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성한용 칼럼]

성한용 기자 2024. 5. 13. 15: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이 서둘러야 하는 것은 소통 강화가 아니라 야당과의 협치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래야 대통령 직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대통령과 국회, 여당과 야당,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대립이 격화하고 정국 파행이 상시화할 수 있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윤 대통령이 먼저 나서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성한용 정치부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직무 평가)이 바닥 수준이다. 국민의힘 지지도보다 훨씬 낮다. 왜 그럴까? 4·10 총선은 윤 대통령 때문에 국민의힘이 참패했다. 100% 윤 대통령 책임이다. 그런데도 자신은 선거 패배와 무관한 것처럼 처신한다. 그래서 지지율이 낮은 것이다.

윤 대통령은 새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을 소개하며 기자들 앞에 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회담했다. 1년9개월 만에 기자회견도 했다.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는 것 같다.

하지만 국민은 윤 대통령의 변화를 믿지 않는 눈치다. 야당의 선동에 넘어간 것일까? 눈이 나쁜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민심은 정치인의 본심을 꿰뚫어본다.

5월9일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지난 2년의 국정 성과를 소상히 설명했다. 남은 임기 3년 국정 목표를 세밀하게 제시했다.

“앞으로 3년의 국정 운영 계획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앞으로 3년,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더욱 세심하게 민생을 챙기겠다.”

“앞으로 3년, 국민의 삶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겠다.”

앞으로 3년을 유난히 강조한 이유가 뭘까? 총선에서 졌지만, 임기를 단축할 뜻이 전혀 없다는 속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 같다.

그런데 궁금하다. 지난 2년 동안 못했는데 앞으로 3년은 잘할 수 있을까? 압도적인 여소야대 환경에서 앞으로 3년 동안 국회와 야당의 협력을 도대체 어떻게 확보하겠다는 것일까?

“국회에도 당부 말씀을 드린다. 정쟁을 멈추고 민생을 위해 정부와 여야가 함께 일하라는 것이 민심이라고 생각한다.”

“정작 할 일을 뒤로 미뤄놓은 채 진영 간 갈등을 키우는 정치가 계속되면 나라의 미래도, 국민의 민생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또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위기다.”

이게 무슨 소린가? 국회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정쟁이라는 얘기다. 야당의 정부 여당 비판은 정치 공세라는 얘기다. ‘민생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대통령과 정부를 야당은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는 얘기다. 독재와 권위주의 시절 제왕적 대통령들이 내세우던 통치 논리다. 박정희 전두환식 반정치주의 어법이다. 윤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이 시대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착각인 것 같다.

경영 실패로 회사를 위기에 빠뜨린 기업체 사장이 홍보 부족을 탓해선 안 된다. 실패를 인정하고 경영 기조를 바꿔야 한다. 아니면 물러나야 한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이 서둘러야 하는 것은 소통 강화가 아니라 야당과의 협치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이다. 그래야 대통령 직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4·10 총선으로 표출된 민심은 대통령 권력을 독점하지 말고 국회와 나누라는 것이다. 정부 여당의 권력을 야당과 나누라는 것이다. 권력을 나누지 않고 국회와 야당의 협력을 끌어낼 방도는 없다. 야당의 선의와 애국심에만 호소하는 것은 협치가 아니다.

임기 단축 개헌도 추진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과감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국정 과제의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꼭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개혁 과제를 선별해서 집중해야 한다. 노동·교육·연금 개혁, 저출생대응기획부 신설 등이 그런 과제일 것이다. 물론 이마저도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동의해줘야 가능하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처한 냉혹한 정치적 환경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어차피 지금처럼 낮은 지지율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국회에서 채 상병 특검법이나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통과되면 대통령 임기를 제대로 마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그 전에 협치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시스템 마련에 실패하면 윤 대통령 자신은 물론이고 대한민국과 국민이 불행해진다.

윤 대통령이 국정 기조 전환을 거부하면서 야당도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다.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등원하기도 전에 대통령실 앞에서 채 상병 특검법 수용 집회를 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도 윤석열 대통령과의 투쟁에서 당내 폭주의 명분을 얻고 있다. 원내대표를 추대하고, 국회의장 후보자를 사전 조정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민주적인 모습이 아니다.

이대로 가면 대통령과 국회, 여당과 야당,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대립이 격화하고 정국 파행이 상시화할 수 있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윤 대통령이 먼저 나서야 한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