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국경 넘어 ‘파죽지세’ 진군···우크라, 무기·병력 부족에 ‘속수무책’
서방 무기 지연 틈타 제2도시 하르키우 방면 진격
“1차 방어선도 없었다” 우크라군 내부 비판도
우크라이나 동북부에서 지상전을 시작한 러시아군이 진격 이틀 만에 9개 마을을 차례로 점령하는 등 파죽지세로 돌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서방의 무기 지원이 늦어지는 틈을 타 동북쪽 국경을 넘어온 러시아군에 속수무책 밀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국방부는 12일(현지시간) 동북부 하르키우주의 하티셰, 크라스네, 모로호베츠, 올니이코베 등 4개 마을을 추가로 해방시켰다고 밝혔다. 전날 마을 5곳을 장악한 데 이어 진격 속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우크라이나군은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도 “상황이 어렵다”고 인정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32㎞ 떨어진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우시는 현재까지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하르키우시 외곽에선 피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의 공격 이틀 만에 외곽 지역 주민 4500여명이 대피했다. 이날 63세 주민이 포격으로 사망하는 등 민간인 피해도 이어졌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이 국경 도시 보우찬스크와 하르키우시로 가는 길목인 립치 방면으로 진격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우찬스크는 이미 러시아군에 포위돼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우찬스크에서 하르키우시로 피란을 온 제니아 바스키우스카야는 “기관총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며 “러시아군이 곧 들이닥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이날 립치에서 탈출한 할리나 수리나는 “지난 3일간 러시아군은 거의 10분마다 포격을 가했다”며 “포격은 물론 전투기와 드론, 헬리콥터가 계속 날아다니는 중”이라고 전했다.
러시아군이 립치까지 점령하면 100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대도시 하르키우시를 포격 범위 안에 놓게 된다. 러시아군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에도 하르키우 외곽 마을과 외곽 순환도로를 점령해 그해 9월 퇴각할 때까지 하르키우시를 향해 포격과 미사일 공격을 퍼부었고, 수백여명이 사망했다.
빠른 속도로 진군하는 러시아군에 우크라이나군은 당황한 모양새다. 군 내부에선 국경 방어를 소홀히 한 데 대한 공개적인 비판까지 나왔다. 우크라이나군 정찰부대 사령관인 드니 야로슬라우스키는 “(국경에) 1차 방어선조차 없었고 지뢰밭도 없어 러시아군이 그냥 걸어 들어왔다”며 “이는 태만이거나 부패한 것이며, 단순 실패가 아니라 배신”이라고 자국군을 비판했다.
군사 전문가들도 우크라이나와 서방 정보당국 모두 러시아가 국경지대에서 3만여명에 달하는 병력을 보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제대로 된 방어 전략을 세우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의회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안 통과가 6개월 가까이 지연되며 우크라이나군이 수개월간 무기 부족에 시달려온 것 역시 열세의 원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전쟁 장기화로 우크라이나군은 심각한 병력 부족에 직면한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최근 죄수 징집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지난 2년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군대를 조롱해온 이유 중 하나였다. 러시아는 병력 동원을 위해 전국 교도소에서 사면을 대가로 죄수 수만명을 징집했고, 이들을 최전선에서 ‘총알받이’로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우크라이나 군사정보국의 바딤 스키비츠키 부국장은 “문제는 매우 간단하다. 우리에겐 무기가 없고, 4~5월이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란 점을 알고 있었다”고 이코노미스트에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서방에 무기 이송 속도를 높여 달라고 호소했다.
다만 일부 분석가들은 러시아의 이번 공세가 전쟁의 전체적인 방향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군의 일차적인 목표는 북부가 아닌 동부전선에서 승기를 잡는 데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전략국방연구소의 티보 푸이예 부소장은 “현재 전투는 러시아군이 큰 비용을 투입해 제한적인 성과를 거두는 ‘전술적 교착 상태’에 머물러 있다”며 “전반적인 전쟁엔 영향이 적을 것”이라고 NYT에 말했다.
오스트리아 군사 분석가인 프란츠 스테판 가디는 “러시아도 병력 부족이 우크라이나군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알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병력의 분산으로 (동부 지역) 최전선에서 돌파구를 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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