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변요한의 에티튜드[TF인터뷰]
'그녀가 죽었다'서 남의 삶 훔쳐보는 공인중개사 구정태 役
"한 작품 한 작품에 모든 걸 쏟아붓고 싶어요"
임진왜란에 참전한 왜군 수장에 이어 남의 삶을 훔쳐보는 관음증 캐릭터로 돌아왔다. 데뷔 14년 차를 맞이한 배우 변요한은 편협되지 않은 시선에서 오는 자유로움과 함께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 도전과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변요한은 오는 15일 스크린에 걸리는 '그녀가 죽었다'(감독 김세휘)에서 의뢰인이 맡긴 열쇠로 그 집에 몰래 들어가 남의 삶을 훔쳐보는 악취미를 가진 공인중개사 구정태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그는 개봉을 앞둔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작품과 관련한 이야기부터 배우로서의 가치관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앞서 변요한은 자신의 생일인 4월 29일에 '그녀가 죽었다'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취재진 앞에 섰다. 배우로서 가장 떨리는 일정을 소화하고 좋은 리뷰도 다 읽었다는 그는 "정정당당하게 선물 받은 것 같아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언론시사회가 제 생일파티였죠"라며 환하게 웃었다.
작품은 훔쳐보기가 취미인 공인중개사 구정태가 관찰하던 SNS 인플루언서 한소라(신혜선 분)의 죽음을 목격하고 살인자의 누명을 벗기 위해 한소라의 주변을 뒤지며 펼쳐지는 미스터리 추적 스릴러다. 김세휘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시나리오를 받고 구정태의 입장에서 한 번, 한소라의 입장에서 두 번 읽었다는 변요한은 "'내가 세상을 따라가는 것인가? 세상이 나를 따라오게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떠올랐고 이런 충돌이 재밌었어요. 시선이라는 주제를 두고 캐릭터를 이분법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과정도 재밌을 것 같았죠"라고 말했다.
극 중 구정태는 낮에는 성실한 공인중개사지만 동네 편의점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독특한 취미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단순히 누군가를 관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객의 집에 몰래 들어가 고장난 가구나 전등을 고쳐주고 그 대가로 가장 없어도 될 물건 하나를 가지고 나오는 고약한 행동까지 즐긴다. 그러던 중 새로운 관찰 대상인 한소라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위기에 빠지게 된다.
구정태를 이해할 수 없는 건 관객뿐만 아니라 변요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인물이 저지르는 범죄를 미화하거나 옹호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연기해야 했기에 편견 없이 변요한이라는 사람에 구정태를 담아내야 했다고. 그는 "대본에 내레이션이라는 서브텍스트가 있었어요. 분석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서브텍스트가 잘못되더라고요. 아예 변태가 되거나 그를 미화시킬까 봐 우려가 됐죠. 그래서 수평선을 이루면서 잘 가야 했어요"라고 캐릭터 구축 과정을 설명했다.
또한 작품은 선역과 악역이 아닌 비정상과 비호감에 가까운 두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가볍지 않은 주제를 경쾌하게 진행한다. 신인 감독의 입봉작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도전적인 것들로 가득하기에 배우로서 출연을 망설일 법도 했다. 그러나 변요한은 "누군가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것 같아요. 김세휘 감독님은 엄청 많이 고민했고 치열했고 오랜 기다림이 있었다는 걸 알았거든요"라고 답했다.
"마지막에 열린 결말로 끝나잖아요. 많은 입봉 감독님을 만났지만 이런 결단을 내리고 영화사와 투자사의 마음을 돌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또 현장에서 어떤 순간이 와도 흐트러지지 않은 집중력도 있었고요. 집중력도 재능이거든요."
이어 변요한은 '하루'(2017)에서 부부로 짧게 호흡을 맞춘 후 7년 만에 재회한 신혜선을 향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에너지를 인정하는 걸 보고 감탄했어요. 굉장히 여린데 자신에게 한소라를 넣고 표현하는 걸 보면서 강한 친구라는 것도 느꼈고요"라며 "대게 살아남기 위해서 강한 척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신혜선은 늘 잘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호흡도 잘 맞았고요"라고 회상했다.
그런가 하면 변요한은 '그녀가 죽었다'가 개봉하는 날 디즈니+ '삼식이 삼촌'으로 전 세계 시청자들과도 만나게 됐다. 스크린과 OTT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두 작품을 동시에 선보이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기에 기쁨도 부담도 두 배일 것으로 짐작됐다. 이를 들은 변요한은 "프로모션 때 대중이 헷갈릴까봐 우려가 됐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즐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중이 볼 때 '쟤는 1년 동안 안 나오다가 갑자기 유튜브랑 TV에 왜 이렇게 나오는 거지?'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공개 날짜를) 제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겸허하게 받아들였죠. 전 결정이 나면 무조건 즐기는 타입이에요. 그래서 힘들지 않아요. 이게 제가 일하는 방법이고 여기까지 제가 해야되는 것도 맞으니까요. 재밌고 즐겁게 달리고 있어요. 정말 다 쏟아붓고 싶어요."
이렇게 쉼 없이 달려온 나날을 되돌아본 그는 "저는 자신감이 많고 근자감도 있어요. 일을 오래 하신 선배님들과 작품 하면서 대단하다고 많이 느끼거든요. 계속 벗겨지는 작업이다 보니까 저라는 사람이 어디까지 헐벗을 수 있을지도 체크가 되더라고요"라며 "오래 하면 좋겠지만 오 래할 수 없다는 걸 느껴요. 그래서 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싶어요. 길게 하든 짧게 하든 중요하지 않아요. 불붙이듯 최선을 다해서 즐기고 싶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늘 자신만의 기준에서 느끼는 재미를 우선순위에 두고 출연을 결정하는 변요한이다. 그런 그는 늘 하나의 작품을 끝내면서 얻는 것도, 잊어버리는 것도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렇다면 변요한이 '그녀가 죽었다'로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세상이 너무 빠르게 흐르는데 즐길 거는 즐기고 무시할 거는 무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누군가에게 사랑받아야 일할 수 있는 것도 맞지만 어느 순간 눈치를 보면 작품을 자유롭게 택하지 못하기도 하거든요"라며 "제 이야기인데 전 눈치를 안 보고 싶어요. 그렇게 해왔고요.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자신을 좀 더 사랑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1986년 생인 변요한은 스스로 '인생의 챕터2'라고 표현한 40대를 맞이할 준비 중이다. 그는 "할 수 있는 게 달라질 것 같아요. 저의 판타지인데 40대가 멋있더라고요. 지금까지 뜨거웠다면 이제 또 다른 에너지를 쓸 것 같아요. 배우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없어요. 그저 한 작품 한 작품에 모든 걸 쏟아붓고 싶고 작품에만 집중하고 싶어요"라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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