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연준 무력화하려는 트럼프

여론독자부 2024. 5. 1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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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람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대통령 금리결정 개입 등 획책 시도
물가안정·완전고용이 연준의 사명
독립성 훼손땐 최악 인플레 못피해
[서울경제]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이 확실시되는 도널드 트럼프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무력화하고 싶어한다. 인플레이션을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중앙은행인 연준의 무력화는 최고 등급의 화재경보에 해당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단독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미 연준의 정치적 독립성을 무너뜨릴 청사진을 작성했다. 연준을 장악하기 위해 그가 마련한 몇몇 방안 중에는 대통령에게 연준 의장을 해고할 권한을 부여하거나 대통령이 직접 금리 결정에 개입하는 안이 포함돼 있다.

그렇다면 연준의 정치적 독립성은 왜 중요한가.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 특히 재선에 도전하는 대통령은 단기적인 경기 개선 효과를 내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통화 공급량을 조절하고 싶어한다. 예를 들어 금리를 인하해 대출 경비를 줄이면 시중에 돈이 풀리면서 소비자들의 씀씀이가 늘어난다. 이 경우 소비자들은 이전보다 경제적으로 여유롭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 정치인들은 실질적인 경기 부양 필요성에 상관없이 통화 공급량을 확대해 경제에 단기적인 에너지원을 제공하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정치적인 측면에서 현명한 듯 보이는 단기적 조치가 장기적으로 늘 유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미 잘 돌아가는 경제에 통화공급을 확대할 경우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게 된다. 반대로 경기가 과열되면 중앙은행은 대단히 인기 없는 단기 조치를 취해야 한다. 예컨대 더욱 고통스러운 결과를 예방하기 위해 줄줄이 오르는 물가의 고삐를 단단히 틀어쥐어야 한다.

그렇다고 중앙은행이 늘 올바른 결정을 내린다거나 외부의 감독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실제로 연준의 이사가 되려면 대통령의 지명과 연방 상원의 인준 절차를 거쳐야 하며 재직 중에는 관련 법에 따라 정기적으로 의회에 출석해 증언해야 한다.

그러나 연준 이사들을 의회로 불러 어려운 질문에 답하게 만드는 것과 이들을 선거판의 득표기로 활용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연준 의장과 이사들은 파면이나 해임의 두려움 없이 필요할 경우 언제건 인기 없는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정치적 독립성 보장이 없다면 연준은 물가 안정과 완전 고용이라는 두 가지 사명을 완수할 수 없다.

과거 수년에 걸쳐 이뤄진 여러 연구에 따르면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강할수록 인플레이션 통제가 한결 수월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플레이션에 찌든 아르헨티나와 유로화 시대 이전의 이탈리아가 이를 입증하는 대표적 본보기에 해당한다. 이들 외에 튀르키예는 현재 연율 68.5%의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고 베네수엘라는 지난해 거의 200%의 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관한 대중의 인식도 대단히 중요하다. 중앙은행이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면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은 자기 충족적 예언이 되고 만다. 연준이 중앙정부의 눈치를 살핀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상황에서 물가 상승 조짐이 보이면 기업들은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과 통화 축소 등의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서둘러 제품 가격을 인상한다. 중앙은행이 기대 인플레이션을 지켜낼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단기 가격 쇼크는 재빠르게 장기 인플레이션으로 전환된다.

트럼프가 연준의 독립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대통령 재임 당시 트럼프는 그에게 충성하는 ‘정치 공작원’을 중앙은행 이사로 임명하려 시도했다. 다행히 당시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그의 시도를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또한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율을 띄우고 개인적인 재정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금리 인하를 요구하며 연준을 압박했다.

그렇다면 트럼프 시절 미국 경제가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얼까. 그즈음 연준은 이미 수십 년에 걸친 노력의 결실로 ‘독립적 기관’이라는 확고한 평판을 구축한 상태였다. 게다가 트럼프가 임명한 연준의 멤버들조차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려는 그의 시도에 공개적으로 저항했다. 트럼프가 권좌에 있는 동안 미국 경제는 팬데믹 이후의 경제 봉쇄 해제처럼 인플레이션 쓰나미를 유발하는 강력한 충격을 받지 않았다.

지금의 경제적 환경은 다르다. 미국은 최근 한 세대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했다. 그래도 고삐 풀린 인플레이션을 현재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재점화를 막을 수 있었던 핵심 이유는 연준이 단행한 연이은 금리 인상만은 아니었다. 일반 대중이 장기적 물가 안정에 대한 연준의 확고한 의지를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차기 대통령이 연준의 독립성과 평판을 훼손한다면 이번에 우리가 누린 행운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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