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상담심리학회] 100만 명의 분투를 응원하는 법

안수정 한국상담심리학회 법제화 위원회 위원 (명지대 교수) 2024. 5. 1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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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정 한국상담심리학회 법제화 위원회 위원 (명지대 교수)


우리 삶에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인연·사랑·평안 등 행복한 것만이 그러하다면 좋겠으나 실은 괴로움과 마음속의 상처들 또한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 무엇보다 더 질기게 우리를 따라다닌다. 이 질긴 것들이 마음에서 얽히고설켜도 꾹꾹 참고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숨이 차고 체기가 들었다가 급기야 쓰러지기도 한다. 이 때에 이르러서는 이 질긴 것들로부터 놓여나고자 자신의 목숨을 끊기도 한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한국에서는 지난 3년간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 수보다 자살자 수가 더 많았다는 통계도 있다.

위급한 순간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물론 가장 중요하지만 사회의 역량이 커지면 한 사람이 쓰러지기 전 미리 예방하는 데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치명적 위기를 줄일 수 있다. 외양간을 미리 지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심리상담의 역할이다. 최근 정부가 국민들의 마음 건강을 튼튼하게 점검하겠다면서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을 내놓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기존에 치료에 집중됐던 정신건강 관리체계를 치료뿐 아니라 예방부터 회복까지 전단계로 확대해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정신건강정책의 핵심 목표는 2027년까지 100만 명이 심리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10년 내 자살률을 50%로 줄이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한 4대 전략 중 하나가 전국민마음투자지원사업이다. 중증 정신질환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혼자서는 해결하기 힘든 심리정서적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이 곪아 터지기 전에 전문적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 국민들을 위한 마음건강의 안전망을 더욱 촘촘하게 하겠다는 내용이 뼈대다. 올해는 오는 7월부터 심리상담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접근성은 높이기 위해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를 제공하고 학생은 학교나 지역사회에서, 직장인은 회사에서 쉽게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일상적 마음돌봄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이 혁신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한마디로 양보다는 질이다. 심리상담 서비스 제공률도 중요하지만 고통으로 주저앉아 있던 단 한 사람이라도 족쇄를 풀 수 있으려면 심리상담 서비스 제공자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처절하게 아파도 정신의학과나 심리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 불편한 수요자들의 마음이 있다면 그 자물쇠를 여는 것도 궁극적으로 제공자의 몫이다.

어떤 연구라 하더라도 연구 참여자는 연구자가 예상치 못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철저하게 연구 참여자의 심리적 안전을 챙겨야 한다는 말이다. 심리상담 서비스를 받는 내담자 역시 그러하다. 상담자가 아무리 마음을 써서 살펴도 예상치 못한 감정에 휩싸일 수 있다. 한국상담심리학회의 심리상담 윤리강령에는 내담자에게 절대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무해성의 원칙이 반영돼 있다. 매우 취약해진 상태로 상담실을 찾아오는 내담자들에게 상담자의 부족한 역량과 낮은 민감성으로 인해 상처에 상처가 덧입혀진다면 그것은 치명상이 된다. 이 뿐 아니라 내담자가 이후의 삶에서 또 다른 힘겨운 씨름을 할 때 전문적인 도움을 구할 기회를 다시 찾지 않게 될 수 있다. 심리상담 서비스의 질 관리를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전국민마음투자지원사업 제공자의 자격기준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지만 전문성이 충분히 입증된 심리상담 전문가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함에는 틀림이 없다. 다년간 이론적 지식과 실제적 상담 경력을 쌓고 연구를 통해 효과가 입증된 근거기반 개입을 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심리상담 전문가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상담 과정 과 효과도 지속적으로 철저하게 점검해야 할 것이다. 심리상담 관련 제도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것이다. 상담 전문가의 전문성과 상담 품질 관리를 전제로 전국민마음투자지원사업으로 받은 바우처를 가지고 상담을 받았더니 살만해졌다는 웃음들이 모여 이 사업은 지속될 것이고 100만 명의 마음속 고된 분투가 마무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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