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극장인 세상… 방문 열고 나온 관객과 함께 노래합니다

최우은 2024. 5. 1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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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경익 강원도립극단 예술감독
부임 후 첫 연출작 박인환 소재
17일 속초 시작으로 강원 순회
이동객석·싱어롱 등 관객참여형
“인물 박물관적 재현 관심 없어
어려운 시를 살아있는 언어로
연극은 감정을 마주하는 예술
관객 방관자 아닌 요리사 되길”
# 가객 박인환
# 감독 김경익
▲ 도립극단 가객 박인환 콘셉트 스냅

김경익 강원도립극단 예술감독은 연극을 ‘저공비행’에 비유했다. 현실과 너무 멀어지지도, 너무 붙지도 않는 균형감각.

17일 속초문화예술회관에서 올해 강원도립극단 정기공연 음악극 ‘가객 박인환’의 첫 공연을 앞두고 있는 김 감독을 만났다. 예술감독 취임 후 첫 연출작이다. 김 감독은 박인환에 대한 ‘박물관적 재현’에는 관심없다고 했다. 비참한 시대 꿈을 지키려 했던 청년의 분투 위에 오늘날 우리의 고민을 겹친다. 오랜 기간 연극계에 몸 담으면서 극작, 연출 등을 다양하게 해 온 김 감독은 얼굴이 익숙한 배우이기도 하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영호(설경구)에게 고문당하는 운동권 대학생(주인공 역을 두고 김 감독과 설경구 배우는 7차례의 오디션을 거쳤다)으로, ‘타짜’에서 정마담(김혜수)을 지키던 오른팔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지금은 관객을 마음으로 만나는 ‘무대예술’의 시대적 역할을 찾는데 누구보다 천착하고 있다. 프란츠 카프카의 이름이 정갈하게 적힌 까만 필통 하나를 놓고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1문1답으로 싣는다.

■ 가객 박인환

▲ 도립극단 가객 박인환 연습사진

-박인환을 소재로 한 이유는.

“31살에 요절한 박인환은 일제강점기와 6·25에 청년시기를 보냈다. 자식 셋을 낳고 산 가장이면서도 시를 붙들고 살았다. 그 난장판에 시에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궁금했다. 지금 보면 다소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당시 최빈국 지식인으로서 나라 발전을 위해 ‘우리도 저런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모던 사조를 제안했던 것 같다. 자연주의 시로는 안된다는 강박 같은 것 말이다.”

-그의 삶을 어떻게 풀어낼 예정인가.

“박물관적인 재현에는 관심 없다. 1949년에 그가 낸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서 연극 제작 동기를 얻었다. 지금도 도시는 계속 바뀌고 새로 만들어진다. 그 속에서 이어지는 시민들의 합창, 이것이 1949년과 2024년의 접점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모더니즘에 대한 갈증있었다면, 지금은 깨어있는 시민들의 연대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것을 생각하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합창할 때는 배우와 관객이 주고받는다. 자막으로 ‘여흥구’를 띄워드리니 따로 연습 안 하고 오셔도 된다(웃음).”

▲ 도립극단 가객 박인환 연습사진

-객석 구조가 독특하다.

무대 위 4개의 이동 객석으로 바퀴를 달아 28명씩 싣고 모양이 바뀐다. 관객이 무대 옆, 뒤 다 볼 수 있는 구조로 사실상 ‘4D 연극’이다. 돌출무대 좌우 30석은 마포에서 양계장을 한 김수영에서 영감을 받아 ‘양계장존’이 된다. 김수영 역이 닭을 들면 관객은 자리에 놓인 닭을 눌러야 한다. 그리고 남은 일반 객석 전체가 가객존이다.”

-이전에 인제에서도 공연이 있었는데.

“김재욱 배우가 주연을 맡았는데 코로나19 여파로 소수의 관객만 볼 수 있었다. 이동 객석에 싣고 전부 무대 위로 올렸다. 이번에는 일반 객석을 열었고, 내용도 풍성해졌다. 배우들이 악사도 같이 하고, 돌출무대를 만들어 객석으로 들어간다. 관객이 큰 그림으로 미장센을 보고, 배우는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박인환 문학 공부를 많이 했겠다.

“모든 작품을 봤다. 작품활동을 오래 한것도, 반공·반미를 한 것도 아니어서 드라마화 하기 매우 어려웠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까 가만히 보니 외롭게 싸웠던 한 청년이 보였다. 그 험한 시대 자기 꿈을 지키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던 한 청년의 분투기가 보였다. 연출가로서는 ‘그걸 왜 지금 봐야 돼?’라는 질문으로 연결됐다. 그때는 불행을 만드는 요인이 가난·전쟁·가시적인 적이었다면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자본이라는 옷을 입고 호주머니 털어가지 않나. 그로인해 한 번뿐인 인생을 소모하고 있지 않은지 짚어봤으면 하는 것이다. 당신의 꿈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바로 옆의 행복을 두고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등을 보자는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언젠가는 바뀐다. 그런 것들이 분명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을 찾아낼 줄 아는 촉을 갖고 관객과 소통하며 풀어내는 것이 공연예술의 숙명이다. 개인 작업은 ‘못 알아들으면 말고’이지만, 공연예술은 관객과 만나야 한다. 한 발 먼저 나가도 안 되고, 딱 붙어도 안 된다. 그래서 ‘저공비행’이라는 말을 쓴다. 땅 위에 약간 떠 가면서 땅도 보고 하늘도 봐야 한다. 연극과 다른 예술의 차이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 도립극단 가객 박인환 연습사진

-김수영 시인은 어떤 식으로 설정했나.

“일반적 해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수영을 삶 속의 시, 투쟁의 시로 표현한다면, 박인환은 거지같이 슬플 때도 예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실 두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없다. 김수영은 박인환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지만, 묘지에는 찾아간다. ‘세상이 이렇게 험해도 넌, 웃었잖아. 그래도 글을 써야지’라며 화해를 한다. 둘은 그런 사이다. 극에서는 김수영이 친구이자 안타고니스트 정도로만 머물러야 한다. 이야기가 더 나아가면 공연 진행이 안 된다. 박인환이 죽은 후 혼자 장지를 찾는 등 김수영이 박인환의 삶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연출 과정에서 어려웠던 부분은.

“박인환의 시는 한번 듣고 바로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관객은 연극을 한 번 보는만큼 한 번의 관람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연극은 단순 낭송이 되면 안 된다. 바로 지루해진다. 이 지점을 고민하다 과감하게 걷어낼 건 걷어내고 붙일 건 붙여서 재창작을 했다. 이해가 쉽게 동시대 말도 활용해 노래를 만들었다.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 같은 대표작은 많이들 아는만큼 그대로 뒀다. 문학 수업 재연이 아니라 1회 공연을 보는 관객을 생각한 연출이다. 알려지지 않은 시들은 자막 띄워도 모른다.”

▲ 도립극단 가객 박인환 콘셉트 스냅

-예를 들어 주신다면

“‘검은 신이여’라는 시가 있다. ‘저 파괴된 무덤에서 나온 사람은 누구입니까?’ 등 시 원문만 읽으면 이해하기 힘들지만. 당시 박인환이 처했던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된다. 김수영에게 욕 먹고, 자식이 아픈데 약도 못 사주고, 동료들은 죽어 나가는 그런 한계 상황에 박인환을 몰아넣고 저 시를 떠올리면 정서적으로 관객을 꿰뚫을 수 있다. 드라마하다가 뚝 잘라서 시 읽는 방식이 아니라 드라마와 시가 붙어서 가는 방식을 취하는 이유다. 그의 시가 ‘살아있는 언어’로 들릴 수 있게 했다.”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

“공연이 끝나고 관객이 박인환의 시를 조금이라도 궁금해 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다. 스스로 뷔페에서 음식을 떠다가 맛만 보는 사람이 아니라 같이 요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와주시기를 바란다.”

감독 김경익

▲ 김경익 예술감독이 최근 도립극단 연습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김정호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지 1년 다 되어 간다.

“재단과 통합하면서 시스템 안에서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더 정밀해져야 한다. 종속되지 않으면서도 가시적 공연 성과를 내는 것이 쉬운 과제는 아니다. 연출가로서는 (연출에만 집중할 수 있어) 작품적으로 깊어질 수가 있고, 차기작까지 바라보며 준비할 수가 있어 감사하다.”

-지금까지 총 몇 작품 연출했나.

“약 30여 편 했다. 첫 연출작부터 관객과 같이 이동하는 방식을 좋아했다. 앉아있는 관객을 살인 용의자로 지명하고, 동아줄로 무대 위로 끌어올려 공연하기도 했다. 서울 대학로의 첫 연출작은 ‘봄날은 간다’이다. 80석 소극장 공연인데 그때도 무대와 객석을 다 바꿨고, 동아연극상 작품상, 무대미술상을 받았다.”

▲ 도립극단 가객 박인환 콘셉트 스냅

-배우로도 활동했다. 무대에 대한 갈증이 없나.

“조명을 받는다고 비범한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일상의 일들을 얼마나 정성 들여 하나씩 푸느냐가 비범한 것이다. 연출이라는 배역을 맡아, 상투적이지 않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풀어가고 있다. 연기를 제일 잘하는 연출가가 될 수도 있다(웃음). 연기는 환갑될 때 2인극을 같이 하자고 약속한 사람이 있다. 누구인지는 아직 비밀이다.”

-연극계 입문 계기와 이후 활동은.

“20대 후반까지 회사생활을 했다. 파크랜드 해외담당이었다. 어느날 퇴근 무렵 15층 건물에서 (강남) 테헤란로를 내려다보는데 꽉 막힌 차들이 개미떼처럼 보였다. 그때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도 보였다. 차 바꾸고, 청약·적금 들고 그런 것들. 한 번 사는 삶, 그건 좀 아니다 싶어서 12월 31일 그만뒀다. 대학로 지나가다가 경력무관이라는 포스터를 보고 오디션을 봤다. 떨어졌지만 스크립터 자격으로 참여 기회를 얻으면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

연희단거리패에서 이윤택 연출가와 동고동락했다. 그의 오른팔로 불릴 정도로, 잠도 거의 포기하면서 연극 일을 한 것이 10년이 훌쩍 넘었다. 이후 독립해 극단(진일보)을 만들어 활동하던 중 사건(이윤택 연출가는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성추행 혐의로 실형을 받았다)이 있었다. 이 연출가와는 그때 딱 한번 통화하고 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연락한 적이 없다(통화에서 김 감독의 조언 혹은 제안을 이 연출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연희단거리패라는 단체와 극장 공간 등 많은 사람이 쌓아 온 결실이 한 순간에 사라진 것이 안타깝고, 아쉬운 부분이 많다.”

▲ 도립극단 가객 박인환 콘셉트 스냅

 

-연극 예술이 가야할 길은.

“어떤 형태로든 관객과 새롭게 만나고 싶다. 행복하게 대우 받는다는 느낌을 드리고 싶다. 넷플릭스 들어가면 콘텐츠 수만 개가 뜨는 시대다. TV는 화장실 다녀와서 다시 봐도 되고, 영화는 스크린을 통해 관객과 만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열심히 했으니까 일방적으로 봐달라는 것으로는 안된다. 몇 시간 들여서 공연장에 온만큼 ‘현장의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공연의 일부로서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 21세기 연극이 살아남는 방법이다.

지금은 모두가 스스로 디스플레이하는 세상이다. 도시 자체가 이야기, 극장 그 자체가 된다. 시민들은 더 이상 관객, 방관자로 만족하지 못한다. 연극 3요소 중 하나인 관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야 마땅하다. 연극은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예술이다. 굳이 방문을 열고 나와서 숨기고 살던 감정들을 마주하고,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게 되는 원초적이면서도 역동적인 장르다. 그걸 품으면서 관객을 만나보려 한다.”

-차기작 힌트를 주신다면

“가족 음악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주는 고양이’라는 작품이 있다. 76년 함부르크 기름 유출 사태 때의 이야기다. 고양이를 본인의 엄마로 알며 자라는 갈매기 이야기다. 태안 기름유출 사건 때 한 번 했었다. 환경파괴, 그리고 이종(異種)끼리의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 다른 종이지만 서로를 위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만들고 싶었다. 이 작품으로 ‘강원판 캣츠’를 만들고 싶다. 메시지는 충분히 좋으니 배우들의 움직임과 좋은 퀄리티의 노래를 통해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다.” 진행 및 정리/김여진·최우은

◇프로필= 홍익대 독어독문과, 전 게릴라극장장, 현 한국연극협회 사무총장, 극단 진일보 대표. 연출작 ‘봄날은 간다’, ‘맥베스 놀이’, ‘바보 햄릿’ 등 다수. 동아연극상 작품상, 대한민국 셰익스피어 어워즈 각색상 등

◇음악극 ‘가객 박인환’=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 관객 참여형 이머시브 공연이다. 관객을 실은 이동 객석 4개가 움직이는 박인환존을 비롯해 양계장존, 가객존 등으로 객석이 나뉜다. 함께 노래하는 싱어롱 넘버도 있다. 밴드 넥스트의 키보디스트 출신 강석훈 음악감독이 함께하고, 상임배우 단원이 총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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