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인가? 으악!”···하루살이떼 습격에 문 닫는 가게들
지난 12일 서울 성수동 뚝도시장 앞 사거리. 해가 지고 어둑해지자 여느 때처럼 가로등이 켜졌다. 20대 남성 한무리가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남성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물체를 보고 놀라며 가리켰다. “헉, 저거 보여?” 흡사 함박눈이 내리는 듯 뭔가가 우수수 떨어지는 광경이 펼쳐졌다. 일행은 그가 가리킨 쪽을 바라봤다. 그들은 일제히 “으악”하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하늘에서 내린 주인공은 ‘동양하루살이’ 떼였다. 불빛을 찾아다니는 하루살이들의 주요 타깃은 발광다이오드(LED)등으로 밝힌 가게의 간판과 하얀 벽면이었다.
지난주부터 동양하루살이 떼가 도심지에 출몰하고 있다. 이날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만난 자영업자들은 동양하루살이 때문에 영업에 지장이 생겼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성수동의 한 음식점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신상철씨(24)는 “지난주 목요일과 금요일엔 통창으로 된 가게 입구에 하루살이 수천마리가 붙었다”고 말했다. 신씨는 “가게에 있던 사람들도 비위가 상해 다 나가고 사람들도 들어오지 않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신씨의 가게에는 테이블이 14개이다. 이날도 창에 동양하루살이가 붙기 시작하자 테이블을 꽉 채운 손님들이 하나둘씩 계산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이날 오후 6시30분 무렵 같은 동네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상미씨(45)는 가게 문을 닫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이씨는 “지난주부터 문을 열어놓으면 음식이고 메뉴판이고 전부 달라붙는다”며 “환기도 못 하고 문 손잡이에까지 다닥다닥 붙어 손님이 들어오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심각해지니 지방자치단체에 대응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성동구청은 지난 6일 동양하루살이가 처음 관측되자 7일부터 주민에게 안내문을 배포했다. 구청이 제시한 해결책은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고 조명 밝기를 줄여달라는 것이었다.
자영업자 A씨(30)는 “구청에서는 안내해준 대로 간판도 끄고 조명도 줄였다”면서 “하지만 워낙 동양하루살이가 함박눈처럼 많이 내려 소용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문 닫고 불을 끄니 사람들은 가게 문을 닫은 줄 알고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울상을 지었다.
A씨의 가게에서 300m정도 떨어진 한 가게에서 전기 파리채로 가게에 들어온 하루살이를 잡던 이모씨도 “분무기로 물을 뿌리라는데 수천 마리가 되는 애들에게 일일이 물을 뿌릴까요?”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기자와 대화를 마치자마자 가게 문을 닫고 불을 껐다.
성동구청은 지난 7일부터 방역기동반 두 개 팀을 동원해 동양하루살이 제거에 나섰다. 김진우 성동구 질병예방과 감염병관리팀장은 “동양하루살이는 한강이 근원지이지만 근원지에 대한 약재 방역을 하기 힘들다”며 “현재로선 물리적 제거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강변을 따라 상가가 많은 지역에 주로 출몰한다”며 “되도록 영업시간 뒤에는 꼭 LED간판 불을 꺼달라고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동구청은 곧 민간방역업체를 동원한 방역작업도 실시할 예정이다.
동양하루살이는 2급수 이상 강변에서 산다. 입이 퇴화해 물거나 감염병을 옮기지 않는다. 다만 한 마리가 보통 2000개에서 3000개의 알을 낳는다. 엄훈식 한국방역협회 선임연구원은 “한 번 나타나면 길을 걸을 때마다 발에 밟힐 정도로 많다”며 “도심에서 피해받는 자영업자나 주민을 생각하면 도심지에서 약재 방역도 고려할 법하다”고 말했다.
양영철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해충이나 매개체를 관리할 때는 근거지 방역이 중요한데, 현재 동양하루살이 출몰 근거지인 한강이 상수도 보호구역이고 범위도 넓어 현실적으로 방제 관리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불빛이 수컷을 유인하는데 현실적으로 도심지 불빛을 줄일 수는 없다”며 “에어커튼 등을 활용해 내부 출입을 막고 공기 흡입기 등을 활용해 물리적으로 제거하길 권한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최근 잦은 비로 수량이 많아지고 유속이 빨라져 남양주 등 한강 상류에 있던 유충이 자꾸 한강 하류로 떠내려와 피해 지역이 확대되고 있다”며 “근본적으로는 한강 등에서 유충의 천적인 토종 어류들이 사라진 것을 원인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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