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 운동하는 사람들 옆에서 음악 없이 춤추는 ‘조용한 광란’ 정체는?
SNS에 이색 축제 입소문 타며 ‘북적’
이달 중 마포대교·잠수교 등서도 열어
지난 12일 해 질 녘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에는 ‘두 개의 리듬’이 조용히 공존했다. 하나는 운동복, 운동화에 볕가림모자(선캡)까지 갖추고 한강공원을 걷는 시민이 만드는 ‘발 박자’였다. 다른 하나는 헤드폰을 쓰고 두 팔을 든 채 뛰는 수백명의 들썩임이었다.
반포한강공원 달빛 무지개 분수 인근에서는 이날 오후 7시부터 올해 첫 ‘한강무소음DJ파티’가 열렸다. 이 파티는 한강공원을 산책하거나 분수를 보며 ‘물멍’을 즐기는 시민에게 소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대형 스피커 대신 각자 무선 헤드폰을 쓴다는 특징이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색 축제’로 입소문을 타면서 성별, 나이, 국적을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파티를 즐겼다.
파티장 주위를 지나는 시민들이 어떤 노래가 나오고 알 수 있는 기회는 ‘떼창’이 나올 때뿐이었다. 무대 위 작은 스피커를 통해서 나오는 음악 소리는 20여m만 떨어져도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헤드폰을 쓴 참가자들은 환호하며 뛰었다. 최애리씨(31)는 “사람들이 많은 실내였다면 덥고 습했을 텐데 날씨 좋은 날 야외에서 즐기니 더 시원하고 좋다”며 기자에게 “노을을 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운동복을 입고 산책을 나온 시민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자기들끼리 신났다”라거나 “아이디어 좋다”며 생소한 모습에 소감을 남기고 떠나거나, “음악이 궁금하다”며 참여자들에게 헤드폰을 잠시 넘겨받아 써보는 사람도 있었다. 차분한 노래를 많이 만드는 여성 듀오 ‘옥상달빛’의 노래를 이어폰으로 듣던 김윤영씨(46)는 “원래 이곳으로 오려던 게 아니었지만 홀린 듯 와서 지켜보는데 ‘조용한 광란’ 같고 재밌다”고 말했다. 파티를 흥미롭게 지켜보던 정후순씨(51)는 “파티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공간을 즐길 수 있어서 좋은 방식 같다”고 말했다.
선곡된 곡들은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곡들이 주를 이뤘다. 지난 3월 데뷔한 아일릿의 노래부터 이문세의 원곡을 빅뱅이 편곡한 ‘붉은 노을’, 1988 서울 올림픽 주제가였던 ‘손에 손잡고’, 동요 ‘예쁜 아기곰’까지 나왔다.
초등학교 1학년 딸, 배우자와 함께 파티를 즐기던 김지언씨(46)는 “성인들이 즐기는 문화는 아이들에게 잘 안 보이기도 하는데, 아이에게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반려견 단과 함께 온 홍진영씨(29)는 “음악 소리가 크지 않으니 개도 자고 싶으면 자고 놀고 싶으면 놀면서 같이 즐길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팔로워가 9만여명인 소셜미디어 계정에 한국 여행지를 소개하고 있는 러시아 출신 빅토리아(30)는 팔로워 10여명과 함께 파티를 찾았다. 빅토리아는 “언어가 안되면 심심하거나 외로울 때가 있는데, 이번에는 사람들과 함께 파티를 즐기려 한다”며 “한국에 사는 사람, 여행객을 모아서 모임을 한 달에 2~3번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반경 40~50m 정도까지는 무대에서 트는 음악이 헤드폰에서 흘러 나온다. 이 때문에 무대와 멀리 떨어져 독무를 즐기는 참가자도 있었다. 이 참가자 옆에서는 한 어린이가 피아노로 이루마의 <River Flows in You>를 연주했다. 박모씨(54)는 함께 온 친구와 함께 무대를 등지고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박씨는 “음악이 내 취향이 아니지만 분위기나 장소 섭외는 독특했다”면서 자신의 이어폰으로 해외 디제잉 음악을 듣고 있었다.
주최 측은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진행된 행사에 참여한 사람이 1000~1200명 정도라고 추산했다. 파티는 이달 중 마포대교, 잠수교, 뚝섬 등에서도 열린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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