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 전통시장 푸드트럭존⋯백종원 손길도 무색 [중고매물이 된 청년의 꿈 ②]

이호준 기자 2024. 5. 1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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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타며 손님 몰렸지만, 민원에 흔적 없어져...지자체는 '뒷짐'
13일 지동교 위 푸드트럭 존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음식을 판매하던 청년들과 줄을 지으며 음식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모습이다. 이진기자

 

수원 남문시장 푸드트럭존 ‘청춘’ 걸었는데… 상인 반발에 ‘좌절’

“반짝 북적거리더니만, 하나둘 없어지던데…”

13일 수원 팔달구에 위치한 수원 남문시장. 이곳은 2017년 전국 최초로 전통시장에 푸드트럭 존이 들어서며 많은 이의 관심을 받았던 곳이다. 그러나 그 명성은 사라진지 오래. ‘수원 남문시장 푸드트럭 존’은 현재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수원 남문시장과 지동시장을 잇는 지동교를 가득 채웠던 청년 푸드트럭의 불빛과 열기는 주변 상인들의 기억 속에만 자리하고 있다.

남문시장에서 생활잡화 판매 일을 하는 김희자씨(54)는 이들을 ‘반딧불이’에 비유했다. 김씨는 “오후만 되면 청년들이 와서 트럭 불을 켜고 장사를 했다. 저녁부터 밤까지 영업하는데 불을 환하게 켜두고 활기찬 모습이 반딧불이 같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시장에서 청년 사장들이 맛있는 음식도 팔고 그러니 입소문이 나서 전국 각지에서 젊은이들이 구경도 오고 좋았는데, 어느 순간 한두 명 사라지면서 지금처럼 휑해졌다”고 말했다.

수원 남문시장 푸드트럭 존은 지난 2017년 시장 중심부인 팔달문 옆 차 없는 거리와 지동교 광장 양방향 구간에 조성됐다. 이 푸드트럭 존이 주목 받았던 것은 전국 최초로 전통시장 인근에 푸드트럭 존이 조성, 기존 상권과 마찰을 빚거나 유동인구가 적어 제대로 된 영업을 할 수 없던 다른 푸드트럭 존과는 달리 푸드트럭 사업자들이 활성화된 상권에서 영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수원 남문시장 푸드트럭 존은 전통시장에선 보기 힘든 수제버거, 피자 등 젊은 층의 입맛에 맞춘 음식들이 채워졌고, 수원시의 적극적인 홍보가 더해지며 이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기 시작했다. 특히 ‘백종원의 푸드트럭’ 등 인기 방송 프로그램들이 수원 남문시장 푸드트럭 존을 조명하면서 입소문을 탄 푸드트럭 존은 늦은 시간까지 인파로 북적였다.

한때 성황을 이뤘던 수원특례시 남문시장 푸드트럭존은 일부 시장 상인과의 마찰과 푸드트럭 창업자의 운영 포기,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현재는 사라졌다. 사진은 지난 2017년(오른쪽)과 현재의 남문시장 푸드트럭존 모습. 김시범기자·경기일보DB

그러나 현재, 수원 남문시장 푸드트럭 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넘치는 인파는 통제가 불가능한 수준이었고 쓰레기 투기, 교통혼잡에 대한 민원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푸드트럭 존 인근에서 영업하던 상인들도 매일 밤 더러워지는 거리에 불평을 쏟아냈다. 시로부터 영업허가 구역을 제공 받았지만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곤욕을 겪던 남문 푸드트럭 존 사업자들은 눈총과 등쌀을 이기지 못하고 남문시장을 떠나야 했다.

남문시장 푸드트럭 존에서 분식을 판매했던 고성길씨(가명·35)는 “푸드트럭 존이 처음 생겼을 때는 지자체와 방송사들이 관심을 많이 가졌고 재료 소진으로 영업을 조기에 마감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장 상인분들의 불만, 통행이나 교통 문제가 터져 나왔다”며 “결국 버텨낼 재간이 없어진 (나를 비롯한) 푸드트럭 사장들은 다른 영업장소를 찾아 떠나야 했다”고 말했다.


‘고철 신세’ 푸드트럭… 백종원 손길도 무색

지난 2017년 수원 남문로데오시장에 들어선 푸드트럭. 경기일보DB

■ 지자체와 함께 꾼 청년 대박의 꿈

앞서 경기도와 수원시는 지난 2016년 11월 청년 창업을 돕고 전통시장 상권을 회복하기 위해 수원 남문시장에 푸드트럭 존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도와 시는 앞서 2014년 푸드트럭 사업 규제 완화에 청년들이 푸드트럭 창업에 나섰지만, 고속국도 졸음쉼터나 체육시설, 공원 등 활성화된 상권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영업하거나 기존 상권과의 마찰로 마땅한 영업장소를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인지, 이들을 위한 특화 푸드트럭 존을 형성했다.

수원시는 청년 푸드트럭 창업자들이 영업할 수 있는 푸드트럭 존 조성을 위해 다방면의 검토를 거쳐 지동시장, 영동시장 등 수원지역 9개 시장을 대표하는 곳이자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과도 인접해 관광객이 자주 찾는 수원 남문시장에 푸드트럭 존을 마련했다. 혹여 기존 상권과의 마찰을 우려해 시는 푸드트럭 영업시간을 야간으로 한정하는 대신 푸드트럭의 전통시장 상권 진출에 수원남문시장상인회와 합의했다. 또 사업 운영에 선정된 영업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자 푸드 트레일러를 임대·지원했다.

이를 통해 경기도와 수원시는 푸드트럭의 안정적인 상권 확보와 관광 활성화로 전통시장 유동 인구 확대를 기대했다. 2017년 본격적으로 문을 연 남문시장 푸드트럭 존은 시작과 함께 ‘최초의 전통시장 내 푸드트럭 존’이라는 타이틀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시가 진행한 푸드트럭 사업자 공모에는 매년 많은 지원자가 몰렸으며, 유동 인구 증가에 따른 매출 증대로 시장 상인들의 긍정적인 평가도 이어졌다.

기존 상권 민원에 무너져 내린 청년의 꿈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수원 남문시장 푸드트럭 존을 둘러싼 잡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높은 인기에 푸드트럭 존 일대는 혼잡해져 마비 현상이 빚어졌고, 장시간 기다림 끝에 받아 든 음식은 손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인기는 한순간 식어갔다. 또 인파가 다녀간 자리는 쓰레기가 무분별하게 버려져 있어 악취가 진동하거나 벌레가 꼬이기도 했다.

이에 새벽부터 영업을 준비하는 기존 시장 상인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 반복됐고, 참다 못한 일부 상인들은 푸드트럭 존 운영에 대한 민원을 시에 제기하기도 했다.

수원시의 푸드트럭 존 사업에 대한 불만은 청년 창업자 사이에서도 끊이지 않았다. 앞서 푸드트럭의 전통 시장 진출을 두고 상인회가 수원시에 제시한 ‘영업시간 및 판매 음식 품목 제한’ 조건에 따라 푸드트럭 존 영업자들은 매일 4~5시간만 영업할 수 있었으며, 단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품목에 대한 판매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실질적인 이익을 보지 못하는 사업자도 많았다. 2017년 1월부터 수원시 푸드 트레일러 사업에 참여, 남문시장에서 푸드트럭 영업에 나선 18대 푸드트럭의 월평균 매출은 672만원으로 비교적 높았지만, 전체 18곳 중 12곳(66.6%)의 월 매출은 평균 미달이었다. 월 매출이 140만원에 불과한 곳도 있었다.

푸드트럭 존 운영 8개월 만에 6명의 창업자가 운영을 포기하는 등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사업을 포기하는 청년 창업자가 속출한 가운데,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등장하면서 수원 남문시장 푸드트럭 존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살아나지 않는 푸드트럭 존, 돌아오지 않는 청년들

결국 경기도와 수원시가 각각 1억3천500만원, 상인회가 2천700만원을 부담해 마련한 푸드 트레일러는 ‘고철’ 신세가 됐다. 2020년부터 푸드트럭 존 영업이 사실상 무기한 중단되면서 푸드트럭 사업을 이어가려는 지원자를 구할 수 없었던 수원시는 수년간 18대의 푸드 트레일러를 사용하지 못한 채 방치했고, 짐으로 전락해 버린 푸드 트레일러는 지난해 고철값도 받지 못하고 처분됐다.

이에 대해 수원시 관계자는 “남문시장 푸드트럭 존은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연령층이 찾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자랑했지만, 코로나19가 등장해 푸드트럭 존 운영이 어려워졌고, 트레일러 역시 청년의 수요가 크게 줄어 오랜 시간 보관 끝에 지난해 처분을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이호준 기자 hojun@kyeonggi.com
이지민 기자 easy@kyeonggi.com
금유진 기자 newjeans@kyeonggi.com
이진 기자 twogeni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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