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미래 사피엔스] [55] 플라톤의 귀환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 2024. 5. 1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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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엔 손으로 글을 써야만 책을 복제할 수 있었다. 많은 시간과 돈이 드는 일이었다. 그로 인해 대부분 책은 출간 이후 사라져버려 소포클레스, 아이스킬로스, 아리스토파네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 중 우리가 여전히 읽을 수 있는 글은 5%도 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비극과 희극, 2편으로 출간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비극만 남아있다. 더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부분 책은 공식 버전이 아닌, 강의 준비자료와 학생들의 수강노트로만 보전되어 있다. 찬란했던 고대 그리스·로마 작가와 철학자들의 대부분 글은 영원히 사라져 버린 듯했다.

그런데 18세기 놀라운 사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헤라쿨라네움’의 발견이었다. 기원 후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폼페이와 함께 사라져버린 헤라쿨라네움은 고대 로마 재력가들의 별장들로 가득했다. 특히 그중 ‘종이의 별장’은 별장 도서관에서 발견된 1800권 넘는 종이책들로 유명하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화산의 폭발과 함께 책들이 시커먼 석탄덩어리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돌돌 말려 있는 종이를 여는 순간 한 줌의 잿더미가 되어버리는 책들. 그렇게도 읽고 싶었던 책들이 눈앞에 있었지만, 영원히 읽지 못한다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다행히 최근 획기적인 발전이 있었다. 만지기만 해도 잿더미가 돼버리던 책을 비침해식 최첨단 영상기기로 촬영하고, 얻은 데이터를 인공지능 기술로 분석한 결과 드디어 첫 단어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 자, 두 자, 그리고 빠르게 문장들이 읽히기 시작한다. 가장 최근에는 2000년 전 석탄덩어리가 돼버린 책에서 철학자 플라톤의 무덤 위치가 확인돼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책을 모두 판독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수십 년이 더 걸릴 거라고 예측한다. 오랜 시간이지만 적어도 영원히 사라졌다고 믿었던 고대 그리스·로마 작가들의 원작을 다시 읽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이제 생겼다. ‘종이 별장’의 책들이 모두 판독될 때까지라도 건강하게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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