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색에 거부감 없다면 시간순삭 보증하는 대작 , '쇼군'

아이즈 ize 정명화(칼럼니스트) 2024. 5. 1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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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정명화(칼럼니스트)

사진=디즈니+

에도 막부가 시작되기 전 격랑의 시대 속 세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쇼군'은 제임스 러크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미 1981년 제임스 체임벌린 주연으로 한 차례 영상화됐으며 됐으며, 올해 디즈니플러스의 오리지널 시리즈로 리메이크됐다. 앞선 TV시리즈가 큰 인기를 모은 것에 이어 OTT 플랫폼을 통해 새롭게 재탄생한 '쇼군' 역시 높은 평점을 받으며 호평을 이끌었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할복과 참수 등 폭력적인 묘사가 적나라하고 노출 신 등이 다수 포함된 수위 높은 작품이다. 

1600년대 일본. 포르투갈은 일본과의 독점 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 서양 세계에 일본의 존재를 비밀에 부치고 일본과 유일한 유럽 교역국으로 자리매김한 가운데, 포트투갈 등 천주교와 적대적인 신교도 세력 영국의 배 한척이 일본 해안에 도착한다.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신개척지에서 한 몫을 잡으려는 야망에 찬 영국 항해사 '블랙손'(코스모 자비스)은 오랜 항해 끝에 질병과 굶주림에 시달리다 끝내 폭풍에 조난까지 당하지만 염원하던 이국에 땅에 도착한다. 일본의 작은 어촌 이즈에 떠내려온 그들은 영주 '야부시게'(아사노 타다노부)의 포로가 된다. 

포탄과 화약으로 무장한 외국선박이 나포됐다는 소식을 들은 에도의 영주 '토라나가'(사나다 히로유키)는 이 파란눈의 외국인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자신의 운명을 바꿔줄 것이라 확신한다. 토라나가는 호시탐탐 자신을 제거하려는 숙적들의 본거지 오사카성으로 찾아가고, 그곳에 블랙손을 불러 충직한 가신의 며느리 '마리코'(안나 사와이)가 통역을 맡도록 명한다. 노련한 책략가인 토라나가와 비운의 여인 마리코, 토라나가로부터 '안진'(항해사를 의미하는 일본어)이라는 이름을 받고 이국에서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는 이방인, 이들 세명은 격랑의 시대에 던져진다. 

사진=디즈니+

'쇼군'은 서구인들이 선망하는 오리엔탈리즘의 진수를 보여준다. 잘 고증된 17세기 일본의 복색와 풍습, 당시의 풍광이 산수화처럼 수려하게 담겨있다. 기존 서양인들의 시선으로 일본을 그린 '라스트 사무라이'나 '게이샤의 추억' 등 오리엔탈리즘에 심취한 작품들에 비해 좀 더 당대 일본의 정서와 문화를 깊이있게 묘사했다. 무엇보다 같은 동양계라는 이유로 중국계나 미국계 아시안 배우가 연기하는, 영어대사로 이뤄진 작품들에 비해 일본인 배우들이 연기하고 일본어 대사 위주의 진행이 사실감을 더해준 것도 큰 몫을 한다. 

'쇼군'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 이후 혼란스러운 막부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주요인물 중 한명인 토라나가는 히데요시 이후 1인 통치자가 돼 에도막부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모델로 했다.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실존했던 이들에 가상의 인물을 더해 드라마적 요소를 강화시켰다. 한국 시청자라면 더욱 흥미로운 지점은 임진왜란에 대한 언급이 서너번 등장한다는 점이다. 극중 토라나가의 숙적은 임진왜란에 참전한 과거가 있고, 전장에서 생사를 함께 한 부하와 그때의 고초를 우스갯소리 삼아 이야기한다. 또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극화 인물인 천합이 유명을 달리하며 토라나가에게 조선 정복에 성공했다면 일본은 토라나가에게 하사했을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초로의 무사는 임진왜란 당시 굶주림에 시달려 물건의 가죽 부분까지 먹을 정도였다는 일화를 털어놓는다. 이같은 장면에서 임진왜란은 당시 일본 사무라이나 지배층에게도 큰 출혈을 남긴 실패의 역사임을 알 수 있다. 

사진=디즈니+

'쇼군'은 토라나가가 어떤 묘수나 계책을 세워 일본 천하를 손에 넣게 되느냐 보다 이방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당시 일본의 풍습과 무사 정신, 그들만의 독특한 철학, 예법 등을 그리는데 집중한다. 마리코라는 여성을 통해 '벗꽃처럼 죽어가는' 일본인들만의 죽음에 대한 태도, 주군을 향한 충의 등을 충실하게 묘사한다.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믿는 서양인의 시선에서 마치 불나방과도 같이 죽음으로 신념을 증명하고, 충의를 드러내는 일본인들의 자세는 이해할 수 없는 '미친 짓'이다. 이에 대해 마리코는 '우리는 죽고 산다'며 죽음에도 의미가 있다는 말로 자신의 신념을 설명한다. '쇼군'은 잦은 지진과 해일, 태풍 등의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온 일본인이 죽음을 삶의 일부로 여기게 된 배경을 공들여 말하고 있다. "죽음은 공기 중, 바다와 땅 어디에도 있어 우리에게 언제든 닥쳐올 수 있다. 죽음과 삶은 같은 것, 둘 다 목적과 가치가 있다"는 말로 죽음을 대하는 염세적이고 강렬한 철학을 반복적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내면에 '8개의 벽'을 만들고 진심을 감추며 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특유의 민족성에 대한 묘사도 인상적이다. 

1시간여의 러닝타임에 10화의 에피소드로 제작된 '쇼군'은 고혹적이고 수려한 비주얼을 비롯해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심리묘사와 반전을 거듭하는 모략과 배신이 흥미로운 작품이다. 아쉬운 점은 주요 세인물의 한축이자 작품의 주요 모티프가 되고 서사를 담당하는 '안진' 캐릭터와 이를 연기한 배우다. 안진은 야망으로 가득한 이방인에서 마리코와 진정한 사랑을 나누며 사무라이 정신을 이해하고 무사로 거듭나는 인물임에도 코스모 자비스가 연기한 '안진'은 감정의 변화와 성장이 와닿지 않는, 무매력의 인물로 그려졌다. 시종일관 하나의 표정으로 화를 내고, 당황하고, 사랑을 하는 '안진' 캐릭터는 '쇼군'의 가장 큰 단점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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