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막 던지는 감세정책…민주당, 정략 아닌 ‘정공법’ 택해야 [왜냐면]

한겨레 2024. 5. 1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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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셋째)이 지난 3월25일 경기도 하나로마트 성남점에서 물가 현장점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동 | 배재대 교수(조세법)

세법은 다른 법역과 달리 국가 재정 수입의 근간이고 경제 주체에 미치는 영향이 큰 까닭에 그간 정부가 입법을 주도해왔다. 그러나 4·10 총선 이후 세법 개정의 키는 더불어민주당이 쥐어야 할 형국이다. 정부와 여당의 조세 정책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까닭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정부·여당은 조세원칙을 뒤흔들거나 효과도 없는 무분별한 감세정책을 쏟아냈다. 그 결과 지난해 56조4000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세수결손을 기록했고, 당초 58조2000억원으로 예상했던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87조원으로 훨씬 커졌다. 91조6000억원으로 예상한 올해 적자도 지난해처럼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까닭에 통상 보수정권이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재정건전성을 오히려 야당이 걱정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나라 곳간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는 재정 운용에 태생적으로 보수적이다. 세수 감소를 유발하는 정책에는 신중한 까닭에 과거 청와대와 기재부가 때때로 충돌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때 증권거래세 폐지를 두고 금융위원회·청와대와 기재부가 대립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때는 관광 활성화 대책으로 나온 부가가치세 환급을 둘러싼 기재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갈등을 청와대가 개입해 기재부를 눌러 앉힌 사례도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기재부는 재정당국으로서의 디엔에이(DNA)를 말끔하게 지워버린 듯하다. 감세정책의 필요성에 대해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대지만, 역대 최대 세수 결손 앞에서 한낱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올해 들어서도 기재부의 태도 변화는 없는 듯하다.

가령 4·10 총선 때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물가 대책으로 설익은 부가가치세율 인하 공약을 내놓자,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자중시키지는 못할망정 “검토하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런 태도는 재정당국 수장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할 정도다. 최근 가격이 급등한 감귤, 사과, 배추 등과 같은 농수산물은 원래 부가세를 물리지 않는 면세 재화다. 부가세율을 내려봤자 가격이 내려갈 리 없다. 부가세 과세 대상이더라도 마찬가지다. 2022년 물가를 잡겠다고 김치, 된장 등 단순 가공 식료품에 붙는 부가세를 한시적으로 면제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지난 2월 누적 기준으로 세수진도율(이 15.8%로 지난해처럼 매우 부진한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그나마 그 정도 수치라도 나올 수 있었던 까닭은 부가세 때문이었다. 전년대비 소득세는 3000억원 감소, 법인세는 1000억원 소폭 증가했는데, 부가세는 3조7000억원이나 증가했다. 물가 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부가세율을 낮추자는 말은, 국가 재정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표를 얻기 위해 앞뒤 재지 않고 막 던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총선에서 의석 과반을 얻은 민주당의 책임은 그래서 막중하다. 정부·여당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더해 기업 밸류업을 앞세워 상속·증여세 개편, 법인세·배당소득세 완화 등 감세정책을 계속 추진할 태세다. 이런 세제 개편은 특히 개인 주식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사안이라 민주당으로서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재작년 금투세 시행 유보를 정략적으로 결정한 것처럼, 민주당은 골치 아픈 현안을 계속 미루고픈 유혹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원칙을 좇아 정공법을 구사해야 한다. 증시 저평가의 원인은 세금 때문이 아니라 낮은 주주 환원, 낙후한 기업지배구조 탓이다. 상법, 자본시장법을 위시한 법·제도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풀어야 한다. 근본 원인을 제대로 찾아 올바른 대책을 마련한다면, 금투세를 반대하던 개인투자자들이 거꾸로 강력한 지지 세력으로 돌아설 수 있다. 입법 권력을 쥔 민주당이 소극적으로 여론의 눈치만 보거나 정부·여당의 감세안을 대안 없이 반대만 한다면, 증시 저평가의 책임을 뒤집어써야 할 수도 있다. 정국의 주도권을 쥔 민주당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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