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고 믿는 것, 그게 진짜 멸종이야

한겨레 2024. 5. 1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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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의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17) 네스호의 괴물과 딱따구리의 비밀 사건 2
1934년 영국 일간지 < 데일리 메일 >에 실린 네시 사진. 위키미디어코먼스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80년 전 멸종된 흰부리딱따구리가 미국에서 발견됐다는 건 거짓말입니다. 나는 조직의 내부에 있는 사람입니다. 딱따구리는 ‘네스호의 괴물’과 연결돼 있어요. 혹세무민하는 거대한 사기극을 밝혀주십시오. 제보자 K” (☞16회에서 이어짐)

“영국 일기예보는 두 개밖에 없어. 비 혹은 흐리다가 비.”

영국 스코틀랜드의 네스호. 안개 낀 호수와 언덕에 추적추적 비가 내렸습니다.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의 홈스 반장과 왓슨 요원은 자동차를 타고 미끄러지듯 구불구불한 호숫가를 운전하고 있었죠.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한 손으로 습기를 머금은 창을 닦던 홈스 반장이 영국 날씨에 대해 투덜댔습니다.

“내일도 또 비가 온다니… 네스호의 괴물을 보기는 글렀군.”

“그럼, 맑은 날씨에는 네스호의 괴물이 보이나요?”

네스호의 괴물은 ‘네시’라고 불립니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7세기 기록에도 등장하지만, 대중의 머리에 각인된 건 1934년 런던의 한 외과의사가 찍은 한 장의 사진 때문이죠. 1980년대에 <소년중앙> 같은 잡지를 사 본 분들은 수룡처럼 생긴 이 괴물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잔잔한 호수에 둥근 파문을 일으키며 긴 고개를 내민 괴물, 네시.

“미국 루이지애나 숲의 딱따구리 둥지에 왜 네시 사진이 있었을까요? 분명 네시 사진과 관련 있는 사람이 놓고 간 것 같은데…”

“그 사람은 분명 이곳 네스호에도 다녀갔다는 소리인데. 여의도 면적 6배나 되는 이 호수에서 그 사람을 어떻게 찾는단 말이지. 근처에 박물관이 있다 하니, 거기나 가 봅시다.”

네시를 찾기 위한 여정들

‘네스호 센터’(The Loch Ness Centre)라고 불리는 박물관에는 네시에 대한 목격담과 네시를 찾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담긴 역사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1934년 수십 명이 호수 각지에 배치되어 감시했고, 1962년부터 1972년까지는 정치인과 탐험가 등이 ‘네스호 현상 조사국’(Loch Ness Phenomena Investigation Bureau)을 결성해 네시를 수색했죠. 1967~1968년에는 버밍엄대 연구팀이 수중음파탐지장치를 사용했습니다. 2003년에는 공영방송 BBC 등이 600개의 수중음파탐지장치를 사용해 조사에 나섰어요. 그 뒤에도 호수 물고기의 디엔에이(DNA)를 조사하고, 호수 밑바닥 지형을 매핑하고, 드론을 이용해 열화상 촬영도 했습니다. 결과는 매번 ‘확실한 증거 없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목격담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과학자의 도전도 계속됐어요. 2019년에 뉴질랜드 오타고대의 닐 젬멜(Neil Gemmell) 교수는 네스호에서 250개의 물 시료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현재까지 알려진 유전자와 전혀 다른 괴물의 유전자는 발견할 수 없었다고 했죠. 그는 그동안 제기됐던 거대 메기, 거대 철갑상어, 그린란드상어 등 거대 어류에 대한 가설도 배제했습니다. 이들 또한 관련 유전자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다만 아주 작은 가능성을 열어놓았습니다. 젬멜 교수는 말했어요.

“‘네스호에 거대 장어가 살지 모른다’는 아주 작은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믿는 네시가 거대한 장어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과학적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는 동안 네시는 문화적으로는 ‘미지의 괴수’에서 ‘귀여운 괴물’로 재탄생했습니다. 기념품 가게에는 초록색 네시 인형이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사람들은 과거처럼 네시의 실존을 묻는 진지한 질문보다 멍텅구리 탐험가들의 실패담을 더 즐기는 듯 했습니다. 왓슨이 홈스에게 물었습니다.

“네시가 정말로 있든 없든, 인생을 걸고 네시를 찾았던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면 어떨까요?”

“네시에 ‘미친 사람들’이긴 하잖나? 지금 상황에서 보면, 우스운 사람들이긴 하지만.”

박물관 바깥에 나오니, 아주 작은 노란 잠수정이 전시물로 서 있었습니다. 브로슈어를 열심히 읽은 왓슨이 아는 체를 했습니다.

“1960년대에 네시 탐사를 위해 만들어진 잠수정 ‘바이퍼피시’예요. 물론 아무것도 발견 못했지만…"

“그런데, 잠수함 밑에서 사람 소리 같은 게 들리지 않나?”

홈스 반장이 잠수정 쪽으로 귀를 가까이 댔습니다.

“한번 들어가볼까?”

영국 스코틀랜드의 네스호 방문자센터에 전시된 노란 잠수정 ‘바이퍼피시’. 남종영

둘이 울타리를 넘어 잠수정 안으로 들어가자, 아래에 바닥 문이 보였습니다. 문을 당기자 놀랍게도 계단이 나타났습니다. 계단을 내려가자 사람 소리는 더 커졌습니다. 작은 지하실에서 여남은 명이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홈스와 왓슨은 걸음을 멈추고,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엿들었습니다.

“이번 흰부리딱따구리 작전은 완전히 성공입니다.”

“미국 정부를 움직였습니다. 100년도 전에 로버트 윌슨 박사가 창립한 이래로 우리 비밀 조직이 만들어 낸 최대의 성과입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멸종된 지 80년 가까이 된 흰부리딱따구리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건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고 했습니다. 네시처럼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완급 조절을 잘해야…”

뭉툭한 둔기가 홈스와 왓슨을 내리쳤습니다. 둘은 정신을 잃었습니다.

비밀조직 ‘노란잠수함’의 비밀

“괜찮습니까? 무례를 범해 죄송합니다.”

홈스와 왓슨이 눈을 떠 보니, 백발노인이 앞에 있었습니다. 낯이 익었습니다. 박물관 전시물의 사진에서 자주 등장했던 사람으로, 거의 모든 네시 탐사 작업에 끼어있었죠. 백발 노인이 말을 이었습니다.

“우리는 비밀 조직 ‘노란 잠수함’입니다. 이미 멸종된 동물을 마치 멸종되지 않은 것처럼 소문을 퍼뜨리고 이미지를 확산하는 일을 하고 있소. 이럴 적 봤지요? 바로 전설적인 네시 사진을 찍었던 외과의사 로버트 윌슨이 노란 잠수함의 창립자요.”

“지금까지 네시의 가짜 목격담과 사진을 퍼뜨린 게 당신들이었군요?”

“윌슨은 ‘무엇이 없다’고 믿는 순간 희망이 사라진다고 생각했소. 신은 없다고, 산타클로스가 없다고, 사랑이란 호르몬의 작용일 뿐이라고 모든 사람이 믿으면 지구의 미래는 없오. 마찬가지로 동물 종 하나하나를 영원과 절대의 자리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윌슨은 생각했소.”

“네시 말고도 다른 동물에 대한 작업도 한 거군요?”

“히말라야의 설인 들어봤소? 아메리카의 빅풋은? 그런 것들은 노란 잠수함의 옛날 사업 방식이었지. 지금 우리는 진짜 멸종위기종과 이미 멸종된 종에 대한 여론 사업을 벌이고 있어요. 호주의 테즈매니아호랑이, 중국의 강돌고래 바이지 그리고 한국의 호랑이와 표범까지… 사람들이 소중한 동물을 잊지 않도록 목격담과 사진을 퍼뜨리는 것이지.”

“흰부리딱따구리도 마찬가지였군요?”

“미국 정부가 멸종을 선언하고 나섰지만, 얻은 건 없고 잃은 것만 많은, 바보 같은 짓이었오. 그래서 노란 잠수함이 나선 거요. 루이지애나 숲에 가서 가짜 새를 날리고 사진도 찍고 그랬어요. 우리가 실수록 우리의 정체를 드러낼 만한 물건들을 딱따구리 둥지에 두고 왔는데, 당신들이 그걸 가져가 버린 거지.”

그곳에 네시가 있었다

홈스 반장과 왓슨 요원은 노란 잠수함에서 나왔습니다. 왓슨은 네스호 센터 건물에들어가 아기공룡처럼 생긴 ‘네시’ 기념품을 구입했지요. 자동차를 타고 라디오를 켜니 비틀스의 ‘옐로 서브머린’ 노래가 나왔습니다.

내가 태어난 마을에는 바다를 항해하던 한 남자가 살았어. 잠수함이 전부였던 그는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지. 우리는 하늘 높이 돛을 펼치고 초록빛 바다가 보일 때까지 항해했어…우린 모두 노란 잠수함에 살거든. 노란 잠수함, 노란 잠수함에서.

며칠째 계속되던 비가 그치고 누런 햇살이 내리쬈습니다. 호수도 아스팔트도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왓슨이 놀라 외쳤습니다.

“저기 네시가 있어요!”

검푸른 호수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습니다. 거기에 네시가 있었습니다.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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