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 vs 민희진 집안싸움‘일파만파’] ‘배임’이냐, ‘배신’이냐… 분쟁 불씨 된 ‘멀티 레이블’

이선목 기자 2024. 5. 1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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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이브를 배신한 게 아니라 하이브가 날 배신했다. 빨아먹을 만큼 빨아먹고 찍어 누르기 위한 프레임이다.”

4월 25일 아이돌 그룹 뉴진스 소속사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격앙된 목소리로 폭로하며 내뱉은 말이다. 민 대표는 이날 무려 2시간이 넘는 기자회견에서 모회사 하이브가 제기한 ‘경영권 탈취 의혹’에 대해 강하게 반박하며 억울함을 주장했다.

국내 1위 기획사 하이브와 자회사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 간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 번지며 좀처럼 진화되지 않고 있다. 앞서 하이브는 4월 22일 민 대표와 어도어 경영진 일부가 어도어 경영권과 뉴진스 멤버를 탈취하려 했다며 감사에 착수했고, 4월 25일 오전 민 대표를 배임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하이브는 민 대표와 어도어 경영진이 카카오톡으로 나눈 대화 등을 경영권 탈취 증거로 제시했다.

민 대표는 이에 대해 “경영권 찬탈 계획도, 의도도, 실행한 적도 없다. 사담(私談)을 진지한 것으로 포장해 나를 매도한 의도가 궁금하다”고 맞섰다. 그는 “실적을 잘 내고 있는 계열사 사장인 나를 찍어내려는 하이브가 배임” “(일련의 사태가) 내 입장에서는 희대의 촌극 같다” 등 강경 발언을 이어갔고, 하이브 경영진과 소통 문제, 홍보 방식 차별 등 폭로를 쏟아냈다.

'배임 혐의' '주주 간 계약' 쟁점

하이브는 결국 4월 26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민 대표와 어도어 부대표 A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용산경찰서는 고발장 검토를 마친 뒤 정식 수사 방향을 정할 방침이다. 이제 쟁점은 하이브가 민 대표에게 제기한 ‘업무상 배임’ 혐의가 성립할지 여부다. 하이브 측 법률 대리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민 대표 측은 세종이 맡고 있다.

앞서 하이브 측은 △어도어가 외부 투자자에게 대외비 계약서, 뉴진스 멤버의 데뷔 전 사진과 건강 상황 등 사업상 비밀을 유출하며 부적절한 외부 컨설팅을 받았고 △하이브가 자회사들에 부당한 요구를 한다는 여론전을 계획했으며 △어도어에 우호적인 투자자에게 하이브가 보유한 어도어 지분 매각을 유도하려 했다는 제보 등에 대한 감사를 집중적으로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민 대표에 대해 배임에 따른 처벌 가능성을 작게 보고 있다. 형법상 배임은 실제 행위가 없는 공모 단계, 즉 예비행위만으로는 처벌이 어렵다. 실제 행위나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배임이 성립되긴 어렵다는 것이다. 민 대표 기자회견 당시 동석한 이숙미 세종 변호사는 “(하이브가 문제 삼은 대화록에) 회사 가치를 훼손시키는 행위가 없을뿐더러, 애초 배임은 예비죄가 없어 모의만으로 성립될 수도 없다”고 했다.

또 하나의 쟁점은 ‘주주 간 계약’ 건이다. 사실 경영 지분 관계가 없었다면, 하이브가 인사를 통해 민 대표에 대한 해임 수순을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하이브는 지난해 3월 어도어 지분 20%를 약 35억원에 민 대표 측에 양도하는 주주 간 계약을 체결했다. 민 대표가 2% 지분을 어도어 직원들에게 배분하면서 지분이 18%로 줄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민 대표가 어도어 지분 처분과 관련한 주주 간 계약 개정을 요구하며 갈등이 시작됐다. 민 대표는 자신이 보유한 지분 13.5%에 대해 정해진 가격에 팔 권리(풋옵션)를 갖고 있었는데, 이때 어도어 기업 가치 책정 기준을 상향(영업이익의 13배→30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요청이 받아들여지면 1000억원 수준이던 민 대표의 지분 가치는 2700억원 수준으로 불어나게 된다. 민 대표는 올해 말부터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 대표 측은 이와 함께 남은 4.5% 지분을 제삼자에게 매각할 때 반드시 하이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 수정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은 어도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경쟁사로 이직하거나 창업할 수 없는 ‘경업(競業) 금지’ 조항도 맺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민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올무(올가미)에 걸려 있다” “노예 계약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민 대표 측이 경업 금지 약정을 무효로 하는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사진 뉴스1

하이브는 어도어 감사에 착수한 4월 22일 어도어 이사진을 대상으로 임시 주주총회(주총) 소집도 요구했다. 민 대표 해임안과 이사진 교체 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어도어 측은 ‘30일로 요청한 이사회 소집을 하지 않겠다’며 불응했고, 하이브는 4월 25일 법원에 임시 주총 소집 허가를 신청했다. 서울서부지법은 4월 30일 민 대표 해임을 위한 하이브의 임시 주총 허가 심문 기일을 열었다. 비송사건절차법에 따라 심문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법정에 출석한 어도어 측 이원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5월 10일까지는 이사회가 열리고 5월 말까지는 주총이 열릴 것” 이라고 했고, 하이브는 어도어 측이 밝힌 이사회와 주총 일정에 대해 “상대방 측이 밝힌 일정대로 신청인(하이브)이 청구한 안건이 처리되길 기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이브 급성장 발판 '멀티 레이블' 독 됐나.

이번 사태로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label· 음반사)’ 체제 한계가 드러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2005년 설립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방탄소년단(BTS) 성공 이후 멀티 레이블 체제를 추진했다. 멀티 레이블은 자회사 격인 각 레이블이 음악 등 콘텐츠 제작을 맡고, 홍보나 법무 등 기능은 모회사 하이브가 담당하는 구조다. 이를 통해 일부 아티스트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추고, 인프라 공유 등을 통해 비용 절감을 꾀할 수 있다. 현재까지 하이브가 인수하거나 편입한 국내외 레이블은 빌리프랩·쏘스뮤직·플레디스·KOZ 엔터테인먼트·어도어· 이타카홀딩스 등 11개에 달한다.

하이브는 멀티 레이블 체제 아래 성장세를 거듭했다. 2021년 매출 1조2577억원, 2022년 1조7780억원, 2023년 2조1781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하이브의 자산 규모는 5조5235억원으로 5조원을 넘어서며 엔터 업계 최초로 대기업집단 지정을 목전에 뒀다.

특히 민 대표의 어도어는 하이브 산하 가장 경쟁력 있는 레이블로 꼽힌다. 2021년 하이브가 자본금 161억원을 출자해 만든 어도어는 지난해 매출액 1102억원, 영업이익 335억원, 당기순이익 265억원을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하이브가 멀티 레이블 체제의 내실을 다지지 못한 것이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몸집이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갈등의 불씨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 아래서는 하이브의 경영 의견 전달을 레이블 측이 경영 간섭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레이블 간 경쟁이 과열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실제로 민 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내용과 하이브 공식 입장 등에 따르면 양측은 그간 신인 데뷔 순서와 홍보 방식 등을 갖고 갈등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3월 25일 데뷔한 하이브 신인 걸그룹 ‘아일릿’의 ‘뉴진스 제치기’ 논란이 대표적이다. 아일릿은 방 의장이 직접 프로듀싱을 맡아 데뷔시킨 그룹으로 주목받았지만 헤어, 메이크업, 안무, 뮤직비디오 등이 뉴진스 콘셉트와 지나치게 비슷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민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방)시혁님이 손을 떼야 한다”며 “의장이 주도하면 알아서 기는 사람이 생겨난다.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으려면 최고 결정권자가 그냥 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율적으로 경쟁하고 서로 건강하게 큰다”고 말했다. 하이브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경영 체제 개선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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