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나라 걱정에 결혼하랴? [세상읽기]

한겨레 2024. 5. 1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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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2000년에 나온 이만교의 소설로, 2002년 유하 감독이 동명의 영화로 만들면서 널리 알려졌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엄정화, 감우성 배우가 주역을 맡은 영화는 12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당시로서는 상당히 도발적인 제목에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24년이 지난 지금, 이 제목은 더이상 생경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25~39살 여성 가운데 결혼한 여성 비율은 2000년 80%에서 현재는 40%로 감소하였다. 20대 후반 미혼 여성 가운데 한 해에 결혼하는 여성의 비율은 2000년 약 20%에서 현재 약 5%로 떨어졌다. 결혼이 “미친 짓”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수의 선택지가 되었다는 사실은 확실해 보인다. 결혼이 출산의 전제조건인 한국 사회에서 결혼의 감소는 출생아 수 감소의 주된 요인이다.

왜 청년들은 결혼하지 않는가? 다른 시대를 살아온 필자가 오늘날 청년의 마음과 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는 없다. 다만 일부의 주장처럼 문화적인 규범이나 결혼에 대한 태도 변화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청년이 결혼을 선택하기 어렵게 만드는 장기적·구조적인 요인을 함께 고려해야만 결혼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현상의 원인과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자신의 생애에 대한 청년들의 전망이 나빠졌다.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 교수에 따르면, 가족 형성의 결정은 현재의 소득 수준보다는 삶에 대한 기대치와 그 실현 가능성 간의 차이에 좌우된다. 또한 삶에 대한 기대치는 부모가 경험한 경제적 여건에 영향을 받아 성장기에 형성된다. 이 이론에 따른다면 고도성장기에 젊은 시절을 보낸 부모를 둔 저성장 시대의 청년들이 결혼을 미루거나, 하지 않는 현상이 잘 설명된다. 한국의 생산연령인구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부모 세대가 청년기를 보낸 1980년대에 연평균 7.5%였으나 자녀 세대가 청년기에 접어든 2010년대에는 2.3%로 떨어졌다.

빠른 성장의 시대가 끝나고 정체와 축소의 국면에 접어들면 과거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경쟁이 심해지면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엄청난 노력을 하는 청년도 기회를 얻기 어려워진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대량 실직에 내몰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고용 불안정과 노후 빈곤에 직면한 부모 세대를 보면서 자녀 세대 역시 자신의 미래가 불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어야 가능한 결혼 결정은 더욱 힘들어졌을 것이다.

둘째, 결혼의 경제적인 유인이 과거에 비해 감소하였다. 결혼이 주는 경제적 편익으로는 가정 내 분업을 통한 효율성 제고, 위험 분담의 가능성, 공동 소비의 혜택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남성과 여성의 사회경제적 역할이 비슷해지면서 결혼을 통한 분업 효과는 줄었고, 사회보험과 복지제도가 확대되면서 가족의 위험 분담 기능을 부분적으로 대체하게 되었다. 또한 기술과 소비패턴의 변화는 공동 소비의 편익을 감소시켰다. 예컨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확산으로 영화관에 함께 갈 사람이 필요 없어졌고, 혼밥과 혼술도 어렵거나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결혼의 경제적 비용이 커졌다. 주택가격과 전월세 비용이 상승하면서 신혼집 마련의 부담이 늘었고, 예식에 드는 비용도 증가했다. 여성의 경우, 과거에 비해 결혼의 기회비용이 높아졌다. 일하는 생애에 대한 준비가 잘되어 있고, 일터에서의 성공에 대한 의지가 강한 오늘날의 젊은 여성에게, 가정과 직장에 여전히 남아 있는 기혼 여성의 불리함은 결혼을 꺼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청년들이 결혼할 수 있는 사회로의 전환은 이렇듯이 비혼으로 남는 결정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어버린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는 일이 어려우며, 오랜 시간에 걸친 근본적인 변화의 노력이 요구됨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일각에서 결혼 장려의 해법으로 제시하는 청년 대상 교육, 캠페인, 방송 내용 변화 등을 통해 결혼이 “미친 짓”이 되어버린 현실 자체를 바꾸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저출산 문제와 무관하게 청년이 연애도 결혼도 하기 어려운 사회는 그 자체로 문제가 있고 불행한 사회이기에 이러한 상황을 바꾸어야 한다는 관점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의 저출산 완화를 위해 결혼하라는 외침에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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