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취침, 밤엔 토굴서 잠복… 1970년대 간첩과 싸우던 전투경찰대 전역증서

채민기 기자 2024. 5. 1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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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권태호씨의 보물

“이 교육은 경찰관 1438명에게 차츰 게릴라화(化)하는 대남 간첩에 대한 작전술을 주로 가르치게 된다.”

새로 창설될 전투경찰대를 육군에 위탁 교육한다는 내용의 1967년 8월 12일 자 조선일보 기사의 내용이다. 그해 창설된 전투경찰대는 직업 경찰관으로 구성된 대(對)간첩 작전 조직이었다. 이후 1968년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시도와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 등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면서 대응에 필요한 인력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부는 1970년 병역 의무자를 전투경찰순경(전경)으로 임용하는 전투경찰대 설치법을 제정했다. 시험으로 선발된 전경이 이듬해부터 일선에 배치돼 직업 경찰관 부대를 점차 대체했다. 1971년은 2013년 폐지된 전경 제도가 시행된 첫해였다.

1970년대 전경의 주요 임무는 해안 초소 경비와 대간첩 작전이었다. 1970년대에 무장 간첩이나 북한 경비정과의 교전에서 전경 11명이 전사했다. 1972~1975년 부산에서 전경으로 복무한 독자 권태호(71)씨도 “낮에 취침하고 밤에 방위병들과 함께 움막이나 토굴, 구덩이에서 잠복 근무를 했다”면서 “힘든 여건이었지만 내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짧지 않은 세월을 기꺼이 복무했다”고 했다. 그 젊음의 상징인 전역증서와 인식표를 지금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1981년부터는 현역 입영한 병사 중에서 전경을 차출했다. 주된 임무도 바뀌었다. 학생운동과 시위가 격화되는 상황에서 경찰관을 급격히 늘릴 수 없어 전경이 대응에 투입됐다. 남색 제복 차림에 방패를 들고 시위대와 대치하는 전경의 이미지는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전경에게 집회·시위 진압을 맡기는 것이 위헌이라는 헌법 소원도 제기됐지만 1991년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전경은 군 입대자가 줄면서 2007년부터 점차 축소됐다. 2011년 12월 입대한 마지막 기수 3211기 183명이 2013년 9월 전역하면서 전경은 폐지됐다. 합동 전역식에서 당시 이성한 경찰청장은 “조국의 부름에 누구보다 당당했던 33만 전경 여러분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1971년부터 2013년까지 42년간 총 322명의 전경이 순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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