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아빠에게 필요한 건 ‘아묻따 육아휴가’

이영준 2024. 5. 14.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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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유급 출산휴가가 평일 기준 10일에서 20일로 늘어난다.

엄마가 육아 부담을 덜고 아빠가 역할을 정립하려면 공동육아 기간이 길어야 한다는 전문가 진단에 따른 제도 개선이다.

하지만 17개월 된 딸을 둔 아빠의 눈으로 보면 최근 육아 트렌드와 출산 전후 아빠의 역할을 섬세하게 짚지 못한 정책이어서 아쉬움이 든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겐 출산 전후로만 쓸 수 있는 한 달짜리 휴가보단 예고 없이 찾아오는 육아 공백을 메우는 휴가가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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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유급 출산휴가가 평일 기준 10일에서 20일로 늘어난다. 자녀가 태어났을 때 한 달간 아내 곁에서 육아를 도우라는 취지다. 엄마의 독박육아 대신 아빠의 공동육아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엄마가 육아 부담을 덜고 아빠가 역할을 정립하려면 공동육아 기간이 길어야 한다는 전문가 진단에 따른 제도 개선이다.

하지만 17개월 된 딸을 둔 아빠의 눈으로 보면 최근 육아 트렌드와 출산 전후 아빠의 역할을 섬세하게 짚지 못한 정책이어서 아쉬움이 든다. 산모 10명 중 8명은 출산 후 3박 4일 안팎 입원 기간이 끝나면 통상 2주간 산후조리원을 이용한다. 이용률은 매년 증가세다. 산후조리원에서 퇴소하면 2~3주간 산후관리사 제도를 이용한다. 공식 명칭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지원 사업이다. 자녀 출생일로부터 최대 40일가량 산모와 신생아에 대한 ‘공적 돌봄’이 이뤄지는 것이다.

산후조리원 입소 기간에 아빠가 출산휴가를 쓰면 딱히 할 일이 없다. 특히 코로나19 확산기에는 아빠가 산후조리원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지금도 가족 접촉을 제한하는 산후조리원이 많다. 출산휴가 확대 소식에 “한 달 시원하게 놀 수 있겠네”라는 반응도 허튼소리가 아니다.

산후관리사 관리 기간 역시 아빠의 출산휴가가 환영받지 못하는 시기다. 아빠의 역할이 딱히 없을뿐더러 관리사의 눈치를 봐야 하고 끼니마다 아빠 몫 식사 차림 비용도 더 내야 한다. 아빠가 집에 있는 것이 불편하다는 관리사도 많다.

산후관리사 기간이 끝나면 흔히 친정어머니 혹은 시어머니 ‘찬스’를 쓴다. 물론 개별 육아 환경은 다르지만, 낮 동안 아빠의 도움이 필요해지는 시기는 출산일로부터 3개월쯤 되는 것 같다. 이때 사용하는 휴가를 ‘출산휴가’라 부르는 건 다소 어색하다. 출산일로부터 90일 이내인 휴가 신청 마감도 임박한 시점이다.

아빠 출산휴가 기간이 늘어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다만 육아 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세심한 정책 고민이 더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겐 출산 전후로만 쓸 수 있는 한 달짜리 휴가보단 예고 없이 찾아오는 육아 공백을 메우는 휴가가 더 필요하다. 갑자기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야 할 때, 아픈 정도가 심해 즉각 3~4일 입원해야 할 때, 병이 완쾌되지 않아 어린이집에 못 보낼 때, 맞벌이 부부 출근 날 어린이집이 쉴 때, 배우자가 멀리 출장을 갔을 때 휴가가 절실하다. 이른바 ‘육아휴가’다.

필요할 때 연차를 쓰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든 편하게 연차를 쓸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사업장은 드물다. 업무 공백보다 더 큰 문제는 육아휴가를 바라보는 직장 동료와 상사의 인식이다. 육아를 위해 쓰는 휴가를 ‘쉬는 것’으로 인식하거나 업무에 소홀해졌다는 증거로 여기며 오로지 일을 최우선시하는 직장 문화는 여전히 살아 있다.

엄마·아빠가 육아휴가를 썼을 때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아묻따’), 업무상 페널티가 없는 근로 환경이 일터 전반에 확산되길 바란다. 육아 때문에 경력이 단절되고 직업적 입신양명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면 우리나라 저출생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영준 세종취재본부 차장

이영준 세종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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