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덕의우리건축톺아보기] 문화유산 복원 현장과 예술의 만남

2024. 5. 13.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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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편의·안전 위한 가설건물
한 차원 높은 디자인을 접목한
새로운 시도인 ‘아트펜스’ 도입
사업 의미·도심 미관 등 다 잡아

지난달 23일 덕수궁 선원전 터 일부가 공원으로 일반에 개방되었다. 그런데 공원으로 개방한 곳과 문화유산 복원 현장 사이의 공간을 구분하기 위해 도입한 아트펜스라는 새로운 시도가 눈길을 끈다.

이 지역에는 왕실 장례 때 왕과 왕비의 관을 안치하는 빈전, 장례 후 3년 동안 신위를 모시는 혼전, 역대 왕들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선원전이 있었으니 죽은 자를 위한 공간, 말하자면 조선 왕실의 신성 공간이었다. 선원전은 진전이라고도 했는데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임금이 친히 향을 피우고 절을 하는 분향 배례를, 탄신일에는 차를 올리는 다례를 행했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선원전에 대한 의례는 검소하고 간단하게 했는데, 이는 조상을 모시는 일이 행여 후대에 부담이 될까 염려한 숙종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영조도 선원전을 크게 지어 비용을 낭비하는 일을 삼가라고 후대 임금에게 당부했다. 역대 임금의 어진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선원전의 성격상 후대로 갈수록 어진이 많아져 건물이 커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영조실록을 보면, 영조는 이를 미리 예견하고 다음과 같은 말로 경계했다.

지난번 좌상이 나에게 어진을 그려 자손들이 우러러보게 하도록 권했는데, 사가(私家)의 경우에는 백 개의 화상이 있더라도 관리하는 것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마는, 제왕가의 사리와 체면은 그렇지 않아서 실로 후세에 큰 폐단이 된다. 내가 옛날 선대 임금님께 물려받은 어진이 있다. 우리나라는 조상이 하던 일이나 뜻을 이어가려고 하는 전통이 있으니 차차 계승하여 그리게 된다면 진전이 곧 또 하나의 종묘가 될 것이다. 나의 뜻은 황희가 반찬을 간소하게 한 뜻과 같다.

1919년 고종이 붕어하자 일제는 이 지역에 있던 모든 전각을 훼철한 후 그 자리에 일본인을 위한 경성제일공립여학교와 조선저축은행 간부 사택을 지었다. 조선 왕실의 신성 공간에 일본 여학생이 뛰어놀게 하고 은행 간부가 살도록 했으니 당시로서는 최대한의 모욕감을 조선인에게 안긴 셈이다. 현재는 ‘덕수궁 복원 정비 기본계획’에 따라 빈전인 흥덕전과 혼전인 흥복전 복원이 진행 중이고 선원전은 2030년대 초부터 복원이 예정되어 있다.

일반 공사와 마찬가지로 문화유산을 복원하거나 수리할 때 공사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가설 건물을 짓고 가설 펜스를 설치하게 되는데 언제인가부터 도시의 미관을 위해 이곳에 디자인 개념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실시된 광화문 복원에서는 가설 건물에 한 차원 높은 디자인 개념을 도입했다. 광화문 복원은 1960년대에 철근콘크리트로 지은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전통 목조로 새로운 건물을 짓는 일이라 철거와 복원 두 차례에 걸쳐 각각 다른 디자인을 적용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문화재청에서는 도심의 미관을 고려해 가설 건물의 정면 디자인을 설치미술가 강익중에게 맡겼다. 이에 작가는 철거 때에는 광화문의 창건과 복원연도를 바코드로 형상화한 작품을, 복원 때에는 민족의 염원을 담았다는 달항아리를 모자이크화한 작품을 각각 설치해 광화문 복원의 의미를 되새겼으니, 전에 없던 시도였다.

도심의 미관을 위해 문화유산을 이용한 첫 사례는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4년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남북적십자회담을 위해 1973년 서울 도심에서는 대규모 환경미화 사업이 펼쳐졌고 그중 하나가 숭례문 단청을 화려한 금단청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본래 숭례문 단청은 사치스러움을 경계하고 검소함을 숭상했던 유교 국가 조선의 철학에 따라 녹색과 청색이 주조를 이루는 단순한 문양이어서 전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주로 절집을 꾸미는 금단청은 서방극락 정토와 아미타불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비단같이 화려한 단청으로 붉은색과 노란색이 주도하고 문양이 섬세하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문화유산의 원형을 무시하는 것이지만 당시의 집권층은 전문가의 안목보다는 자신의 취향을 우선시했다.

광화문 복원 때처럼 가설 건물 디자인에 미술가가 참여하는 경우는 예외적이고 일반적으로는 발주청과 시공자가 협의해 기존의 사진이나 그림 이미지 중 적당한 것을 골라 실사 출력해 이용한다. 숭례문 복구 때에는 여러 사정으로 가설 건물을 디자인할 여력이 없었는데 2010년 11월 개막된 G20 세계정상회의 준비단에서 디자인을 요청해 왔다. 세계 정상이 다니는 도심에 숭례문 복구 현장을 뒤덮은 큰 볼륨의 가설 건물이 흉물스럽다는 것이었다. 이에 급하게 옛 숭례문 그림을 실사 출력해 붙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할 경우 그저 그렇고 그런 디자인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 인쇄된 것이 햇볕에 바래 이마저 흉하게 변하고 만다.

덕수궁 선원전 터 아트펜스는 문화유산 복원이나 수리에 예술가가 참여한 두 번째 사례가 된다. 아트펜스를 디자인한 사진작가 이명호는 나무 뒤에 흰 사각형 캔버스를 세워 사진을 찍음으로써 피사체를 캔버스에 떠내는 듯 자연에서 분리하는 작품으로 국내외 미술계의 호평을 받아 왔다. 이번에 이명호 작가는 선원전 터에 있는 회화나무 뒤에 거대한 캔버스를 세워 사진을 찍고 이와 함께 그동안 해왔던 다른 나무 작품으로 아트펜스를 디자인했다. 작가가 선택한 회화나무는 조선시대부터 그 자리에 있던 고목이라 선원전 터 역사의 현장을 증언하고 있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의미를 담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처럼 문화유산이 예술을 만나면 문화유산은 예술에 깊이를 더하고 예술은 문화유산에 활력을 불어넣는 상승 효과가 생긴다. 요즘 말로 윈윈이라고나 할까.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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