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180] 내 아이와의 심리적 독립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4. 5. 13.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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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과거보다 확실히 다양한 고민 상담을 접한다. 예를 들어 연봉 협상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잘할지 묻는 일이 있었다. 협상은 그분이 고수라 할 얘기가 없어 경청했더니 스스로 답을 내고 갔다. ‘너무 작은 것에 얽매이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임해 보겠다’였는데 이후 그 나름대로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들었다.

한 아버지의 독특한 고민을 최근에 들었다. ‘비즈니스 영역에서 최선도 다하고 운도 따라 자기 나름대로 결실을 보았다. 그렇게 내 인생은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내 아이 운명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뜻대로 할 수 없다고 느껴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우선 삶에 대한 열정에 존중을 표했다. 그러고 사랑하는 자녀 운명을 내가 도울 수 없다는 불편함도 우리 한계를 인정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말씀드렸다.

마음에 대한 여러 이론이 있지만 기본 전제는 그게 무의식의 영향이든, 유전자의 영향이든, 관계 또는 환경의 영향이든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잘 안 된다’는 것이다. ‘흰 곰 효과’라는 것이 있다. ‘흰 곰을 생각하지 않도록 노력해 보자’는 이야기를 듣고 흰 곰 생각을 지우려 하면 흰 곰 생각이 오히려 더 든다. 특정 사고를 억제할 때 반동이 더 세게 나올 수 있다. 생각을 지우라는 지시가 그 생각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로 부정적 사고를 억제하는 훈련을 해왔다. 이미지로 그려 보자면, 힘이 강한 괴물과 줄다리기할 때 잡아당기는 것이다. 그런데 때론 그냥 놓는 것이 더 좋은 전략일 수 있다. 역설적 접근인데, 대표적으로 활용하는 문제가 불면이다. 어제 잠을 못 자서 오늘 보충하겠다고 일찍 누우면 잠을 자야 한다는 강박이 더 뇌를 각성시키고, 이 각성이 반복되면 만성 불면으로 갈 수 있다. 그래서 ‘수면 제한 요법’이라는 것이 있다. 우선 잠자리에 누울 시간과 일어날 시간을 일정하게 잡는다. 누워서 잠이 20분 정도 오지 않으면 일어나서 독서 등을 하며 다시 잠이 오려고 할 때 눕는 것이다. 이때 ‘오늘 꼭 잘 자야 하는데 어떡하지’ 하는 걱정보다는 ‘하루 정도 제대로 못 잔다고 내일 문제는 없어’ 하는 역설적 사고가 오히려 긴장도를 낮추어 수면 진입에 도움이 된다.

앞의 고민으로 돌아가 보자. 자녀에게는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일이 중요한데 부모도 마찬가지다. 물론 사랑하기에 완벽한 독립이란 어렵다. 아이와 심리적으로 독립하고자 과도하게 노력하는 부모도 있는데, 불가능하고 힘만 빠진다. 좋은 관계엔 ‘적정 거리’가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가까운 거리에서 응원하고 때론 안타까워해 주며 실질적 도움도 주는 ‘좋은 친구’의 위치가 적정 거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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