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결혼 감소하니 ‘저출생’…경쟁사회의 결혼·출산 페널티 바꿔야”

류이근 기자 2024. 5. 1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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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대응기획부’ 꺼낸 윤 정부
인구 경제학자 이철희 교수 인터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가칭 ’저출생대응기획부’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금 51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반세기 뒤 3600만 명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수치는 충격적이다. 이마저 낙관적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이미 인구는 빠르게 줄고 있다.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는 나라의 피할 수 없는 묵시록처럼 들린다. 손 놓고 있다면 더 나쁜 상황을 맞게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미래를 바꿔낼 수도 있다.

지난 9일 윤석열 정부는 가칭 ‘저출생대응기획부’를 신설해 국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인구 구조의 변화는 이제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지난달 29일 국내 최고 인구 경제학자인 이철희 서울대 교수를 만나 해법을 들어봤다. 그는 저출생 대책을 넘어서 미래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도록 “전반적 노동 조건이 개선되고 경쟁 압력이 줄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여성에게 결혼과 출산 페널티(불이익)가 큰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실증적 근거를 중시했고 단정적으로 표현하는 걸 경계했다.

-인구 급증을 걱정하던 나라가 어느덧 정반대 공포에 휩싸이게 됐다?

“인구 현상은 사회 변화를 반영한다. 다른 나라는 산업화하는 데 100~150년 걸렸다. 인구 변화도 그렇다. 아이를 많이 낳고 사람도 많이 죽는 사회에서 그렇지 않은 사회로 바뀌는 기간이 선진국은 100년 걸렸다. 한국은 25년 내다. 1960년에 평균 아이 수(합계출산율 기준)가 6명이었는데 1983년 지나면서 2명 아래로 떨어진다.

선진국도 인구가 쭉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떨어지는데 증감의 패턴은 완만하다. 한국은 압축적으로 성장했다가 금방 꺾이고 덩달아 사회도 빠르게 바뀌다 보니까 인구가 더 뾰족하게 올라갔다 확 떨어지는 패턴이 나타났다.”

현재 인구가 2072년이 되면 3600만명 수준(중위 추계)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통계청

-초저출생 현상을 어느 지점에서 가장 우려하는가?

“출생아 수가 빠르게 감소한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는 10년 전의 절반 정도다. 30년 전의 3분의 1이다. ‘출생 코호트’(특정해 출생한 집단) 크기 간 불균형이 심해져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해 아이가 몇 명인지에 따라서 산부인과나 소아청소년과 의사, 보육시설 직원, 학교 선생님, 대학 교원이 대충 맞춰져 있는데, 갑자기 아이가 절반으로 줄면 그 불균형으로 인한 피해가 상당히 크다.

아이 수가 줄면 키우는 데 필요한 소아청소년과라든가 보육시설이라든가 이런 게 붕괴한다. 최소한의 수요가 충족되지 않으면 보육 시설이나 병원도 문을 닫는다. 그렇게 되면 아이를 더 낳지 않게 된다. 인프라 붕괴를 가속한다. 말하자면 출생아 수 감소와 인프라 붕괴 간 악순환이 시작된다.”

-그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공공성 확충밖에 없다. 출생아가 급감하는 지역에 태어난 아이들도 잘 길러내야 하는데 인프라가 붕괴하면 그러기 어렵다. 또 보육이 무너지면 여성이 일할 수 없는 등 여러 ‘부정적인 외부 효과’(제삼자에게 의도치 않은 부정적 영향)가 많아진다. 이런 ‘시장실패’(시장에서 효율적 자원배분이 이뤄지지 않음)가 있는 경우 그걸 보정하기 위해서 정부가 개입해 공공성을 높이는 게 바람직하다.”

-저출생으로 인한 세대 간 정치 불균형 문제도 지적하셨는데?

“젊은 사람이 줄고, 젊은 사람 중에서 결혼한 사람은 더 줄고, 결혼한 사람 중에서도 아이를 가진 사람이 더 준다. 소수화가 진행되는 거다. 그러면 정치적 목소리도 따라 준다. 그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힘은 점점 떨어질 것이다. 아이를 낳기 더 어려운 환경이 될 가능성이 있다.”

연간 출생아 수가 급감하면서 20만명 선마저 위협받고 있다. 통계청

-초저출생의 가장 큰 원인은?

“복합적 요인이 상호작용하며 나타난 현상이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라고 말할 뚜렷한 실질적인 근거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경제학적으로 봤을 때 여러 층위가 있다. 우선 자녀를 키우는 금전적인 비용이나, 기회비용이 상승했다. 자녀를 기를 수 있는 경제적 여건도 나빠졌다. 소득이나 소득 안정성의 감소, 미래에 대한 전망도 나빠졌다.

가장 근본적인 층위를 본다면 아이에 대한 선호가 줄어든 것 같다.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여러 조사를 보면 ’아이가 필요 없다’는 응답이 늘었다.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가정이 많아졌다. 계층별로 차이는 있지만 모든 집단과 지역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이런 걸 봤을 때 자녀에 대한 선호가 사회 전체적으로 줄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 사회보험을 통해서 결혼의 편익이나 필요성, 자녀의 노후 수단으로서의 매력과 가치가 떨어졌다는 장기적인 요인도 있다. 하지만 근저에 깔린 가장 중요한 변화는 불평등 확대와 경쟁의 심화다.

불평등이 심해지면 경쟁이 커진다. 경쟁에서 패하면 소득 수준과 사회적인 지위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노동시장에서 경쟁이 심해지는 게 교육의 경쟁으로 이어지고, 교육에서 경쟁이 심해지면 교육비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결국은 결혼이나 아이를 낳는 게 큰 핸디캡(걸림돌)이 된다.

여성들이 과거처럼 ’일만 할 수 있으면 괜찮다’가 아니고 일에서 만족을 찾고, 성공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런데 과도한 경쟁을 하는 구조에서는 아이를 갖게 되면 큰 핸디캡이 생기고, 기회비용을 높이는 쪽으로 작용한다.”

-출생아 수 감소의 가장 큰 요인이 결혼 감소 탓인가?

“전반적으로 결혼의 편익은 줄고 비용은 높아졌다. (전통적인) 남성과 여성의 역할 차이가 줄어 분업의 이점이 많이 줄었다. 여성도 일을 하고, 사회 보험도 있기 때문에 (혼자 살 때 처할) 위험을 줄이기 위한 결혼이 줄었다. 서구의 경우 소비 편익을 누리기 위해 동거를 많이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혼자 사는 가구가 늘었고 사는 데 비용도 줄었다.”

지난달 29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인터뷰중인 이철희 교수. 이 교수는 국내 최고의 인구 경제 전문가다. 김정효 기자

그는 지난 30년 출생아 수 감소 원인의 85%가 결혼이 줄어든 탓으로 분석했다. 25~39살 여성 중 결혼한 비율은 같은 기간 87%에서 43%로 무려 44%포인트 급락했다.

“결혼의 유보 수준도 높아졌다. 결혼의 만족도나 편익이 어느 수준 이상이어야 결혼을 결심하는데 과거에는 이게 굉장히 낮았다. 이제는 여성들이 과거보다 인적 자원도 높아졌고, 독립해서 일할 수 있는 여력도 커졌다. 문화적인 압력도 없어졌기 때문에 굳이 결혼할 이유가 없는 거다.

다른 한편으로 결혼의 질이 올라갔는지는 의문이다. 가사노동 분담 비율이 거의 안 바뀌고 있다. 결혼 뒤 여성이 일하더라도 여전히 가사노동의 80% 이상을 맡는다.

또 여성이 일하면 결혼 또는 아이로 인한 노동시장에서의 불이익도 크다. ’결혼 패널티’가 있다. 결혼한 시점 이후 임금이 30%가량 떨어진다는 연구도 있다. 그런 불이익 때문에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과 행복한 결혼을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면 굳이 결혼하지 않는다.

결국, 직장에서 여성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결혼과 출산의 불리함이 출산율 하락에 영향을 줬다고 본다.”

지난 30년 출산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혼인 감소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가사노동의 80%는 여성의 몫이다. 통계청

-혼인 감소에 정책적으로 대응한다는 게 쉽지 않을 거 같다.

“지난 30년간 데이터를 보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결정은 시기에 따라 변하고, 정책에 의해서 영향을 꽤 받았다. 하지만 결혼은 그렇지 않다. 30년 내내 줄곧 모든 계층에서 줄고 있다. 반등한 적이 거의 없다.

정책적으로 변화시키기 굉장히 어려운 요인이지만 결혼할 의사가 있는데도 어렵게 만드는 여건을 중장기적으로 개선하는 노력은 가능하다. 양성평등이 가정과 직장에서 강력하게 실현되어야 여성이 결혼해도 손해를 안 본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만 가지고는 모자란다. 전반적 노동 조건이 개선되고 경쟁 압력이 줄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정이 핸디캡으로 작용한다는 인식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또 결혼하거나 아이를 갖게 됐을 때 매우 큰 게 주거 비용인데 워낙 많이 올랐다. 집값이 좀 내려간다 하더라도 이미 너무 높은 수준이다.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주거할 수 있는 그런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금 공공임대 주택이 다른 국가에 비해 공급도 적지만 질도 높지 않다.”

-결혼 감소가 출산율 하락의 큰 원인이라면 출산과 양육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은 큰 의미가 없는 건가?

“우리나라처럼 결혼해야 아이 낳는 나라에서 출산율이나 출생아 수는 얼마나 결혼을 하느냐와 결혼한 분들이 얼마나 자녀를 낳느냐(유배우자 출산율)에 따라 결정된다. 유배우자 출산율이 지난 30년 동안 많이 떨어지지 않아 전체 출산율 하락의 주요 원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만약 떨어졌다면 전체 출산율은 더 많이 떨어졌을 것이다. 사실 유배우자 출산율은 지난 10여 년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그 기간 출생아 감소를 분해해 보면 전체 출산율 하락의 40% 정도가 유배우자 출산율이 떨어져서 나타난 현상이다.”

-저출생 대책이 효과가 없는 거 아니냐는 비판이 많은데.

“저출산 대책이 완전히 실패했기 때문에 필요 없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출산율 하락은 완전히 정책 변수만은 아니다. 여러 영향을 받는다. 저출산 대책이 없었으면 출산율은 더 많이 떨어졌을 것이라는 추측이 합리적이다.

또 수백조 원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가족과 출산 지원에 직접 들어간 액수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많지도 않다.

출산율을 소득분위별로 보면 모든 계층에서 떨어졌지만, 중상층(상대적으로 출산율 높음)과 최하층 간 차이가 매우 크다. 정책 효과를 봐도 그렇다. 현금을 주거나, 보육을 지원하는 효과는 극히 일부 중상층에서만 나타난다. 하위 60%에서는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람들의 선택을 바꿀 만큼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은 여성들에게 결혼 및 출산 페널티가 여전히 큰 나라다. OECD에서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로 여성의 임금은 남성보다 30% 정도 적다다. OECD

-출산율을 끌어올릴 게 아니라 적응해 나가자는 주장은 어떻게 보나?

“내년 우리나라 출산율이 1.58(2023년 기준 0.72)로 OECD 평균이 되는 경우와 2.1까지 높아졌을 때 미래가 어떻게 될지 시뮬레이션 해봤다. 그렇게 해도 생산 연령 인구는 15년 동안 지금처럼 똑같이 떨어지고, 그 이후에도 반등하지 않는다. 아무리 획기적으로 출산율이 오른다 하더라도 인구가 줄고 고령화되는 변화 자체를 되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출산율 문제를 포기하자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미래는 확정되어 있지 않다. 지금 아무것도 안 하면 통계청의 중위 추계(2072년 3622만명, 현재 5175만명)보다 더 가파르게 인구가 줄 수 있다.

미래 사회에 대응하는 것과 지금 저출산에 대응하는 것이 상당 부분 겹친다. 보완적이다. 예를 들어서 미래 사회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경제 활동 참가율과 생산성을 높여서 인구가 줄더라도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결국 아동에 더 투자를 하고 일 가정 양립을 해서 노동시장 여건을 개선해 더 많은 여성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저출산 대응 정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고령인구 비중이 높아지면서 곧 초고령사회로 접어들고 2072년쯤 노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에 이를 전망이다. 통계청

-인구가 감소하더라도 혁신을 통해서 생산성을 끌어올리면 되지 않나?

“저출산 정책은 미래 인력을 키워내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인구 변화는 다차원적이다. 인력의 문제라고만 한다면 로봇이나 기계 등 시스템을 만들어서 보완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시스템이나 로봇은 소비할 수 없고 세금도 낼 수 없다. 노동시장에서 생산성이나 인력 부족 문제로 치환해서 대응하는 것은 단편적이다.”

그는 노동시장의 역동성, 혁신, 창의성이 젊은 인력에 달린 경우가 많다면서 출생아 수 감소가 노동시장 신규 유입 인력의 감소와 맞물려 나타날 부작용을 우려했다.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의 확보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건?

“노동 시장과 주거 문제가 핵심적인 키라고 생각한다. 두 개가 얽혀 있다. 또 전략적으로 어느 하나를 건드리면 다른 여러 가지 요인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걸 잡아 집중적으로 정책을 펴는 게 좋다. 그중 하나가 여성의 노동시장 이슈다. 그게 완화된다면 여러 면에서 좋다. 첫 번째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어난다. 특히 고급 인력의 경제활동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어 인구 변화에 대응하는 관점에서 큰 도움이 된다. 두 번째는 결혼과 출산을 제고하는 데도 보탬이 된다. 세 번째는 창의적인 아이를 길러내 생산성을 높이는, 말하자면 미래 대응의 측면에서 좋다.”

이철희 서울대 교수가 지난달 29일 ’한겨레’와 인터뷰하는 모습. 김정효 기자

-끝으로 덧붙일 말씀은?

“긴 시각과 호흡으로 일관성 있게 정책을 추진하는 게 중요하다. 저출산 정책은 다른 것과 달리 사람의 마음을 얻는 정책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건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절대로 될 수 없는 일이다. 마음이 바뀐다는 건 결국 젊은 세대의 기대나 전망을 바꾸는 일이다.”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ryuyigeun@hani.co.kr, 김효진 보조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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