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25만 원의 딜레마

이노성 기자 2024. 5. 1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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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지원금’ 강 대 강 대치…반대 여당 정강에 ‘기본소득’, 주도 야당은 효과 설득 부족
사회권 차원 공론화 해볼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민 1인당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22대 국회 첫 회기인 6월 임시회에서 ‘민생위기 극복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처리해 재원 13조 원을 확보하겠다고 예고했다. ‘처분적 법률’(입법만으로 국민에게 권리나 의무를 부여)이라는 단어까지 동원해 정당성을 강조한다. 여당은 재원 부담은 물론 위헌 가능성이 크다고 반대한다. “헌법상 예산 편성권은 국회가 아니라 행정부에 있다. 국회가 예산을 편성하려면 정부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물가와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어려운 분을 집중 지원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회담하기 전 악수하는 모습. 오른쪽 사진은 국민의힘 추경호(왼쪽 두 번째) 원내대표가 13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를 예방해 기념촬영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당이 25만 원 지급을 반대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 대표 공약인 기본소득과의 연관성 때문이다. 경제학자 출신인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일회성 25만 원이 반복되면 기본소득이 된다”고 지적한다. 소득에 상관없이 똑같은 현금을 주는 기본소득이 아니라 소외계층을 더 돕는 복지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국민의힘 정강정책 맨 앞에 ‘기본소득’ 네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다. “국가는 국민 개인이 기본소득을 통해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뒷받침하여….” 유권자들이 ‘기본소득을 왜 반대하느냐’고 묻는다면 여당은 어떻게 대답할까.

국민의힘은 2020년 9월 전면 개정된 정강정책 1조 1항에 기본소득 개념을 반영했다.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패하고 5개월 지났을 무렵이다.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재난지원금 14조 원을 풀었던 그 해다. 앞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2017년 3월 ‘기본소득 : 한국형 모델발굴’ 토론회를 개최했다. 그때 참석자가 정우택 원내대표와 최근 국민의힘 원내대표로 선출된 추경호 의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짠’하고 기본소득이 나온 게 아니라 최소 3년은 고민했던 셈이다. 그래서 여당이 기본소득을 백안시하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정강정책에서 삭제하면 모를까.

국민의힘 대권후보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2년부터 색다른 실험을 했다. 이른바 안심소득이다. 안심소득 대상은 중위소득(모든 가구를 소득 순으로 나열했을 때 가운데에 속한 소득) 85% 이하인 저소득층이다. 기준소득(중위 소득의 85%)과 실제 가구소득 차액의 절반을 현금으로 보전한다. 기초생활수급자 제도와 달리 일해서 돈을 벌어도 기준소득 이하면 계속 현금을 준다. 근로의욕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다. 서울시가 400여 가구를 선정해 시범사업을 했더니 효과가 뚜렷했다. 상당수는 삶의 질이 개선됐다. 21.8%는 근로소득 증가를 경험했다. 안심소득의 이론적 배경은 밀턴 프리드먼의 ‘음의 소득세’다. 부의 재분배로 개인의 삶과 노동생산성 개선을 이룬다는 점에서 기본·안심소득의 목표는 같다.

안심소득 실험은 실증 연구로 경제 이론을 검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어떤 정책이 양극화 해소에 도움 되는지 확인하려면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민생회복지원금이 어떤 효과를 낼지는 불투명하다. 오히려 “돈이 풀리면 물가를 더 자극한다”거나 “나랏빚을 어찌 감당할건가”라는 우려가 많다. “국회의원은 1번 찍었지만 25만 원은 반대한다”는 진보 경제학자도 있다.

국론도 팽팽히 나뉜다. 여론조사기관 4곳이 지난달 29일부터 사흘간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민생회복지원금 찬성(46%)과 반대(48%)가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돈을 준다는 데 달가워 하지 않는 비율이 예상보다 높다. 이 대표가 딜레마에 빠질 대목이다. 민생이 산다면 13조 원 이상을 쓸 수 있다. 그 전제는 재정 지출의 효과성이다. 그런데 국민 절반은 여전히 25만 원 지급의 부작용을 우려한다. 그들 설득이 먼저다. 다수당이 완력을 과시하고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순간 22대 국회에서도 협치는 물 건너간다. 그 책임의 절반은 이 대표 몫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4대 보험과 복지 안전망 확대를 통해 사회적 기본권을 꾸준히 축적해왔다. 기본소득과 25만 원 논쟁 역시 사회권을 더 확대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완성된’ 사회권은 없다. 토론과 사유를 통해 현실에 맞게 수정해 나갈 뿐이다. 그 과정이 때론 험난하다. 서울대 장대익 교수는 저서 ‘다윈의 식탁’에서 철학이나 지향점 차이가 커 꼬인 난제를 풀 방법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여야가 일주일 동안 25만 원 지급을 두고 공개토론 하고 방송국은 쟁점을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해를 돕는 식이다. 여기에 전문가들이 팩트체크 하고 절충안까지 내놓는다면? 누구도 자신 입장만 고집하기 어렵다. 이 대표가 먼저 25만 원 식탁을 제안하면 어떤가. 국민의힘과 둘러 앉아 공론화 절차를 밟자는 것이다. 여론이 이 대표 손을 들어주면 정부도 반대만 할 수 없다. 25만 원은 그때 줘도 늦지 않다.

이노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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