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과학계의 스승과 제자

김정선 동서대 총괄부총장 2024. 5. 1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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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선 동서대 총괄부총장

‘하버드대학의 치명적 화학(Lethal Chemistry at Harvard)’은 1998년 11월 뉴욕타임스의 기사 제목이다. 당시 하버드대학 화학과 박사과정생이던 제이슨 알톰이 실험실의 독극물을 마시고 죽은 사건을 다루고 있다. 본인이 죽음을 선택하는 이유를 적어놓은 메모에는 지도교수가 학생들의 삶에 너무나 큰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지도교수는 화학계의 거장이던 엘리야스 제임스 코리 교수였는데, 동료 학생들의 증언에 의하면 제이슨은 존경하는 스승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압박감으로 숨을 쉴 수 없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코리 교수는 MIT에서 학위를 받고 하버드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1990년 노벨상을 받은 유명한 화학자다. 역합성분석(Retrosynthetic analysis)이라는 개념을 공식화하면서 자연에 존재하는 유용한 물질들의 복잡한 구조를 실험실에서 만들어 낼 수 있게 한 연구로 잘 알려져 있다. 워낙 거장이다 보니 그의 연구실을 거쳐 간 대학원생과 연구원의 숫자는 엄청나게 많고, 이들의 연구 업적도 어마어마하다. 항암제 택솔의 완전 합성을 실현한 니콜라우 교수와 2017년 저명 학술지 네이처 발표 올해의 10대 인물 중 하나인 데이비드 리우 하버드대 교수를 포함하는 그의 많은 제자는 본인들 프로필에 자랑스럽게 코리 교수의 제자임을 드러낸다. 제자들에게 탁월한 과학적 지식과 연구 역량을 전수해 주고, 연구에 대한 열정을 가질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해주는 것이 스승으로 해야 할 역할로 충분하다고 여겼던 시절이다. 코리 교수는 제이슨에게 과학자로서 애정을 아끼지 않았지만, 그의 심리적인 어려움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결국 사망한 제이슨이 시작한 연구는 동료들이 완성하면서 제이슨에게 헌정되는 논문으로 저명한 화학 학술지 JACS에 발표됐다.

제이슨 알톰의 사망은 대학원 연구실 문화의 문제를 드러내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은 단순히 누군가의 책임을 추궁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합리적인 조사와 대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주목된다. 당시 화학과 학과장이던 제임스 앤더슨 교수는 대학원생들의 삶에 대한 학과 차원의 역할을 찾기 위해 학생들과 소통을 한 결과 심리 상담 서비스 제공 및 의료비 상환펀드(Health Reimbursement Fund) 조성과 같은 학생들의 요구가 반영된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했다. 2024년 현재 약 53만 달러가 펀드에 적립돼 있다고 한다. 또한, 세 명의 지도교수 체계를 도입해 학생들이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는 학문적, 인간적으로 안정적인 지도를 받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이러한 변화는 대학원 연구 환경에서 멘토로서 지도교수의 역할이 강조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본인의 연구를 이어가는 열정에 더해 다음 세대 과학자들을 양성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리는 과학멘토상(Nature awards for mentoring in science)이 2005년부터 네이처 학술지에 제정된 것 또한 이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연구의 연속성이라는 과학의 특성상 이어달리기를 하듯 학문적 지식과 영감을 전달받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마리 퀴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리처드 파인만과 같은 거장들도 누군가의 제자였고, 누군가의 스승이었다. 성공적인 사제관계에는 공통적으로 학문적인 성장에 더해 제자의 능력을 인정하고 격려해 온 점이 주목된다. 여기에는 제자의 인격과 심리적 발전을 돕는 역할도 포함이 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30년에는 국내 이공계 대학원 신입생이 현재의 85%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이공계 활성화 대책을 위한 태스크 포스를 발족하고 과학기술 예산 증액 등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원생들의 연구생활자금을 지원하는 한국형 스타이펜드(stipend) 제도의 도입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과학은 스승과 제자 간의 협력과 소통을 통해 발전하기에 스승과 제자가 서로를 배려하는 멘토 문화 조성을 위한 지원이 더 시급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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