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중국 공산당 아른대는 ‘수호천사’ 동양생명의 수상한 실체

이석 기자 2024. 5. 14.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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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다자생명보험으로 주인 바뀌었지만 공산당 영향력 여전
전임 CEO ‘사법 리스크’까지 불거지면서 이문구 대표 ‘전전긍긍’

(시사저널=이석 기자)

재계 서열 38위였던 동양그룹은 2013년 대규모 투자 손실을 낸 '동양그룹 사태'로 공중분해됐다. 동양매직(현 SK매직)과 동양시멘트(현 삼표시멘트),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 동양네트웍스(현 동양시스템즈) 등 알짜 계열사가 줄줄이 법정관리에 돌입하거나 외부에 매각됐다. 동양생명도 2015년 9월 중국 안방생명보험에 매각됐다. 하지만 안방생명보험의 부실이 가속화되면서 2020년 2월 다자생명보험으로 다시 주인이 바뀌었다.

동양생명이 최근 경찰 조사 등 잇단 악재에 휩싸이면서 이문구 신임 대표의 리더십에 재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동양생명 본사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공산당 간부들 동양생명과 모회사에 포진

주목되는 사실은 이 다자생명보험의 실체가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겉으로 봐서는 일반 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주요 주주는 중국보험보장기금유한책임공사와 상하이자동차그룹, 중국석화화공그룹 등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국 공산당의 지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회사의 출생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다자생명보험을 설립한 곳은 중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은보감회)다. 중국 은행과 보험, 카드 등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관리와 금융소비자 보호 업무를 총괄하는 곳이다.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3기가 시작된 지난해 은보감회는 국가금융감독관리총국으로 격상됐다.

김기수 전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 수석연구위원은 "중국의 금융 시스템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 겉으로는 주식이 민간에 분산된 것처럼 보이지만, 6대 전업은행을 포함한 주요 금융기업에 대한 공산당 영향력은 절대적이다"면서 "권력의 핵심에 있거나 있었던 인사들이 다자생명이나 계열사의 요직에 오르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생명보험사 역시 국가 이외에는 사실상 설립이 제한돼 있다. 결국은 공산당 소유다"면서 "그나마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도 개혁·개방 시절 권력자들의 후손이 쥐고 있다. 동양생명의 주인이었던 안방생명보험그룹의 창업자가 덩샤오핑 외손녀사위인 우샤오후이 전 총재였던 게 대표적인 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다자보험그룹의 총회장인 흐어샤우퐁은 중국 공안과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이하 기율) 출신으로 공산당 소속이다. 동양생명 이사회 의장인 뤄셩 역시 중국 금융 당국 고위인사 출신이자 공산당 소속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동양생명의 고배당 기조를 두고 '국부 유출' 논란이 일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동양생명 측도 이 같은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국부 유출 논란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다"고 반응했다. 회사 관계자는 "외국계 기업의 배당금은 직접적으로 배당소득세를 통해 국가 세수에 기여하고 간접적으로는 주주환원을 통해 더 많은 외국인 직접투자자를 유치한다"면서 "최근 한국 정부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차원에서 기업의 배당 확대 등을 장려하는 만큼 국부 유출은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런 점을 의식해서였을까. 동양생명은 최근 건강상 이유로 사임한 저우궈단 전 대표 후임으로 이문구 부사장을 신임 대표로 임명했다. 2015년 동양생명이 중국 안방보험에 매각된 이후 처음으로 발탁된 한국인 CEO다. 그는 3월4일 서울 종로구 동양생명 본사에서 열린 대표 취임식에서 "지속 성장을 위한 기반인 안정적이고 튼튼한 수익 구조를 구축하고 수익 극대화를 통해 동양생명을 초우량 보험사로 성장시키겠다"고 말했다.

최근 계속된 회사 안팎의 논란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저우궈단 전 대표를 둘러싼 논란이 내부적으로 적지 않았다. 동양생명 노조가 저우궈단 대표 퇴진운동을 벌였을 정도다. 한때 경영진과 노조가 대타협을 했지만, 불편한 관계는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양생명은 배임 등 혐의로 금감원 제재와 함께 경찰 조사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회사 역시 적지 않은 생채기를 입어야 했다. 결국 저우궈단 대표가 사임하고, 이문구 대표가 새로 취임했다. 업계에서는 훼손된 신뢰의 회복이 이 대표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동양생명이 실적 '우하향 곡선'을 끊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 7년여간 동양생명 매출은 7조원대에서 3조원대로 반 토막이 났다. 주가 역시 2016년 말 1만3000원대에서 5000원대로 거의 3분의 1 토막이 났다. 고점 때와 비교해 아쉽기는 하지만, 지난해 동양생명의 매출은 전년 대비 7.6%, 영업이익은 3614%나 증가했다. 당기순이익 역시 지난해 114억원 적자에서 올해 2707억원 흑자로 전환됐다. 새롭게 '동양생명호'를 지휘하는 이 대표 입장에서 한시름 덜게 됐다는 평가다.

좁혀오는 경찰 수사망에 회사 촉각

하지만 전 경영진의 '사법 리스크'는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0월 저우궈단 전 대표를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저우궈단 전 대표 주도로 진행된 남산 테니스장 운영 과정에서 배임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검찰은 그동안 서울경찰청 금융수사대를 통해 수사를 지휘해 왔는데, 최근 이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남산 테니스장 운영사인 F사의 엄아무개 대표가 최근 참고인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된 것으로 알려졌다. 저우궈단 전 대표 역시 4개월 동안 출국금지 상태에서 소환조사를 기다리고 있다. 경찰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관련 규정상 보험사는 체육시설 운용이 불가능하다. F사를 끼워넣어 남산 테니스장을 운영한 배경에 대해 경찰이 의구심을 갖고 있다"면서 "경찰은 최근 저우궈단 전 대표의 비서와 기사를 소환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이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저우궈단 전 대표를 불러 조사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 취임한 이문구 대표에게도 전임 CEO의 사법 리스크는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경찰 조사 결과에 따라 파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감원은 3월22일 동양생명에 대한 수시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후속 조치를 내렸다. 대표이사 지원금과 임원 경비 집행 업무처리 미흡, 신규 사업 추진 시 업무 절차 강화 필요, 계열체결 업무 절차 강화 필요 등을 이유로 경영유의를 권고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4월2일 하루에만 회사 주가가 11.5%나 폭락했다. 하지만 동양생명은 금감원 제재와 경찰 조사에 책임이 있는 저우궈단 전 대표와 고문계약을 체결하고, 적지 않은 급여와 자동차, 운전기사까지 부당하게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확산되자 동양생명 측은 저우궈단 전 대표와의 계약을 조용히 해지했다.

3월4일 서울 종로구 동양생명 본사에서 열린 이문구 대표 취임식 ⓒ동양생명
저우궈단 대표 재임 당시 퇴진을 촉구하는 동양생명 노조원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제공

동양생명 "감독기관 제재 겸허히 수용"

이와 관련해 동양생명 측은 "퇴직 임원 예우 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다른 회사와 마찬가지로 동양생명도 퇴직 임원에 대한 예우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다"면서도 "구체적 내용은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만큼 확인이 어렵다. 경찰 수사 건 역시 현재 진행 중인 사안이니만큼 답변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한 점을 양해해 달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동양생명은 감독기관의 기존 제재 조치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다. 지적된 사항에 대해서도 재발 방지와 함께 관련 업무 개선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동양생명 노동조합의 설명은 달랐다. 금감원의 수시검사는 동양생명 경영진의 배임과 내부통제 기능 미비에서 나온 것인데, 이 대표 취임 이후에도 이 시스템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조는 4월17일 배포한 성명서에서 "전임 대표에게 회사가 차량 및 운전기사를 지원해 주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다"면서 "대표에서 물러났고, 피의자로 수사 중임에도 여전히 부당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저우궈단 전 대표와의 고문 계약을 인사 담당자는 물론이고 신임 대표이사도 몰랐고, 보고받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노조는 "금감원 제재 이후에도 회사는 보고 체계, 조직 질서, 부당 지원 등 어느 한 가지도 전임 대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전임 대표에게 현 대표의 허락도 없이 부당 지원을 자행한 이유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입찰 관련 논란도 불거졌다. 동양생명은 최근 66억원 규모의 모바일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입찰업체 중 한 곳에 동양생명 현직 임원의 배우자가 참여해 내부적으로 잡음에 휩싸인 것이다. 이 사안 역시 대표이사에게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다는 게 노조 측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서도 동양생명 측은 "오해의 소지는 있었지만 문제는 없다"고 해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해당 건에 대해 확인 중이다. 입찰을 통해 업체를 선정하는 프로세스상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프로젝트 일정 등을 고려해 재입찰이나 차순위 업체 선정 등 후속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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