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가족도 국가폭력 피해자… 모두 함께 어우러지는 5·18 되길”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휘말려 고문당하고 사형수로 산 아버지
어머니도 진상규명에 평생 바쳐… 당시 운동 인사-가족은 기피 대상
고난 겪었지만 아버지 삶 이해해… 민주화 정신, 헌법에 수록됐으면
5·18민주화운동 사형수로 불렸던 정 전 이사장은 광주 동구 충장동에서 태어났다. 광주중앙초교, 광주살레시오 중고교, 전남대 화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고교 시절인 1960년 4·19혁명에 참여했고 1964년에는 한일회담 반대운동(6·3항쟁)으로 옥고를 치렀다.
재헌 씨는 “어릴 때 아버지가 5·17예비검속 때 군화를 신은 보안사 수사관들에게 끌려가는 것을 봤다. 1980년까지 김대중 전 대통령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신군부가 악랄하게 거짓 사건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재헌 씨는 중학생 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김 전 대통령에게 새해 인사를 가면 항상 제일 먼저 인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았다. 재헌 씨는 이런 배려에 5·18 희생자들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미안함이 작용했던 것 같다고 했다.
5·18 사형수로 수감 생활을 한 정 전 이사장은 출소 이후 민중항쟁연합 상임의장, 민주주의민족통일 광주전남연합 공동의장, 5·18기념재단 이사 등을 역임했다. 세상을 변화시켜 보고 싶다는 생각에 잠시 정치의 길도 걸었다. 하지만 정 전 이사장은 평생을 민주화운동과 5·18민주화운동 진상 규명에 헌신하며 자주 옥고를 치렀다.
재헌 씨가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할 때 아버지는 수감된 상태였다. 고교 졸업식에서는 제대로 아버지의 축하를 받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재헌 씨는 민주화운동 인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경험이 많다.
재헌 씨는 초등학교 때 친구가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엄마가 같이 놀지 말라고 했다”고 귀띔해 충격을 받았다. 당시 1980년 암울했던 사회 분위기는 평범한 시민들이 ‘민주화운동 인사나 그 가족들과 친하게 지내면 뭔가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해야 할 정도였다.
이에 재헌 씨는 “어린 시절 나도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국가폭력 피해자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교 은사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에게 “훌륭한 부모님을 본받아 잘살아야 한다”는 격려도 자주 들었다. 이런 말은 그에게 엄청난 압박감이자 자부심으로 작용했다.
재헌 씨 가족들도 가장인 정 전 이사장이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많은 고난을 겪었다. 어머니 이명자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남편인 정 전 이사장이 5·18 사형수가 되자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투사로 바뀌었다. 은행원 출신인 이 전 관장은 5·18민주화운동 직전 남편이 신군부에 체포되자 갓난아기이던 재헌 씨의 동생을 업고 남편을 찾으러 다녔다. 남편이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는 것을 법정에서 지켜봤다. 이후 남편 구명 활동을 하며 투사로 변신했고 5·18 진상 규명에 평생을 힘쓰고 있다.
오월 단체 사람들은 해마다 5월이 되면 5·18로 더욱 아프다고 한다. 자식들에게 표현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시민들은 광주에서 5·18정신 계승을 빼고는 광주정신을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재헌 씨 가족들도 5·18 희생자나 부상자, 유족들처럼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 재헌 씨는 아버지가 작고한 뒤 국가폭력에 맞서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고 한다. 재헌 씨는 “소상공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조금이라도 더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재헌 씨는 5·18민주화운동 정신이 헌법 전문에 수록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는 5·18이 특정인이나 단체에 의해 추모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했다. 재헌 씨는 “5·18민주화운동 44주년을 맞아 각종 행사가 더 밝은 분위기에서 모든 세대와 계층이 공감하며 참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말을 마쳤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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