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 출격한 티니안 가보니, 푸른 파라다이스였다 [함영훈의 멋·맛·쉼]

2024. 5. 1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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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리아나제도 자연·문화·감동여행①
형언할수없는 티니안 10 스펙트럼 바다
블로우홀,출루비치,타가유적 볼거리 즐비
브로드웨이,월가,산호세..‘본토 처럼’ 구축
구사일생 징용자, 그 후손들의 당찬모습
전범들 응징한 원폭 출격지 다크투어리즘
환상적인 해양레저, 이제는 웃을 수 있다
타가비치
타가비치
티니안 출루비치

[헤럴드경제(미국령 티니안섬)=함영훈 기자] “서태평양 한 점의 섬, 티니안 타가비치의 바다색을 보지 않고선 아름다운 바다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이 기사 하단, 사이판,티니안,로타 북마리아나제도 자연·문화·감동여행기 글 싣는 순서]

미국령 북쪽 마리아나 제도에 있는 티니안섬 남서쪽 타가비치는 전설적인 파워맨이면서도 ‘딸 바보’인 타가왕의 소박한 궁터에서 2㎞ 가량 떨어져 있다.

바다의 색감이 청색과 청록색의 혼합색을 띈다고들 하지만 이곳의 바다는 ▷해안가 황색이 짙은 흐린연두 ▷연두 ▷동남아 청정 해역의 연청록 ▷지중해 느낌의 진청록 ▷녹색 ▷파랑 ▷군청 ▷늦가을 동해 바다 같은 코발트블루 ▷감색 ▷검푸른색 등 수 십가지 푸른 빛이 모래, 수중암초, 하늘빛 등과 어우러지며 기가 막힌 10단계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타가비치에서 다이빙하는 아이들
10단계 스펙트럼의 바다색 ‘타가비치’

해안 절벽 옆 라떼스톤으로 더 올라가면 아이들이 수직 다이빙, 회전 다이빙 등 온갖 묘기를 부리며 바다에 뛰어들어 여행객들의 갈채와 환호를 받는다.

이곳은 해안 절벽에 작은 백사장이 둘러싸여 있는 지형이기에 프라이빗한 휴식처로 안성맞춤이다. 매일 저녁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하기에도 좋은 해변이다.

한때 이곳 아이들 10명 중 서넛은 한국계였다. 강제징용으로 이곳에 끌려왔다가 차모로족 가정의 사위가 된 증조할아버지 또는 할아버지 덕분이다.

이들은 보통 차모로 엄마와 지내다 상급학교 진학 무렵 대부분 이곳을 떠나 미국 본토와 아시아·태평양 일대의 좋은 학교로 간다. 이어 졸업 후에도 이곳이 아닌 타지에서 자리를 잡다 보니 지금은 많아야 10명중 1명 정도가 한국계이다.

5월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마리아나 미식축제. 차모로족과는 다른 아이들 모습에서 조카를 대하는 마음이 확 와닿는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처럼 지독하게 매운 작은 매운고추 ‘도니살리’의 세계 최고 자연산 생산지인 티니안 핫페퍼(매운 고추) 축제가 열리거나, 북마리아나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인 이웃 사이판에서 큰 축제가 열리면, 원주민들이 무대 위에 올라 전통문화 공연을 벌인다. 여기에도 어김없이 한국계 아이들이 섞여있다. 북마리아나 제도에서 오래 전부터 터를 잡은 스페인, 미국, 중국, 일본계 혼혈은 드물기 때문이다.

성진호 티니안 한국문화원장은 “지금은 고향을 떠나 미주와 아태지역 어디에선가 활약하고 있는 티니안 아이들은 한국에 대해 좋은 소식이 전해질 때 함께 기뻐하면서, 자신이 한국계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징용공 1만여명 학살…아픔의 역사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티니안 역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고생 끝에 낙’인지, 티니안은 천혜의 아름다움과 해양 액티비티, 매운맛 미식과 함께 ‘다크투어리즘 인문학’을 겸비한 여행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태평양전쟁으로 티니안 등을 차지한 일제 전범의 대포
원폭저장소

일제가 2차대전에서 패망, 이곳에서 도주하면서 북마리아나 제도에 있던 한국인 징용공 1만 여명을 학살하거나 강제 자살시켰다. 많은 사탕수수 만큼이나 일제 군사기지가 많았던 이곳엔 사이판 보다 많은 한국인 징용자가 있었다. 당시 티니안에서 학살당한 한국인 노동자만 5000여명에 달한다고 전해진다. 그곳엔 현재 평화기원한국인위령비이 장승, 해치, 문인무인석, 비석받이 거북과 대형 비석 등이 세워져 있다.

당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한국인들은 특유의 성실성을 보이며 현지인들과 결혼해 이곳에 정착하게 된다. 두 개의 DNA를 가진 그 후손들은 강인하고 지혜로우며, 특히 딸은 태평양 지역에서 생활력 강하기로 소문이 났다. 얼굴도 못 본 ‘아버지의 어머니’를 닮아서였을 것이다.

전범들의 활주로, 탄약고, 관제실, 군사행정실이 흉물스럽지만 잘 보존돼 있다. 전범들을 몰아낸 결정적 순간, 원폭 탑재 및 이륙 장소도 티니안이다.

70대 할머니 가이드인 데보라씨는 “비슷한 크기의 하향 위력 폭탄 ‘호박탄’으로 연습을 하면서 비밀을 유지한 뒤, 상향 구름 모양으로 폭발하는 리틀보이와 팻맨을 투하했다”면서 “리틀보이와 팻맨이 보관돼 있던 곳엔 야자수 나무들이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열매가 열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전범들을 몰아냈던 미군이 처음 상륙한 북서쪽 출루비치(일명 랜딩비치)는 해안 근처까지 열대 나무들이 숲을 이뤄 숲과 해안 바위, 백사장, ‘티니안 청록’의 하모니를 한꺼번에 즐긴다.

바위 틈에는 당시 무기의 잔해가 남아있어 놀러왔던 여행객의 인증샷에 새로운 소품이 된다. ‘스타 샌드’라는 이름을 가진 별 모양 산호 모래로 유명하다.

평화기원한국인위령비
티니안에 가면 뉴욕 같은 타임스퀘어가 있다?!

미군은 티니안에 상륙해 이 마을을 뉴욕의 축소판이자 미국의 상징들을 모아둔 곳으로 만들려고 했다. 덕분에 티니안에는 센트럴파크, 타임스퀘어, 브로드웨이, 월가 등 뉴욕의 상징물 뿐만 아니라 서부의 산호세도 있다.

티니안에는 파도가 칠 때 마다 구멍으로 바닷물이 솟구치는 자연 분수 ‘블로우홀’이 역동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지각변동으로 육지가 조금 융기하면서 파도가 아래로 치면 위쪽의 바위구멍을 통해 바닷물이 하늘로 치솟는다.

티니안의 중심부를 남북으로 쭉 뻗은 직선으로 가르는 도로 ‘브로드웨이’는 이 섬의 속살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필수 드라이브 코스이다. 티니안 모양이 맨해튼을 닮아 도로 이름도 브로드웨이로 지었다.

브로드웨이
산호세성당 종탑

섬의 가장 큰 번화가인 산호세의 산호세성당 종탑은 스페인 통치 시대였던 17세기 말에 20m 높이로 세워졌다. 태평양 전쟁 당시의 포격으로 인해 일부분 파손됐지만, 탄흔들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원래는 우윳 빛깔 예배당과 종탑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성지였다고 전해진다.

산호세 마을 인근, 신비의 ‘하우스 오브 타가’는 원주민의 힘을 상징한다. 타가 족장은 높이 약 4m에 달하는 라테스톤 돌기둥을 맨손으로 세워 집을 지을 만큼 괴력을 자랑했다고 알려진다. 그런 그도 사랑하는 딸이 죽자, 반구형 바위 가운데 홈을 파 딸의 시신을 넣고 그 위해 초목을 덮은 다음 늘 안아주며 슬퍼했다고 한다.

이곳에 향후 미군 부대가 들어올 예정이라 요즘 티니안의 가치가 뛰어오르고 있다고 한다. 고향을 떠난 한국인 후손들의 귀향도 기대해 본다.

티니안 블로우홀

사이판에서 경비행기로 편도 15분이면 도착하는 티니안은 남북 길이 16㎞, 동서 폭 8㎞ 크기로, 공항 주변 산호세(San Jose)마을을 제외하고는 모두 인적 드문 청정 자연을 간직하고 있다. 스타 마리아나스 에어는 사이판에서 출발하는 티니안행 비행편을 매일 9편, 로타행은 매일 3편 운항한다.

또 하나의 보석 ‘로타섬’

로타는 사이판에서 117km 떨어진 섬으로 이곳 역시 여행객들로선 이름만 들어봤지 다소 생소하다. 송송 빌리지 전망대는 자연를 그대로 지키는 로타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최근 바다 색감으로 리모델링 했다.

전망대에 오르면 왼쪽으로 태평양, 오른쪽으로 필리핀해가 펼쳐진 가운데 웨딩케이크를 닮은 타이핑고트산(Mt. Taipingot)과 어우러진 송송 빌리지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송송 빌리지는 스페인 통치 시대에 차모로족이 세운 마을로, 귀여운 이름처럼 오밀조밀 정겨운 모습이다. 남북 길이 8㎞, 동서 14㎞ 크기의 섬 로타는 공항 인근의 송송 빌리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숨겨진 보석 같은 정글과 해변으로 가득하다.

로타섬 송송빌리지
로타섬 스위밍홀

태고의 모습을 마주하는 듯 놀랍도록 생생한 자연이다. 로타에서는 매년 9월에 정겨운 마을 잔치와 같은 ‘로타 코코넛 축제’가 열리며, 지난 1월에는 로타에서의 첫 마라톤 행사였던 ‘로타 마라톤’이 개최되기도 했다.

로타 북쪽 해안선에 숨어 있는 스위밍 홀은 말 그대로 자연이 만든 천연 수영장이다. 동그랗게 빚어진 암초의 구멍 속에 에메랄드빛 바닷물이 차올라 있다. 파도가 높지 않으면, 이 바다의 수간모옥 같은 곳에서 천국처럼 물 속 휴식을 즐긴다.

이제 태평양 여행자는 북마리아나제도 중 티니안, 로타로 눈을 돌릴 때가 됐다.〈계속〉

■사이판,티니안,로타 북마리아나제도 자연·문화·감동여행기 글 싣는 순서 ▶5월13일 ▷원폭 출격한 티니안 가보니, 푸른 파라다이스였다 ▶5월14일 ▷국제 먹방 대회 1위 한국인, 선명한 복근 과시 ▷숨은 보석섬 티니안, 열 빛깔 바다를 품었구나 ▶5월20일 ▷사이판서 등산,승마? BTS순례코스 까지, 즐길 것 늘었다 ▷타포차우산 등정하니 비로소 지구는 둥글다 ▷삼성부터 리틀야구까지 온국민 징용 희생자 추모에, 공군사관 생도들 “나라 꼭 지켜내겠다” ▶5월23일 ▷호기심 천국 티니안 한바퀴..“하루속히 배 띄워야” ▷“작은 고추가 맵다” 티니안 페퍼와 한국인 후손들 ▷티니안 동해에서 서해까지, 선샤인&다크 투어 가이드 ▶5월 27일 ▷여행 구색에서 없는 것 찾기 힘든 사이판 버라이어티 ▶6월 2일 ▷제2그로토, 로타홀을 아시나요? 사이판-티니안-로타의 액티비티 ▷마리아나 헤리티지여행, 태평양을 다 품었다..미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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