, 하단에는 이승의 죄로 인해 형벌을 받고 있는 남녀 군상이 담겨 있다. 또 14세기 ‘석가여래오존십나찰녀도’(나라국립박물관 소장) 등 일본 불교미술의 특징이 오롯한 작품들이 다양하게 소개된다.

문정왕후 발원 ‘영산회도’는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것으로, 조선 왕실 여성들의 불교에 대한 영향력을 살펴볼 수 있다. 호암미술관 제공

전시는 2023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 이후 재개관한 호암미술관의 첫 고미술기획전이다. 전시 제목은 최초의 불교 경전인 ‘숫타니파타’에서 인용한 문구로, 불교문화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했으나 불교미술을 후원하고 제작한 ‘여성’들을 진흙에서 피되 진흙에 물들지 않는 청정한 연꽃에 비유했다. 전시를 기해 최근 국제학술포럼 ‘불화 속 여성, 불화 너머 여성’이 열리기도 했다. 포럼에서 불교미술 권위자인 김정희 원광대 명예교수는 “조선의 억불숭유정책 틈바구니에서도 불교가 명맥을 유지하고 수준 높은 불화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은 여성들의 깊은 신앙 덕이다”라며 그동안 불교미술에서 놓치고 있던 ‘여성’을 강조했다. 또 정은우 부산박물관장 역시 “조형적 우수성과 역사성을 갖춘 대표작품들은 대부분 여성이 제작을 후원한 불상들이다. 한국 불교미술의 발전에 여성 후원자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전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매일 오후 2시와 4시, 두 차례 진행하는 도슨트의 전시 설명에 참여하면 전시 대표작들을 보다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주제별 총 11회 진행하는 ‘몰입감상 프로그램’도 호응이 높다. 특정 몇몇 작품만을 골라 집중적으로 탐색할 수 있다. 전시는 6월 16일까지.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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