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아이들에게는 환대를

기자 2024. 5. 1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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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클래식 음악계의 화제는 단연 서울시립교향악단 그리고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이었다. 5월9일과 10일의 서울시향 정기공연에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협연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리허설까지 마쳤으나 인후통을 동반한 고열로 인해 부득이하게 공연 전날 출연 포기를 결정했다. 마침 주말에 잡힌 리사이틀을 위해 힐러리 한이 한국에 도착할 무렵이었고 급하게 협연자로 섭외가 되었다.

손열음도 팬이 많지만 대체 협연자 힐러리 한이 정상급 연주자라 많은 팬들이 티켓을 구하려고 격전을 치렀다. 공연을 만 하루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이런 일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협연자와 오케스트라는 원래 예정된 협연이었던 것처럼 빈틈없는 연주를 선사했다.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린 힐러리 한 그리고 이를 이루어 낸 서울시향 단원과 스태프들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내가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을 유독 기억하고 응원하는 데는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다. 2018년 12월에 공연을 위해 한국에 온 힐러리 한은 자청하여 소규모 홀에서 무료로 ‘베이비 콘서트’를 열었다. 출산을 앞둔 임신부 그리고 36개월 미만의 자녀를 동반한 부모를 대상으로 희망자를 공모하여 추첨했는데, 지원자가 많아 공연 횟수를 두 번으로 늘려야 했다.

의자 대신 유아용 매트를 깔아둔 작은 홀에 어린아이들과 그들의 부모 등 20여명이 모였다. 그런 무대에 전 세계의 팬들이 가장 많이 찾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를 시작했다. “저는 한국에 공연하러 온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큰딸 젤다는 세 살, 작은딸 나디아는 7개월인데, 아이들이 어려 음악회나 극장에 데려가지 못해 마음이 상했죠. 그래서 이 자리를 마련했으니 편히 들어주기 바랍니다. 아이들도 마음껏 떠들게 놔두시고요. 바흐의 곡인데 아주 오래된 작품이지만 여전히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고, 이쪽으로 가는가 싶다가도 저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이들과 비슷합니다.”

힐러리 한은 서울 공연 이전에도 필라델피아, 시애틀, 빈, 파리 등에서 엄마와 아기를 위한 콘서트를 개최한 적이 있다. 문화 생활을 즐기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엄마들이 낮 시간 아기를 데리고 참석하여 환영받는 분위기에서 편한 마음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서울의 베이비 콘서트는 TV 뉴스에도 보도되어 인터넷에서 공연 장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바로 자기들 앞에서 연주하는 줄은 상상도 못할 아이들이 떠들고 돌아다니는 모습,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연주되는 바흐의 선율은 내가 당사자가 아님에도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든다.

힐러리 한의 기획 의도 그리고 그 공연을 보며 느낄 수 있었던 핵심은 어린아이와 그들을 동반한 양육자에 대한 환대였다. 이른바 ‘노키즈존’이 영업의 자유에 속하냐, 정당한 차별이냐 아니냐 같은 복잡한 논의보다, 당사자들에게는 사실 이런 부분이 절실하게 다가올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어디서나 환대를 받아야 하는 존재이고 우리 삶의 현장에서 그들을 배제할 이유가 없다. 클래식 공연장의 경우 일정 연령 이하의 아이는 대부분 입장이 금지되지만, 힐러리 한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들을 환대하는 다른 방법을 실제로 보여 주었다.

아이들이 공연에 집중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방해가 될까 싶어 우려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배제하면 어른들의 천국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공연 중 울리는 휴대전화 벨소리나 카톡, 뭐가 그리 급한지 스마트폰을 살짝 꺼내 뭔가를 확인할 때 새어 나오는 불빛, 자제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내뱉는 헛기침, 조용하게 사라지듯이 끝나는 곡에서 굳이 0.1초의 여유도 없이 터져 나오는 눈치 없는 박수 소리, 모두 어른들이 벌이는 일이다.

우리는 타인에게 불편을 끼치는 어른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도, 아이들에게는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예의를 지키는 행동을 할 것을 요구한다. 때로는 그들의 미성숙함이 불편해 노키즈존과 같은 이름으로 그들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려고 한다.

하지만 굳이 이를 저출생 문제와 연관시키지 않고, 법과 제도의 문제로만 접근하지 말고, 아직 자라는 과정의 아이들을 환대하는 문화가 확산되었으면 한다. 솔직히 우리는 그 면에서 많이 부족하지 않은가. 힐러리 한이 열었던 환대의 공간은 수십명이 잠시 누렸을지 모르지만, 그런 환대를 다른 형태로 실천하고 곳곳에서 확산시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아이들과 그 양육자들을 배제하는 문화나 제도를 우리가 선택하고 고집할 이유는 없다.

유정훈 변호사

유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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