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법정] 법이 예술을 판단할 수 있나

2024. 5. 1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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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는 '그렇다'고 했다.

이로써 저작권법상 '창작성'에 대한 새로운 기준, 즉 예술성을 포함한 가치 판단을 배제한 '최소한의 창작성' 원칙이 마련됐고, 이는 전 세계 저작권법의 현대적 기준이 됐다.

무수한 명판결문들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예술 애호가이기도 했던 홈스 대법관은 법관들이 예술적 가치나 창작적 표현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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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저급하다 하는 예술도
창작성 가진 저작권 보호 대상
판사는 법률에만 숙련된 사람
예술의 가치 판단은 자제해야
게티이미지뱅크

'판사님, 이 예술은 상업적이고 너무 저급해서 법의 보호를 받을 가치가 없습니다!'

판사는 '그렇다'고 했다. 120년 전 미국의 한 법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최고의 인기 대중예술은 서커스였다. 한 서커스단의 광고 포스터를 다른 서커스단이 표절해서 사용하자 저작권 침해를 두고 법정 공방이 벌어졌다. 판사는 곡예 동작이나 자전거 묘기 장면 등이 묘사된 포스터는 상업용 광고물이고 낮은 수준의 표현에 불과하므로 저작권법 보호 대상의 요건인 '창작성'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이 판결은 연방대법원에서 뒤집혔다. 올리버 웬들 홈스 연방대법관은 판결문에서 서커스 광고물처럼 '상업적' 표현이나 '저급한' 예술조차도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로써 저작권법상 '창작성'에 대한 새로운 기준, 즉 예술성을 포함한 가치 판단을 배제한 '최소한의 창작성' 원칙이 마련됐고, 이는 전 세계 저작권법의 현대적 기준이 됐다. 현행 법률상 '창작성' 요건은 타인의 표현을 베끼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한 것이면 족하다.

무수한 명판결문들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예술 애호가이기도 했던 홈스 대법관은 법관들이 예술적 가치나 창작적 표현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했다.

"법관은 개별 행위나 그 결과 그리고 선호도에 대한 실질적 평가에 있어 사법자제를 해야 한다. 법률에만 숙련된 사람이 가장 좁고도 가장 명확한 경계를 벗어난, 예술의 가치에 대해 최종 판단을 내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사법자제의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사법심사는 대상이 되는 문제들에 대한 가치 판단이 다양하게 이뤄질 수 있고, 해석 기준이 되는 법 규범에는 불확정성이 존재한다. 사법자제의 원칙이란 '행정·입법부의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나 외교적 해결이 필요한 사안, 혹은 전문 분야로서 전문가의 의견이 우선시돼야 할 사안을 사법부가 판결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어떠한 사안은 법원이 개입하지 말고 그 전문 분야에서 자신들끼리 스스로 분쟁을 해결하는 게 옳다는 원칙이다.

홈스 대법관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선구적이었던 고야나 마네와 같은 예술가들을 예로 들며 "천재적인 예술가들의 새로운 시도와 새로운 '언어'를 대중이 이해하고 수용하기까지는 대중의 반발과 조롱을 사기 마련"이라면서 다수의 수용 또는 인정 여부를 기준으로 '예술'인지를 판가름한다면 "극단적인 경우에는 시대를 앞서간 천재의 예술에 대한 가치가 부정되거나 잘못 평가될 수 있다"고 했다. 고야의 에칭이나 마네의 회화가 처음 공개됐을 때 사람들은 이 작품들이 '예술'로서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대로 대중이 좋아한다는 것은 상업적 가치가 생긴다는 의미이고, 상업적 가치가 있다고 해서 미학적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는데 판사보다 덜 교육받거나 덜 '고급'스러운 안목이나 취향을 가진 대중이 예술적 가치를 인정한 창작물을 판사가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예술 사건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해서 예술을 사법 안에 가둘 수 없는 이유다.

[캐슬린 김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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