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근무성적 불량… 해고 이유 단 두 줄로 꿈 앗아가니 암담했죠"

권정현 2024. 5. 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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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공사 사상 첫 임용 취소 A씨 인터뷰]
준법투쟁 동참 수습, 임용취소 날벼락 
지노위 "부당 해고" 판단… 복직 명령
공사 재심 청구, "주어진 상황에 최선"
서울교통공사로부터 부당 해고를 당했다가 이달 복직한 직원 김혁진(가명)씨가 지난달 29일 서울 성동구 옥수역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얼굴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김씨 요청에 따라 그림자 처리했다. 이한호 기자

‘수습기간(3개월, 2023.8.25.~11.24.) 중 근무성적이 극히 불량하다는 소속장 평가 결과에 대한 인사위원회 심의·의결에 따라 임용을 취소함.‘
해고 이유는 단 두 줄이었다. 3개월 수습 생활이 모두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김혁진(가명)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열차를 운전하는 기관사가 되고 싶었다. 지난해 8월, 14.1 대 1(승무직 기준)의 경쟁률을 뚫고 서울교통공사에 합격했을 땐 모든 걸 다 가진 기분이었다. 오랜 꿈을 이룬 만큼 입사해서도 늘 즐겁게 일하려 애썼다. 그러나 ‘그 일’ 이후 모든 게 180도 달라졌다. 공사는 지난해 11월 23일, 3개월 수습 과정을 마친 김씨의 정직원 임용을 취소했다. 공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공사 측은 종합평가 성적이 낮다는 이유를 댔다. 그러나 공사 노동조합 '준법투쟁'에 김씨가 동참한 걸 빌미 삼은 보복성 해고라는 논란이 일었다. 김씨는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을 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는 올해 2월 이를 부당 해고로 판단하고 김씨에게 복직 명령을 했다. 지난달 15일 복직한 김씨를 서울 성동구 옥수역 공사 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씨의 언론 인터뷰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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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도와달라" 선배 부탁에 동참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경고파업에 돌입한 지난해 11월 9일 서울 사당역에 파업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김씨는 “한 사람의 직장을 앗아간 해고의 이유가 저렇게 성의 없는 단 두 줄이라는 사실이 암담했다”고 털어놨다. ‘근무성적이 극히 불량하다’는 소속장 평가 결과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소속장인 사업소 소장은 김씨가 노조 준법투쟁에 참여했다는 걸 문제 삼아 폭언을 쏟아부은 장본인이었다.

지난해 11월 2일, 공사 노조는 1주일간 준법투쟁에 들어갔고 이틀 뒤 김씨는 함께 일하는 기관사 선배의 부탁을 받고 동참했다. 정차 후 출입문 개방 시간은 약 30초인데 출근길에는 승객 모두가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조금 더 열어두는 방식이 준법투쟁이다. 당연히 준법투쟁 기간엔 평소보다 많은 열차 지연이 발생했다.

김씨를 포함해 15명의 수습 모두 노조 소속으로 준법투쟁에 참여했지만 후폭풍은 김씨에게만 매서웠다. 운행을 마치고 사업소로 돌아온 그에게 “왜 파업에 동참했냐”는 한 간부의 추궁이 5차례나 이어졌다. 이 간부는 징계 사유가 있을 때 받는 ‘특별교육’까지 언급했다. 이어 사업소 소장이 불러 경위서 작성을 지시했다. 소장은 “수습 평가에 반영할 것”이란 말도 빼놓지 않았다. 이틀 뒤인 11월 6일, 김씨가 운행을 도운 열차에서 안전문 장애가 발생했다. 비 오는 출근길이라 사고가 우려돼 출입문을 빨리 닫지 못했고 20분가량 열차가 지연됐다. 준법투쟁과 무관한 일이었지만 소장은 파업에 동참했다며 김씨에게 또 경위서를 쓰라고 했다. 김씨는 “상사에게 폭언을 듣고 이틀 만에 또 파업에 참여하는 간 큰 수습이 어디 있겠느냐”며 “저를 겨냥한 조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씁쓸해했다. 이후로도 소장은 같은 내용의 경위서를 6번이나 더, 그것도 컴퓨터가 아닌 손으로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그래도 임용이 안 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전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 전날, 수습 15명 중 유일하게 김씨만 탈락했다. 다른 사업소에 소속된 수습들은 불이익을 받지 않았는데 왜 김씨만 타깃이 됐을까.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다만, 본보기 삼으려 한 것 같다는 짐작만 할 뿐이다. 김씨의 상사였던 사업소 소장은 김씨의 수습해제 여부를 심의한 인사위원회에 ‘지연 운행은 지시 불이행에 해당해 임용 불가하다’는 취지의 수습결과 평가서와 임용 부적격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소속장의 일방적 평가로 임용이 취소될 수 있는 구조는 잘못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힘겨운 복직 투쟁, "부모님께 말 못해"

서울교통공사가 김씨에게 보낸 임용취소 이유서. 김씨 제공

지노위 심문 과정에선 일개 노동자가 거대한 회사 측과 싸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실감했다. 공사는 두 번째 열차 지연도 준법투쟁 때문이라고 집요하게 주장했다. 당시 지연이 발생한 역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구간인데 공사는 코레일 건축설비처를 통해 안전 장애가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근거라고 제시했다. 김씨는 “건축설비에 문제가 없어도 현장에서 안전문이 원활하게 여닫히지 않는 일은 종종 생긴다”며 “현장 경험 있는 사업소 소장과 간부 모두 알고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사측은 실제 이뤄지지도 않은 특별교육을 김씨가 받았다거나 사실상 ‘겁박’으로 작성된 경위서를 김씨가 자처해 썼다고 하는 등의 왜곡된 자료를 제시했다. 반면 김씨가 상사 폭언과 괴롭힘을 입증할 자료는 많지 않았다. 그는 “항상 녹음기를 켜고 다니지 않는 이상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우울증 증상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을 정도였지만 가족에게는 비밀로 했다. 김씨는 “장남이 안정적인 직장 가졌다고 기뻐하는 부모님께 차마 말씀을 드릴 수 없어(해고 기간 중에도) 계속 일을 다니는 척했다”고 털어놨다.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지노위는 ”두 건의 열차 지연 책임을 근로자에게 물을 수 없다”며 김씨 손을 들어줬다. 지노위 판정서에 따르면 ”김씨는 소극적이고 평화로운 준법투쟁에 동참했고 이 때문에 열차가 지연된 책임을 물어 수습평가에 낮은 등급을 부여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이틀 뒤 열차 지연도 평일 출근 시간대 비가 오던 상황으로 평소보다 승객이 몰리는 상황에서 승객이 안전하게 열차에 탑승해 출발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이느라 발생했다고 추정돼 고의적인 열차 지연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부당 해고 판정으로 복직할 수 있게 됐지만 공사로 되돌아가는 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자신을 괴롭힌 간부들과 무성한 소문, 일부 달갑지 않은 시선 때문이었다. 그러나 부당 해고 판정 결과가 나온 날 다 같이 김씨를 찾아와 준 14명의 입사 동기들, 구제 신청을 자신의 일처럼 도와준 선배들의 응원에 복직을 결심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공사는 지노위 판결에 불복해 지난달 4일 중앙지방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 때문에 김씨는 최근 열차 지연을 사유로 또 감사실 조사를 받았다. 그는 “5개월간 갖은 풍파를 겪고 나니 더 잃을 것도 없다는 마음이 든다”며 “스스로 떳떳한 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권정현 기자 hhh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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