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중립과 ESG] 미션 임파서블: 22대 국회가 ‘했으면 하는, 해야 하는’ 일

이지웅 국립부경대 경제학과 교수 2024. 5. 1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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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많은 이가 이번 총선은 여느 때보다 극단으로 양극화됐고, 이를 봉합해야 할 정치인들은 이를 부채질했으며, 정책은 뒷전이었던 선거였음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당위와 무관하게, 투표 행위는 집이나 자동차 구매처럼 이것저것 따져보는 결정이라기보다는 콜로세움에서 환호하며 피 흘리는 검투사를 응원하는 행위에 차라리 가깝다. 그래서 그와 같은 아쉬움은 4년 전에도 있었고, 4년 후에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다음 국회에서 꼭 했으면(해야) 하는 일에 관한 것이다. 이런 종류의 글이 4년 전에도 있었고, 4년 후에도 있을 성싶다. 다만 기후변화와 에너지에 관심이 많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반드시 국회에서 합의를 도출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기록하고자 한다.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그러나 꼭 해내야 하는 미션이다.

1│사용 후 핵연료 처리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첫 번째 미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다. 1978년 첫 원전 가동 이후 원전 내 사용 후 핵연료는 꾸준히 늘어 이미 1만8600t에 달한다. 아직도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하는 별도의 장소가 없고, 발전소 내 연료 하치장에서 중성자 흡수재인 붕소를 탄 물에 담가 보관하고 있다. 그러니까, 수십 년 동안 실내 수영장같은 곳에 담가 놓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저장 장소도 2030년부터는 마땅치 않다. 2030년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한울원전(2031년), 고리원전(2032년), 월성원전(2037년), 신월성원전(2042년), 새울원전(2066년)순으로 저장 시설이 꽉 찰 예정이다. 원전 가동률이 더 높아지면 포화 시점은 앞당겨진다.

이지웅 국립부경대 경제학과 교수서울대 수학, 툴루즈경제대 석사, 마스트리히트대 경제학 박사, 전 한국은행 조사역, 전 에너지경제 연구원 부연구위원

정부의 원전에 대한 입장과 무관하게 지금까지 원전은 우리나라의 핵심 에너지원이었으며,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럴 것이다. 방사성 폐기물은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해 온 에너지에 대한 청구서이며, 이를 계속 모르는 체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다행히도 이미 발생한 사용 후 핵연료 관리 그리고 가동중 원전의 원활한 운용을 위해서는 영구 처분 시설이 불가피하다는 점에는 여야가 동의하고 있다. 다만, 향후 예상 발생량 범위를 ‘운영 허가 기간’으로 할 것인가, ‘설계 수명 기간’으로 할 것인가가 핵심 쟁점 사항으로 남아있다. 분명 차이는 있지만, 타협을 끌어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현 21대 국회 남은 한 달 동안 처리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만약 이번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한다면 다음 국회에서 꼭 처리되길 바란다.

2│독립적 전력 가격 결정 메커니즘 구축해야

두 번째 미션. 전력 가격 정상화다. 어느 나라든 필수재인 전력 가격을 온전히 시장에 맡겨두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 정도인데, 여당 정책위의장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공무원과 한전 임원을 야단치면서 개입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렇다고 정치인 개인을 힐난하기만은 어려운 것이 현행 전력 가격 결정 구조에서는 항상 선거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정치인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기 요금은 소위 ‘정책적’ 결정에 따라 원가보다 지속적으로 낮게 형성돼 왔고, 그 결과 한국전력의 막대한 적자를 초래했다. 현 야당도 이에 대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전력 가격을 결정하는 전기위원회가 있기는 하지만 심의 기구에 불과해 재무적 근거보다는 정책적, 정치적 판단에 따라 주로 결정된다. 지속적인 전력 가격 왜곡은 비효율적인 에너지 소비를 초래하고, 나아가 탄소 중립을 어렵게 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독립 권한을 갖춘 규제위원회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 왔으며, 사실 현 정부의 ‘새 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에서도 ‘전력 시장·요금 관련 전기위원회의 권한 강화 등 규제 거버넌스의 독립성 제고’를 명시한 바 있다. 그렇지만 관련 용역 연구가 늦어지는 등 지지부진한 상황으로, 현재는 추진 동력이 상실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국회가 주도적으로 전력 가격 정상화를 위한 제도적 해법을 찾아주기 바란다.

3│고령화 따른 전력 수요 증가 대비해야

세 번째 미션. 고령화에 따른 에너지, 특히 전력 수요 증가에 대한 대비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에너지·전력 정책은 고령화에 따른 소비 구조 변화를 명시적으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 일찍이 고령화를 경험한 일본 사례를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고령화는 1995년부터 2015년까지 가구의 에너지 소비를 12% 증가시켰다. 또한 중국 상하이 사례를 분석한 연구는 은퇴 후 가구 에너지 소비가 20~32%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고령화는 소비 패턴도 변화시킨다. 또 다른 연구는 고령화로 인해 일일 시간별 에너지 소비에서도 피크(peak)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 간 소비량 차이가 더 벌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러한 소비 수준 증가 그리고 소비 패턴 변화는 가뜩이나 골치 아픈 전력 수급 운영의 어려움을 가중한다.

고령화에 대한 정책적 논의는 저출생에만 집중되고 있고, 새로운 인구구조에 어떻게 예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은 탄소 중립뿐만 아니라, 고령화라는 새로운 도전에도 직면해 있다. 이제 에너지 정책은 탄소 중립과 고령화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며, 이러한 정책 방향 변화의 키는 국회가 쥐고 있다.

4│22대 국회 탄소 중립 전문가는 누구

세 가지 모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22대 국회에는 유능한 에너지·기후 분야 전문가들이 있다. 재선의 김주영(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소영(민주당), 초선의 김소희(국민의힘), 박지혜(민주당), 서왕진(조국혁신당) 등이 대표적이다. 21대 국회에서 이미 전국전력노조 위원장 출신 김주영, 민간 기후변화 싱크탱크 ‘기후솔루션’ 출신 이소영 의원은 각각 전기산업발전기본법, 탄소중립기본법 제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초선의 재단법인 ‘기후변화센터’ 출신 김소희, 또 다른 민간 싱크탱크 ‘플랜 1.5’ 출신 박지혜 그리고 서울연구원 원장 출신의 서왕진 당선인 모두 에너지·기후변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큼 전문성을 인정받는 이들이다.

이들 당선인의 철학은 서로 같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시급성 그리고 향후 10년이 저탄소 사회로 전환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당선인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정책의 우선순위는 다르겠지만, 필자가 이해하기에 그 차이는 21대 국회보다는 훨씬 작아 보인다. 자신의 전문성으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기회를 (다시) 활용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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