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햄릿' 배우 故 김동원 흉상, '제2의 고향' 국립극장에 섰다

이태훈 기자 2024. 5. 1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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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 남산 국립극장에 세워진 '영원한 햄릿' 배우 고 김동원 선생 흉상. /연합뉴스

“선생님이 여기 와 계시는 것 같아요. 저는 보여요.”

13일 서울 남산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로비에서 열린 ‘영원한 햄릿’ 배우 고(故) 김동원(1916~2006) 선생 흉상 제막식. 흰 천에 덮여 있던 선생의 흉상이 ‘햄릿’을 공연하던 생전 모습 그대로 드러나자, 사회를 맡은 배우 손숙이 말했다.

◇전쟁에도 꺾이지 않은 예술혼

고 김동원은 일제강점기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근현대 연극의 중심에서 활동한 배우. 신파극의 과장된 연기와 구별되는 사실주의 연기술을 개척, 리얼리즘이 한국 연극의 주류로 뿌리내리는데 결정적 공헌을 했다. 6·25 전쟁 중이던 1951년 대구에서도 꺾이지 않는 예술혼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햄릿 역을 열연해 전쟁에 지친 국민을 위로하며 ‘영원한 햄릿’이란 별명을 얻었다. 6·25전쟁 발발 19일 전 부민관(현 서울시의회)에서 공연한 연극 ‘뇌우’는 당시 40만명이던 서울 인구의 6분의 1인 7만5000명이 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로써 국립극장 로비에는 극작·연출가 유치진(1905~1974), 배우·연출가 이해랑(1916~1989), 연출가 이진순(1916~1984)과 함께 김동원 선생까지 네 명의 연극인 흉상이 자리잡았다. 생전의 이해랑과 김동원은 일본 유학 시절부터 극예술협회, 국립극단의 전신 격인 극단 신협(新協), 그리고 국립극단까지 함께 하며 한국 현대 연극을 이끈 평생의 동지이자 친구였다. 김동원 흉상제작위원회 위원장인 이방주 이해랑연극재단 이사장은 “국립극장은 우리나라 연극사가 살아 숨쉬는 곳인 것 같다. 오늘 김동원 선생이 참여하시게 돼 미리 와 계신 분들도 다 환영하실 것이고, 특히 선친께선 두 손 들어 반기실 것”이라고 했다.

◇유치진·이해랑과 국립극장에 나란히

13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연극배우 고 김동원 흉상 제막식. 왼쪽부터 박인건 국립중앙극장장, 이방주 이해랑연극재단 이사장,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흉상 조각가 임영선 가천대 교수, 장남 김덕환씨. /문화체육관광부

사회를 맡은 손숙은 추모사를 통해 “국립극단에 계시던 마지막 20년, 같은 아파트 앞뒤 동에 살던 제가 모시고 다녔다. 제 여든 평생 본 남자 중에 겉부터 속까지 젠틀맨의 표상, 최고의 신사셨다”고 고인을 추억했다. “작은 소품부터 분장과 의상까지 최선을 다해 무대에 섰던 완벽한 배우셨어요. 어느날 연세 드셔서 대사 외우기가 힘들다며 ‘나 이제 그만할 거야’ 하시기에 ‘왜요, 선생님’ 하며 차 안에서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곤 칼같이 은퇴하시고, 늘 후배들을 응원하기 위해 극장에 연극을 보러 오셨어요. 다시 선생님을 국립극장에 모시게 돼 가슴 벅차고 설레입니다.”

흉상 조각을 만든 임영선 가천대 미대 교수는 “조각 작업은 작은 흙덩어리부터 시작해 크게 마무리 된다. 인생과 닮은 꼴”이라며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고민도 우여곡절도 많았는데, 젊은 연극인들이 훌륭한 배우의 이미지를 통해 계속 기리고 기억하는 조각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동원 선생의 장남 김덕환씨는 가족을 대표해 “엊그제 돌아가신 것 같은데 벌서 18주기”라며 “1994년 3월 선친의 마지막 연극 ‘이성계의 부동산’을 공연했던 국립극장 로비에 흉상을 모시게 돼 영광스럽다. 선친께서도 기뻐하실 것”이라고 했다.

◇柳장관 “새 극장엔 꼭 선생 이름을”

13일 서울 남산 국립극장에서 열린 배우 고(故) 김동원 흉상 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연출가 손진책, 배우 박정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배우 손숙과 김성녀, 내달 개막하는 연극 '햄릿'에서 햄릿 역을 맡은 배우 강필석과 이승주. /문화체육관광부

박인건 국립극장장은 “선생은 1950년 국립극장 개관 기념작 ‘원술랑’의 주연으로 5만여 관객의 찬사를 받았고 1974년 국립극장 남산 이전 뒤 ‘남한산성’을 올릴 때도 인조 역을 맡으셨다”며 “선생의 은퇴 공연은 해오름극장, 대한민국 예술인장 영결식은 달오름극장에서 열렸다. 국립극장은 선생의 또 다른 고향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국립극단이 다시 남산 국립극장으로 돌아오면 새로 만들어질 여러 극장 중 하나엔 꼭 김동원 선생님 이름을 붙일 것”이라고 했다.

사회를 맡은 배우 손숙은 이날 “여기 햄릿을 공연한 전무송 배우, 유인촌 장관 다 와 계시다. 대를 이어갈 젊은 햄릿들도 있다”며 내달 9일 서울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햄릿’에서 햄릿 역할을 맡은 젊은 배우 강필석과 이승주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날 제막식 참석자들은 고인의 은퇴 공연 헌정곡 ‘이 몸 바람 되어’를 고인의 3남 가수 김세환의 목소리로 들었다. 또 가수 장사익은 손숙의 부탁으로 즉석에서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歸天)’에 가락을 붙인 노래를 불렀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고인은 ‘자명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세일즈맨의 죽음’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파우스트’ 등 3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극단 신협 대표, 국립극단 단장 등을 역임했고, 이해랑연극상 특별상(1994), 금관문화훈장(2006)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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