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생기면 일감 끊긴다’…하청 사용자 뒤에 숨은 원청 노조 침해
하청 노조·원하청 관계 사건 32.1%
“원청 계약 끊긴다” 원청압박 사례 다수
“중소기업이나 작은 기업에서는 지불능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그러니까 노조가 조직돼봐야 아무 실익이 없어서 미조직 근로자에 대해 어떻게 보호하고 지원할지 이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부서를 만들어 진행해주길 바랍니다.”
지난달 4일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토론회 후속조치 점검회의’에서 한 말이다. 윤 대통령이 “노조가 조직돼봐야 아무 실익이 없다”고 단정한 중소기업에는 하청기업들도 포함된다. 하지만 하청노동자들은 윤 대통령의 말과 정확히 같은 논리로 ‘노조 할 권리’를 침해당했다.
13일 한겨레가 2017~2023년 선고된 법원의 부당노동행위 1심 판결문 168건을 분석한 결과, 부당노동행위 피해 노동자의 사용자가 원청과 도급·위탁·용역관계에 있거나, 부당노동행위 과정에서 ‘원·하청’ 관계가 언급된 판결은 54건으로 전체의 32.1%였다. 하청업체에서 이뤄진 부당노동행위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노조 탈퇴 종용이 43건으로 대부분이었고, 노조 가입이나 활동을 이유로 한 해고·징계도 16건이었다.
구체적으로 “노사분규에 의해 원전 운행 지장을 초래할 경우 즉시 (원청과) 계약 파기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고용승계도 어떻게 해주지 못한다. ‘노조가 있으면 뭔가 좋겠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접어둬라”(2016년 한국수력원자력 하청업체 관리자)거나, “지금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안 된다. 지엠이나 쌍용 등 완성차업체에서 노조가 있으면 물량을 안 준다”(2019년 에이에스에이(ASA)전주 사장)는 등 노조 조합원들에게 탈퇴를 종용하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 밖에도 “계약을 나하고 현대제철하고 했지, 너희들(노동자들)하고 계약 안 했단 말야. 내가 계약 파기하면 노조고 뭐고 다 끝난다니까”(2020년 현대제철 사내하청업체 대표), “본사(원청)에서는 (노조에) 가입이 돼 있는 사람이 있으면 색출해갖고 (원청과 대리점 사이의) 재계약 못 하게끔 자꾸 압박을 넣는단 말이야”(2021년 씨제이(CJ)대한통운 대리점 대표)와 같은 사례도 있다.
하청 사용자들의 논리는 노조 활동을 하면 원청이 일감을 끊을 수 있을 수 있고, 실직에 이를 수 있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원청’인 삼성은 이를 직접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대표적인 사례다. 삼성 미래전략실과 삼성전자, 삼성전자서비스는 2013년 가전제품 설치·수리 기사들이 일하던 협력업체에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설립되자 노조 간부와 노조 조합원이 많은 협력업체들을 ‘기획 폐업’시켰다. 당시 삼성은 ‘협력업체가 폐업해도 다른 업체로의 고용승계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을 유포하는 한편, “‘노조 활동=실직’이라는 조합원들의 불안감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을 썼다.
단지 “민주노총은 안 된다”는 이유로 원청이 하청업체와 공모해 ‘노조 와해’를 계획한 사례도 있다. 지난 2월 사건 발생 8년 만에 부당노동행위 유죄 판결이 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당시 사무국장 등은 청소용역업체 관리자들과 함께 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세브란스병원분회에 가입한 청소노동자들에게 “노조에서 탈퇴하면 수당을 주겠다”는 회유 등을 바탕으로 조합원 100여명을 탈퇴하게 한 뒤 한국노총 노조에 가입시켰다.
전문가들은 하청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 보장을 위해선 원청 사용자에게 사용자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원청기업이 비용 절감 등을 목적으로 업무를 외주화했다면 하청업체의 독립적 노사 관계도 보장해야 하는데 이 역시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하청 노조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라며 “대기업들이 원·하청 상생을 이야기한다면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박다혜 변호사(법률사무소 고른)도 “노조에 가입한 하청업체를 폐업하거나, 하청업체 뒤에 숨어 교섭을 거부하는 등 원·하청 관계에서는 부당노동행위라는 범죄의 실행을 ‘위장’하는 것이 매우 쉽다”며 “증거가 사용자에게 숨겨져 있는 부당노동행위 범죄의 특성이 원·하청 관계에서는 더욱 강화되어 있기 때문에, 강제수사 등 수사기관의 적극적인 수사를 통해 범죄의 실행 행위나 고의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태우 김해정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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